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후보 시절의 공약과 약속 파기 수준이 정부조직접 개편안의 처리 지연이 문제가 아닐 정도로 심각합니다. 인수위원들이 입각하거나 청와대로 입성하지 않고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본업으로 돌아간다는 약속을 시작으로 해서 각종 복지공약 파기 및 축소, 말 뒤집기 등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김용준 총리 지명자과 윤창중 대병인의 자체 검증의 부실함, 인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퇴 결정의 무책임함과 한국 정치에 대한 무시가 극에 달한 미국인 김종훈의 사퇴변은 박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저는 이 모든 일이 박 대통령 혼자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 장관제와 인사권 보장, 기관의 수장들의 임기 보장, 고위공직자 비리(내정자도 포함)에 대한 단호한 배격과 척결, 인사의 논공행상 탈피, 여성 인재의 대대적인 등용, 다양한 출신의 인재 발탁과 지역 안배를 통한 대탕평 인사 등의 약속은 모두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4대 권력 기관의 수장 교체에서 보여준 직할 통치의 강화는 박정희 시절을 보는 듯해서 두렵기까지 합니다.
선거 때 주요 이슈였던 검찰개혁에 대한 대국민 약속은 조직 개편의 최소화와 법무부 장관과 차관, 검찰총장의 기수 혼란과 공안 출신 중심 등용은 공약 파기 수준을 넘어선 독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검사 파견 불허에 대한 약속마저 깨져서 이미 4명의 검사가 파견된 상태입니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가장 많이 중요시했던 경제민주화의 실종을 넘어 성장론자와 재벌친화적 인물들의 경제수장과 공정거래위 수장 임명, 논공행상적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미래연 출신의 인사를 국세청장에 임명한 것까지 박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국정 철학은 원칙과 신뢰라는 트레이드마크에서 한참 벗어났습니다. 이 정도면 신뢰와 원칙이라는 것은 대국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주문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복종을 강요하고 집권 여당마저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수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자행됐던 민간인 불법사찰보다 더 큰 국기 문란 사건인데 지휘 책임자이자 임기가 반이나 남은 경찰총창을 경질했습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수사가 3개월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데 이번 경찰총장의 교체는 아예 수사를 하지 말라는 것인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 MBC를 파탄지경으로 만든 김재철의 처리 문제도 논문 표절 때문에 두 달 간 버티다 갑자기ㅡ그래서 공작의 냄새가나는 김재우 의원장의 예상치 못한 사태와 맞물려 일사천리로 방문진 최고 연령자를 낙점(방문진 법에 이런 조항은 없다)한 것에서는 공영방송 MBC를 직할체제 안에 편입시킨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사청문회를 아예 무력화시키려는 것인지 여당까지 반대하는 김병관 내정자와 현오석 내정자, 한만수 내정자까지 임명 강행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하면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절대 조항까지 무시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군인과 행정고시, 서울대 출신의 약진은 박정희 시절의 인사와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후보 시절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던 5.15에 대한 장관 후보자들의 영혼 없는 대답들이 이제는 상명하달의 부활을 보여주는 사례로 확대 재해석됩니다. 어떻게 대통령이 된지 한 달도 안 돼 국민과의 약속을 이렇게도 무차별적으로 깰 수 있단 말인가? 이러니 4대강공사에 대한 감사원의 발표도 믿지 못할 판입니다.
두렵습니다. 필자는 이 단어 하나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에 대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를 했을 때의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그의 진짜 본 모습인 것 같아 무섭고 두렵습니다. 저야 허접하게 이어가고 있는 목숨 이외에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빈곤화와 불평등이 동시에 진행돼 극빈자들이 속출하는 대한민국은 어찌해야 한단 말입니까?
이곳저곳에서 유신 시절의 얘기와 영상들이 회자되고, 극단의 반공과 강요된 애국이라는 구시대의 유령이 스멀스멀 대한민국의 상공을 저공비행하면서 국민들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자다가도 뻘떡 깨어나곤 합니다. 유신 시대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2013년에 그 때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것들과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형편없이 떨어졌는지 그 원인에 대해 숙고해 보십시오. 지금은 도 아니면 모 식의 정치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젊은 세대들의 정치의식이 살아나고 있는 지금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정치를 바라보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음도 고려해 보십시오.
다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의 회귀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럴 경우 국민적 저항이 격렬하고도 전방위적으로 펼쳐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리니 의원과 후보 시절의 박 대통령 자신이 국민들에게 했던 말들과 약속들을 되돌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