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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18:32
“행복은 자유의 열매이고, 자유는 용기의 열매라 믿으며, 전쟁의 위험에 위축되지 않는다.” 이 인용문은 4천 년 전의 철학자였던 최초의 민주주의자 페리클래스가 한 말입니다. 21세기가 13년이나 흐른 오늘에 페리클래스의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권력의 심부인 청와대로부터 전해져 왔습니다.
정부는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현 정부 첫 국무회의를 열어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심의ㆍ의결한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선진국가들에서는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라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방임적인 자유가 공공의 이익을 침해해도 될 만큼 무한정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내용은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16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경범죄 중에 행정의 편의성만을 강조하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기 쉬우며 그 행태를 특정하기 힘들어 자의적 적용이 일어나기 쉬운 ▲업무 방해는 문제의 여지가 너무나도 큽니다. 실제 우리나라에 필요한 업무 방해에 대한 처벌은 대기업들이 국세청이나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에 조직적 방해를 하는 것에 적용돼야 할 것이지 불특정 다수를 향해 가해지는 경찰이 불신검문에 적용되면 직권남용의 여지가 너무 커집니다.
또한 노조가 합법적 파업을 하고 있을 때 노동부에 의해 정치적 이유로 불법 파업으로 왜곡된 상태에서 공권력에 의한 행정대집행이 진행될 때 이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여지도 있어 남용은 물론 악용의 여지까지 우려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 적용이 확장될 수 있는 업무방해의 경범죄 처벌은 유신시대에서 노태우 시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음은 물론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는 반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 통치(결코 법치가 아니다!)의 핵심입니다.
특히 5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지문채취 불응에 대한 경범죄 처벌이 업무방해와 연동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집니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한 이런 발상은 소프트 파시즘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들을 양산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그렇게 강조했던 4대 거악 척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행정의 편의적인 관점에서 적용하면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할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경범죄로 추가된 이 두 가지는 젊은 세대에게 엄혹하던 유신의 경험을 체험시켜 주는 것은 물론, 개인의 행복추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개성의 자유로운 표현에 대한 국가의 폭력으로 인식돼 60대 이하 전 연령대에서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과다노출의 경범죄 적용과 함께 시대 역행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이명박근혜’라는 합성어가 ‘대한민국 버전의 잃어버린 10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경찰청의 설명에 의하면 과다노출에 대한 경범죄 적용이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고 합니다. 속이 비치는 옷이나 배꼽티는 물론 나체가 아닌 이상 처벌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체 어떤 것을 과다노출로 보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경범죄 개정안에 이 조항이 들어간 것은 어쩌면 다른 조항들의 문제점을 감추지 위한 정치적 꼼수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경찰청의 설명대로라면 문제가 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정한 장관들의 청문회에서 5.16군사쿠데타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답변으로 일관하던 내정자들의 문제에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치적 의도가 명백해 보일뿐 현실적인 인식이 너무 부족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이 다르면 지식도 다르다’는 미셀 푸코의 말은 박근혜 정부에서 특히 유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졌다 해도 이런 역사적 왜곡에 대한 교사와 지식인들의 양심과 저항이 살아 있는 한 당사자인 박정희가 환생한다 해도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뜻을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인류는 분명 발전해왔고 부의 재분배 면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해도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확대에는 어떤 세력이라 하더라도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시대의 명령입니다.
마지막으로 5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경범죄에 ▲무전취식이 포함된 것도 문제의 심각성에서 역사 퇴행적 조치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것은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감옥의 역사ㅡ감시와 처벌》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중세에 발생한 인권 말살의 대명사이자 자본주의 생산체계를 공고히 하는데 결정적 도움이 된 ‘대감호’를 연상시킵니다. 부르주아의 요구에 따라 사회에 잠재적인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는 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조치로 악명 높은 대감호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교될 만큼 반인권적이며 반민주적인 역사적 범죄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거지와 빈둥거리는 사람들은 물론 거의 모든 장애인과 용모가 추한 사람들, 안빈낙도를 선택한 사람들, 우울증 환자와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성들, 화성인적인 사람들까지 특정 장소에 격리시켜버린 ‘대감호’는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한 중세 시대의 치욕이었습니다. 그 전에는 공동체와 사회가 받아들이고 보살폈으며 함께 했던 사람들을 정치경제적 이유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대감호’는 역사 퇴행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조금이라도 반정치적이고 반경제적이며 반사회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나병환자처럼 모조리 끌려가 격리조치 되었습니다. 정권에 저항하는 자들이면 정치인이고 인권운동가며 시민단체 회원은 물론 일반시민까지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였던 삼청교육대는 비교될 수도 없을 정도로 잔인했으며 반인권적이어서 인류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것이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도록 유럽에서 벌어졌던 ‘대감호’입니다.
따라서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국무의원들에게 요청드립니다. 하루라도 빨리 국무회의를 통과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수정해주십시오. 특히 이번 글에서 지적한 4가지 경범죄 신설에 대해서는 폐지나 대폭 수정을 요청드립니다. 국민에 의해서 선출된 대통령과 그에 의해 구성된 행정부라 해도 모든 것을 자신들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에 근본 원리입니다.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것 이상의 조치들은 그 어떤 것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비록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고 그 종류로 수없이 많아 민주주의 자체가 시끄럽고 실천하기 힘들 일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역사학자 EH카가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산의 객관적인 형태가 없다거나 반대로 무궁무진한 형태를 갖고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이 아무리 많다 해도 본질에서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전쟁 발발 직전까지 한반도의 위협을 극대화시킨 한미군사합동훈련이 실시되고, 유력한 정치인 안철수 전 후보가 귀국한 날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경범죄 개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디 박근혜 대통령과 국무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면서 최초의 민주주의자이자 위대한 철학가였던 페리클래스의 또 다른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제가 이번 글을 쓰게 된 것도 맨 처음에 인용한 문장과 함께 바로 이것에서 그 정당성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수 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
안철수 귀국회견에 대한 글은 오늘 늦게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