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0
조회 70
2013.03.17 20:32
오늘 여야가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에 합의했다고 합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세부 내용들을 살펴봤습니다. 양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방송의 공정성 보장 확보에 대한 합의 내용은 지금으로서는 평가하기 힘듭니다. 그 밖의 합의 내용들 중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검찰 수사 완료 후 국정조사를 한다는 것 정도만 눈에 들어 왔습니다.
헌데 어떤 이유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래서 양당 합의에 어떤 정치적 정당성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끼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비례대표 부정경선에 연루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자격심사안을 양 교섭단체별로 15명씩 공동으로 3월 임시국회 내에 발의해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심사”한다는 것입니다.
뉴시스에서 인용
제가 이 합의의 문제점을 논하기 전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할까 합니다. 저의 견해가 결코 개인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대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실업과 고용 문제, 사회정의와 복지, 재분배 정책의 문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정치제도 개선의 문제, 공직자 부패 척결 문제, 탈냉전과 평화에 입각한 남북 관계의 발전, 교육 문제, 중앙 집중화의 완화 등등...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정당 각자의 정책적 견해가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다......이런 현상들은 한국 정당 체제의 보수적 동질성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데는 하나의 시각만이 존재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시각이 인정돼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며 사회문제에 대해 다원화되지 않은 시각만이 존재하면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주장한 과학적 공산주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북한이 독재세습정권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인 것처럼.
“한국 정당 체제의 보수성은 사회의 여러 갈등하는 이해와 의견에 따라 정치 경쟁이 이루어지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정당 체제를 사회적 기반과 유리된 정치 엘리트들의 과두 체제로 전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선거와 관련한 검찰조사는 뜻밖에도 참여계 소속 인사들의 구속으로 마감됐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실정법에 의해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은 법적 책임이 없음이 입증됐습니다. 그들의 구시대적 의식구조와 행태가 유감스럽고 어리석기도 하지만 그들은 선거를 통한 적법한 방법으로 의원에 당선됐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조항이 유효하다면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의 의원직 유지여부를 기득권 양당의 보수적 동질성에 의거해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헌법 제1조 제1항에 의거해 탄핵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보수화된 두 기득권 정당인 양당 의원 15명씩으로 구성된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심사해 이석기와 김재연 의원의 의원직 박탈 여부를 결정해 본회의로 넘긴다는 발상 자체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 그들의 의원직을 박탈한다면 이는 19대 국회 자체가 헌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해산의 요건에 해당합니다.
현 19대 의원 중에서 윤리특별위원회를 열어 심사해야 할 의원은 문대성과 김형태 같은 의원들이지 이석기와 김재연은 아닙니다.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합의는 늦었지만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방송의 공정성은 제도가 바뀌어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계에서 방송의 영향력이 정치를 압도하는 보기 드문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그 소유권이 국민에게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방송의 공정성도 여론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며 그 여론이라는 것도 방송에 의해 유도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과 정부의 광고와 협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방송은 기득권의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상당수의 국민들이 보수화된 양당 체제 안에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향(이명박의 당선에서 극명하게 보여준다)을 보이고 있는데 방송의 공정성은 어떤 것으로도 확보하기 힘듭니다.
오늘 19대 국회의 교섭단체권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 양당의 합의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렸습니다. 오늘의 합의는 보수화된 국가에서 벌어진 기득권 정당의 이해가 만들어낸 반민주적 만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종북이나 종미도 문제지만 소수 정치 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대한민국 양당 체제의 보수적 동질성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제가 지금 퇴고 중인 글에서 안철수의 신당 창당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이유도 보수화된 양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안철수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를 넘어 그가 양당과 일전을 치를 수 있는 신당 창당에 성공해야만 공고한 기득권 정당 체제에 균열이 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문제는 기득권이라는 글을 썼던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독재의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가 소수의 기득권 정당들이 공통의 이익을 위해 대의민주주의의 전당인 의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행하는 독재입니다. 그들은 지역이나 정당을 대표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다수의 의원들이라 대통령처럼 한 명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특히 강한 지역성ㅡ그것이 정치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든 자연발생적이든 상관없이ㅡ을 기반으로 하는 양당 체제에서는 위험성이 더욱 높아집니다. 이번처럼 양당의 합의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행해지는 소프트한 의회독재는 책임을 추구할 수 있는 구체적 대상을 특정하기 힘들다는 면에서 교정의 방법도 마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석기와 김재연의 의원직 유지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필자지만 그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믿음에 기초할 때 오늘 양당의 합의에 그들의 의원직 박탈을 위한 야합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조종을 고했습니다. 그것도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여야 하는 의회에서 말입니다.
민주당의 행태를 볼 때 문재인 의원이 정치 전면에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양당의 합의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기득권 지키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