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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3
2013.02.12 10:43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당혹스럽게 느껴지는 것 중 하나가 나이를 묻는것이란다.
초면에, 혹 아주 가깝지도 않은 관계중에 나이를 묻는 문화가 이상하기도 하고, 사생활의 침범으로 느껴저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존대어가 없는 나라의 언어 문화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알아 존대어를 사용하는 문화, 말하기..
요즘은 자식들과도 말하는데에 어려움이 많다.
소위 인터넷 언어라는건지는 몰라도 듣도 보도 못한 말들이 횡행한다.
샘...
선생님의 축약이란다.
허기야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
How are you?
이를 hru?로 축약해서 쓰는 모양..
인터넷 언어가 사용되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일진데,
이 인터넷 언어를 그대로 방치함이 옳은건지,
관계속에 이 새로운 언어가 순기능으로 사용되기 위해 어떤 식이든 합의가 필요한 건 아닌지...
이 방의 대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
주장의 옳음과 논리, 단어의 선택의 격조...
이런 것들은 이런 방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는 좀 그렇다.
가장 언짢은 말하기의 모습은 이런거다.
예의없는 말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없는 말하기.
익명의 공간에서 서로 주장이 다른 사람들간의 대화에서,
주장이 갈등할 수 있다.
갈등이 첨예해저서 날카로울 수 있다.
허나, 최소한의 인간적,한국적 예의는 있었으면 좋겠다.
소위, 국가와 민족, 진보를 논하는 사람들의 말 하기에는
그 만큼의 말에대한 책임성도 있었으면 좋겠다.
애 어른도 없고,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이,
소위 진보들이 바라는 사람사는 세상은 아니지 않겠는가?
무엇인가를 이루려 한다면,
이룰 수 있는 수단을 잘 선택해야한다.
말이란 수단,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떠도는 말...
옳은 얘기를 어찌 저리 싸가지없게 할까?
말이 소통의 기본이다.
말이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기본이다.
이 기본을 망각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지럽히는 말하기로는
얻고자 하는 것을 도저히 얻을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한 마디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 하지 않는가?
남을 설득하고 싶은가?
나의 주장을 상대가 경청하고 토론하고 소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능력있는 말을 사용함이 마땅하다.
능력의 첫째는 예의이다.
예의없는 사람사는 세상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