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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2 21:36
9년 전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치욕적인 날이었다. 헌데 9년이 흐른 지금,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에 오른 상황에서 친노에 대한 적의를 지속적이고 집요할 정도로 내뿜고 있는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경향시평은 편견과 증오로 가득하다.
같은 교수 출신인 안철수에 대한 맹목적 지지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친노에 대한 개인적 원한 때문인지 민주당에 집중포화를 퍼붓더니 이제는 친노의 정의를 스스로 내린 상태에서 아예 저주 수준의 글을 동원했다. 대체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글이 이토록 날 것 같은 분노로 가득차고,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행간 곳곳에 편견과 아집이 넘쳐나는 글도 다시 보기 힘들 정도다.
그동안 필자는 경향시평 란에 실린 모든 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었기에 정희준 교수의 글도 찬반과 선호에 관계없이 모두 다 읽었다. 경향시평에 실린 글만 놓고 볼 때 친노와 민주당에 대한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지속적이고 편협하기 그지없는 분노의 융단폭격은 오늘자 시평에서는 차리리 언어폭력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의 글에서는 독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시평이란 양식에 대한 근본적 존중도 없다.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기본적 사실을 기반으로 글을 써야 한다. 헌데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안희정의 폐족 발언을 제외하면 친노에게서 반성의 목소리도 없다고 한다. 다음이나 구글, 네이버의 검색기능은 교수가 사용하기에는 천박하기라도 한 것일까? 저급하고 비열할 정도로 선험적 판단에 근거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사실적 근거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선적이며 절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배설만이 무성하다.
글이란 격한 상태에서 쓰면 오버하기 마련이다. 밤에 꾸는 꿈은 충분히 걸러낼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낮에 꾸는 꿈대로 행동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다. 헌데 그는 또 말한다. “무엇보다 '친노'란 단어가 왜 이렇게 부끄럽고 묘한 명칭이 됐는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게 누군가. 바로 친노 아닌가. '노무현' 팔고 다니면서 사리사욕을 챙기는 게 '노무현 정신'인가. 그분께 죄송하지도 않은가.”라고.
대체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친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인가? 친노가 정치권에서 당권에 미쳐 패거리적 전우애로 사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기자들의 말이면 다 진실인가? 대학 교수라면 글을 씀에 있어 단어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하이데거를 비롯한 라캉과 푸코 딜뢰즈와 촘스키 등이 단어(언어와 말)에 대한 정의에 그토록 매진한 이유도 모른단 말인가?
시평으로써 감정 조절도, 사실적 근거도 부족한 자신의 글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필자처럼 친노라는 단어를 자랑스럽게 쓰며, 각자의 분야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리사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언어폭력을 자행해도 괜찮다 말인가? 시평이란 것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의 중층적 심리에서 나온 언어들로 나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소위 친노라는 단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선거 때 당신이 정의내린 친노에게 투표하면 그것도 정치행위인데, 아니 삶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의 대부분이 정치행위인데 그들의 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말할 텐가? 그들의 가슴 속에,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호남의 민심이 안철수로 기울었다고 자신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은 양반에 속한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마지막 문장들이다. “다시 민주당 이야기로 가자. 민주당 쪽에선 안철수가 당을 만들면 통합해야 한다고 한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하나만 남는다.”
가히 예언자 수준이다. 마르크스가 울고 갈 판이다. 그래서 안철수가 노원병 보궐선거를 정치 재개의 장소로 선책한 것인가? 그런 행위가 당신이 말하는 친노의 행태와 뭐가 다른가? 그의 선택에 부정적인 사람들의 의견은 현실정치에 대한 겸험이 부족하고, 이해도 교수 수준이 아니어서 무시해도 되는가? 한나 아렌트와 칼 폴라니가 당신의 글을 보면 파시즘의 부활에 대해 한탄할 판이다.
최소한 교수란 타이틀을 갖고 쓰는 글이라면 최소한의 예의와 균형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류매체의 시평이라 하기에는 언어 선택의 수준과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 근거 면에서 지극히 자의적인 것들로 무성한 쓰레기에 다름 없는 글을 투고한 목적이 무엇인가? 안철수 전 후보의 운동원이라도 된단 말인가?
친노라는 단어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비판하는 일부의 행태를 가지고 전체를 예단해서 통째로 비난(비판의 수준도 아니다!)하는 비약과 자기 연민에 빠져 시평으로서의 근본도 갖추지 못한 글을 안철수 전 후보가 귀국한 다음날 경향신문에 실은 정희준 교수는 답하라. 친노의 행태가 그렇게도 비난받아야 하는 일이라면 안철수 전 후보의 선택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글을 실어라.
대체 당신의 목적이 무엇인가? 안철수 띄우기인가, 아니면 안철수 죽이기인가? 답하라,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필자의 질문에 답하라. 스스로 친노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 모두에게 답하라. 당신이 예단하고 정의내린 정치행위의 영역에서 말이다. 당신의 시평 수준에 맞게 고른 언어들로 묻는 것이니.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이메일이라도 아는 분이 계시면 대신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