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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21:31
저는 문재인 의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최상의 리더십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고 지도자의 자질로 볼 때 노무현의 리더십도 상당한 폭발력을 지녔지만 다양한 이해가 충돌하는 작금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민심(여론)이라는 것이 보수화 메커니즘의 5단계(안철수 선택, 보수화된 기득권 양당구조에 균열을 참조하십시오)에 갇혀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신음소리처럼 낮은 곳들만 떠돌고 있는 상황에서 듣는 귀를 가진 리더십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민초들은 말하고 싶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파편화된 이해들과 아픔들을 답답할 정도로 끈질기게 들어주는 소통 능력을 가진 지도자만이 민초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깊은 영육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면 어떤 리더십도 그들의 하소연에서 유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차례로 삶의 근거들을 박탈당한 민초들은 폭발 직전의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기성정치권이 받아들일 수 있게 연대하는 능력에서 수없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대안이나 해결책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죽을 것 같은 절규들을, 그 최소한의 요구를 정치권에 전달할 통로가 없고 진심으로 들어주려 하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침묵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1인1표를 얘기하지만 그들은 1원1표에 너무 많이 치여서 툴툴 마른 웃음이나 던집니다.
인터넷이나 SNS를 하는 것은 그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키워서 정치권에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댓글으로라도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말하고 들어줄 누구를 그들은 찾고 있습니다.
나 여기에 있으니 질식할 것 같은 어둠의 심연에서, 빈곤의 무력함과 차별의 따가운 시선에서 꺼내달라고, 한 번이라도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그들은 절규하고 흐느끼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말하기 전에 제발 우리들의 사연을 먼저 들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듣는 능력이 있는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은 구축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특히 현실정치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도로 자신을 광고해야 하기 때문에 듣기보다는 말하려 합니다. ‘정치는 말이다’라는 경구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런 정치의 특성 때문에 듣는 리더십을 통해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이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정글보다 심한 암투가 빈발하는 정치판에서 말하지 않고 듣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듣는 것이 장점인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은 구축될 수가 없습니다.
헌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재인 의원은 바보 노무현을 처음 만난 초자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정 전반을 조율하는 40여년의 세월 동안 끝없이 듣는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이런 리더십으로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정치인 문재인 의원이 유일합니다.
초국적기업처럼 거대 조직에 몸담고 있다 보면 듣는 리더십을 구축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을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힘듭니다. 특히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상시화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는 더더욱 힘듭니다. 조직이 거대할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듣는 리더십은 일단 구축되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끝없는 소통을 통해 하나하나씩 쌓아올린 소통이 노하우와 단단한 신뢰가 리더십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놀라운 내성을 보여줍니다.
물론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느려터집니다. 더 이상 하소연할 것이 없어 이제는 답을 듣고 싶은 순간에도 한 번 더 들으려 합니다. 이런 리더십은 더디지만 좀처럼 실수하지 않으며 폭발적 위력은 떨어지지만 두 번의 실패는 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지자들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이 봇물 터지듯 나왔을 때 문재인 의원이 승패를 받아들이자고 한 것도 수많은 지지자들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자신이 온갖 욕을 먹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 했습니다. 3살 때 버릇이 여든까지 가듯이, 한 번 몸에 밴 습관은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합니다. 제가 문재인 의원의 리더십이 21세기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바꾸기와 약속 파기, 실종된 경제민주화, 이명박보다 못한 인사 행태,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지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방송과 금융기관의 전산망 마비, 못내 아쉬운 안철수의 선택 같은 것들을 보고 있자면 문재인 의원의 패배가 너무나도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변치 않는 유일무이한 진리가 있습니다. 시간은 흐른다는 것입니다. 2년 뒤에는 총선이 있고 5년 뒤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산다는 보장이 없지만 그래도 뭐 어떻습니까? 미래란 모르는 것이며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에 오르는 날까지 약간은 건강하게 살아남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 차기 대선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건강을 유지해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이 대한민국을 치유하는 것을 지켜볼 생각입니다. 지금도 제 귓가에는 노동 착취와 저임금의 사각지대에서 살려달라고 외쳐는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이 문재인 의원의 귓가에도 들리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도 혹시라도 문재인 의원이 듣지 못한 소리가 있다면 대신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듣고 알았다고 할 때까지 저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민심의 광장에서 한바탕 축제의 마당을 펼쳤으면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은 주위 분들에게, 그렇게 서로 기대고 위로하며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이겨냅시다. 여러분 모두 파이팅!!!!!!!!!!!!!!!!!!!
부패하고 썩은 자들이 꺼리낌없이 고위공직자에 지명되는 세상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이 청렴과 만났을 때 최고의 지도자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