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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1 00:16
정보통신망에 대한 보안의식이 형편없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주요 전산망이 한 방에 다운돼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화 된 정보사회의 위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해킹 당한 전산망들이 안철수연구소의 바이러스 백신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닐 진데, 국가의 기간 통신망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면 핵폭탄 못 지 않게 위험한 것이 사이버 테러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입니다.
악성코드가 심어진 것을 전혀 몰랐고 테러 방식도 이전의 것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집니다. 정보통신강국이라는 것도 제품 팔아먹는 데에서만 적용되는 일방적 개념이라는 사실도 새삼 부각되고 있습니다. 안전불감증은 사이버상이나 현실에서나 다를 것이 없는 대한민국입니다.
헌데 이번 사건 때문에 한참 달아오르던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이슈라는 초대형 이슈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공약 파기와 축소, 이명박 정권보다 못한 인사 문제로 국민적 질타를 받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기사회생의 전기가 주어졌습니다.
이번 사태가 너무나 엄중하기에 청와대와 국정원을 필두로 해킹 당사자를 추적해야 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놔야 하며, 사이버 전쟁에 대비한 방통융합의 치밀한 진행도 필요하게 됐습니다. 하나같이 국가의 역량이 총동원돼야 가능한 일들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때문에 방송의 공정성을 잃어버린 KBS와 MBC, YTN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였던 야당 성향의 지지자들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지 모르겠지만, 방송사 같은 국가 기간망이 해킹을 당해 다운된 것은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뜨거운 감자로 가득했던 최근 몇 주 간의 국민적 관심사가 이번 사태에 밀려나 한 동안 숨을 고를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결과일 텐데, 이것이 박 대통령에게는 힘을 실어주고 범야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번 사이버 테러가 북한 소행이라면 종편들이 빠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오리무중인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대선 결과에 의문표를 달수도 있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 사건은 이번 사태와 별개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외부의 적을 찾아서 응징하고 추가 테러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국민을 둘로 나누어 종북이란 딱지를 붙이는 내부의 적을 벌하는 것도 이에 못 지 않게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에 첨예한 갈등을 조장하는 파렴치한 행태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중대 범죄이기에 반드시 막아야 하며 재발방지책을 굳건히 해야 합니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노동 착취와 저임금의 사각지대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는 3포세대와 6무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학생폭력과 자살이 급증하는 것도 경쟁 만능과 승자독식의 제도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인데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시각으로 몰고 가는 언론의 행태도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박 대통령이 4대 거악을 척결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마어마한 공권력의 강화가 필요한데, 이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축소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국가의 공권력이란 양날의 칼이어서 국정원 사건과 민간인 불법사찰 같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이버 테러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외부에서, 내부에서, 2013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참으로 불안하고 부끄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