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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23:06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그대로 인간의 기억을 믿는다면 분명한 실수가 된다. 인간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한다. 단지, 창 너머로 보이는 카메라 렌즈의 사실을 뇌로 인식하고 밣힐 뿐이다. 인간의 기억은 '작화증'이라는 기억의 간격을 보조하고 간격을 메운다. 범주라는 카테고리다. 범주라는 카테고리는 인간을 진화시킨 원동력이다. 의자는 다리가 네개다. 네개란 모습은 시각이 인지하지 못 한다. 뇌로 연결된 후정엽과 전두엽의 결과일 뿐이다.
2월 17일이었다.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만날 약속을 한 친구와의 만남은 시간이 30분 정도 남았다. 난, 대전 터미널 내에 "동부서적"으로 향했다. 동부서적은 터미널 내에 위치하지만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자투리를 이용했다. 책 한 권을 산 후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의 여인은 동그란 안경에 "노무현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이채윤이 지은 것인가 그렇다.
난, 그녀에게 덕담을 했다. 좋은 책이라고, 사람은 더 좋다고 했다. 동그란 테안경을 쓴 그녀에게 노무현을 향한 덕담이 충분했다. 그녀는 그냥 웃기만 했다. 친구는 약간 퉁명스러웠다. 질투의 감정인지 약간의 감정의 혼란스러운지 몰랐다. 단지 그녀가 나와 동질감을 같은 것은 분명하다.
친구와 점심겸 술을 먹으러 들런 참마을 식당에서, 이정희의 역할이 문재인의 당선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친구의 주장에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다. 단지 이정희가 문재인의 당선에 악영향을 끼쳤느냐의 문제에서 의문이 앞선다. 지지율은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다.
이정희가 앞선다면, 이정희> 박근혜 > 문재인이다. 비틀어보자. 문재인 > 박근혜 > 이정희와, 이정희 > 문재인 >박근혜로 등식을 변화시다면, 누가 악영향을 끼치고 논리적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선거결과는 분명하다. 이정희 < 문재인내지 박근혜다. 등식이 성립되려면 이정희가 문재인보다 강해야 한다. 결과는 박근혜가 강했다. 박근혜가 강했던 이유는 결과가 증명한다. 만약에 문재인이 당선되었다면 반대의 논리가 증명된다. 이정희의 역할로 당선되었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예는 "결과 후 편향"이라 한다.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나고나면 선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과학자와 변호사의 입장이다. 과학자는 이론의 결과로 증명하고, 변호사는 상대의 빈틈을 선호한다. 확실과 확실하지 않은 이론..이론은 칼 포퍼에 의하면 증명되는 것과 증명되지 않은 것의 차이다.
프로이트는 한 물 같다. 요즘도 프로이트를 생각하는 바보가 있다면 그는 정말 멍청하다. 자크 라캉의 주장도. 심지어 한국의 좌파에게 영향력이 있는 촘스키 교수도 "언어기원설"이 공박받고 충격을 당한다. 자크라캉의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런 철학적 불분명한 사실을 오해하게 만든다.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은 인간의 뇌의 "브로카 영역과 베로니케 영역"이다. 브로만 영역 39번이다. 의미와 언어의 영역이다.
인간의 기억은 면역과 합리적 의심을 상쇄시킨다. 스토리를 만들면서 익숙하게 결과를 추동한다. 작화증이라 한다. 인간의 시각에서 눈은 그냥 창문이다. 평면의 사진이다. 단지 뇌가 삼차원으로 인식할 뿐이다.
인간의 뇌가 모든 것을 인식하고 변화하고 느낌과 스토리를 완성한다. 시각은 전두엽으로 연결된 후두엽의 결과물이다. 뇌가 파손되면 인간의 시각적 능력과 인식도 파괴된다. 그들이 과도하게 오바하는 것도 뇌의 악영향일 뿐이다.
이 악영향은 가끔 과도하게 행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