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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1 08:59
박근혜와 ‘타진요’의 공통점은? | ||||||||||||||||||||||||||||||
연예인 ‘신상털기’와 공직자 검증 구별 못하는 박당선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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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 소장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에서 곤혹을 치르고 김용준 총리 후보자도 검증보도만으로 사퇴하는 등 차기정부의 내각구성에 대한 잡음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강원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을 초대해 가진 비공개 오찬 회동에서 인사 검증과 청문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낸 데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선인은 “인재를 뽑아서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 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느냐"라며 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선인의 이러한 발언은 인사 평가에 있어 ‘능력’과 ‘사생활’을 대비시키고 전자를 중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직무 수행 능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사생활’로 여기고 검증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태도는 박근혜 당선인의 과거 발언과도 모순된다. 유세 과정에서 그녀는 과거 정부의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 ‘향우회 인사’,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 등을 비판해왔다. 물론 당선인은 위의 비판이 ‘능력 있는 인사’를 내세우지 못한 전임 정부에 대한 비판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여기서 비판의 근거가 된 ‘코드’(대통령과의 정치성향 일치 여부)나 ‘회전문’(친분으로 쉽게 내정됨), '향우회‘(특정 지역), ’고소영‘(학벌/교회/지역) 등의 기준은 ’능력‘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느냐와 능력 문제는 별개다. 즉 코드가 맞거나, 친분이 있거나, 특정 지역이거나, 심지어는 소망교회 출신이어도 능력은 출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시선이 옳다면 우리는 인사문제를 오직 능력의 관점에서만 논해야 하니, 위의 비판도 무의미해진다.
더 큰 문제는 ‘능력’과 ‘사생활’에 대한 이분법에서 ‘공적 생활’의 영역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법철학/사회학과 인권을 연구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말한다면 사생활과 공적생활을 어떻게 구획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런데 이 문제는 문제 자체로만 따진다면 사실 양자 사이에 겹치는 영역이 많아서 구분이 쉽지는 않다”고 문제를 정의했다. 그는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사안들을 보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 그가 한 재판, 관용차 사용 부분, 기업이 협찬했다는 의혹, 부동산 문제, 정치자금 후원 등이 문제가 되었다. 이는 사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공무수행에서 나타난 문제들이다”라고 말했다.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구분이 쉽지는 않지만 이동흡 후보자의 경우 문제된 사안들이 ‘명백하게 공적인 생활’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그는 “김용준 후보자의 경우는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다. 가령 부동산 문제의 경우 그 자체로는 사적인 문제이지만, 세금 문제는 공적이라 볼 수 있고, 부당한 이득을 올렸을 경우 집 없고 땅 없는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사생활 문제지만 공적인 성격이 있어 공직자에겐 더 엄격한 검증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그는 “(김용준 후보자의) 아들 병역 문제의 경우 그 자체로는 공적인 부분이나 그 아들들이 어떤 질병 때문에 면제가 되었는지 여부는 사실 사적인 영역이다. 언론들이 면제의 특권 여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데, 문제제기를 하면서 질병이 뭔지 파헤치겠다고 추측을 남발하는 것은 당연히 사생활을 침해하는 구석이 있다”고 언론의 태도를 일부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추측보도가 나오게 된 원인도 소명이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가령 박원순 서울시장 사례와 비교했을 때, 학위나 아들 병역 문제 등은 검증이 필요한 부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을 본인이 정리를 해서 빨리 소명하고 처리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추측보도에 대해서도 김용준 후보자 개인의 처신 잘못도 있다. 소명자료를 내놓았는데도 믿지 못하고 계속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아예 소명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다른 사안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또 그는 “물론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이런 종류의 문제들이 무더기로 나와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그래서 사전검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문제가 많은 사람은 거르고, 잘못은 없지만 의혹제기할 만한 것이 있다면 미리 소명을 준비했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종류의 검증체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박당선인의 인사의 허술함을 비판했다. 이런 구분의 차원에서 본다면 박근혜 당선인이 비호하고 있는 것은 ‘코드인사’, ‘회전문 인사’, ‘향우회 인사’,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보다도 더 나쁘다. 사실 ‘코드가 맞거나, 친분이 있거나, 특정 지역이거나, 심지어는 소망교회 출신’이란 것들은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사생활에 속한다. 우리는 이 사생활의 요소들이 고위공직자들에 반복되어 나타날 때, 대통령의 인사의 기준이 사생활의 영역에 잠식되어 있으리라는 추측으로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이동흡 후보자와 김용준 후보자에게 적용된 검증의 기준은 그야말로 공적인 것으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구분을 깡그리 무시하는 박당선인의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물구나무선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일 수 있다. 즉 ‘타진요’가 자신들이 ‘공인’이라 낙인찍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공적 생활’로 환원한다면, 박근혜 당선인은 명백한 공무수행자의 공적 활동을 ‘사생활’로 치부하려 한다. 이러한 양극단의 태도가 있을 때, 보통의 생활인들은 적어도 직관적으로라도 두 입장 모두에게 무리가 있음을 알아챈다. 하지만 정작 양극단에 위치한 이들은 상대방의 오류를 자신의 정당함의 근거로 둔갑시킨다. 즉 박근혜 당선인은 연예인에 대한 누리꾼의 무리한 ‘신상털기’를 인사청문회나 공직자 검증 보도가 문제가 있다는 근거로 활용할 것이다. 한편 ‘타진요’ 성향 누리꾼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사생활’을 근거로 자기 사람들을 비호하는 바로 그 모습을 보면서, 타블로의 사생활을 근거로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은 ‘기득권’을 수호하는 일이라 부르짖을 것이다. 물론 '명백한 신상침해‘와 ’명백한 공적 검증‘ 사이 애매한 영역도 있다. 가령 방송에 나와 ’이주여성‘의 삶을 소개하다 정치인이 된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을 생각해보자. 방송에서 자신의 이력을 다소 과장한 것을 두고 돌을 던지기는 어렵다. 다만 선거공보물에 이력을 쓰면서 허위기재를 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자스민의 ’학력위조‘ 의혹이란 건 방송에서 말했던 것과는 달리 공보물에 학력을 ’제대로 기재‘하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학력위조‘라고 부르기는 지나친 부분이 있다.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만일 타블로가 정말로 학력을 위조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타블로가 ’가수를 사퇴‘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그와 대중 사이의 신뢰의 문제였다. 그렇게 본다면 이자스민의 경우는 의원 후보나 의원으로서 잘못한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누리꾼들이 특정한 판결에 분개하여 그 판결을 내린 판사의 ‘신상’을 터는 것도 애매한 경우다. 한 판사의 지난 판결을 거론하며 그의 시각을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판결은 다른 법조인과 시민사회에 의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런 와중에 법리해석에 대한 이견이 제기될 수 있고, 법논리를 벗어난 더 근본적인 시선에서 비판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많은 판결문이 공개되어야 하고, 높은 평가를 받은 법관이 중용될 수 있는 제도가 고민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판결문의 논변을 적시해 비판하는 것과 '신상털기'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특정한 판결에 분개했다 하더라도 해당 판사의 출신지역·출신학교 등을 까발리고 그가 어떤 인맥 때문에 이런 판결을 내렸을 거라 비난하는 것은 향후 판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없을뿐더러 일종의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그리고 인터넷 세계에서 이 ‘정보’는 종종 날조된다). 이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올 때마다 그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고 비난하는 조중동의 보도행태를 볼 때 무슨 느낌이 드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누리꾼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신문 역시 그저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실제와는 상관없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 ‘애매한’ 영역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근혜 당선인의 ‘착각’이 위에서 예시로 든 것과 같은 ‘애매한 영역’이 아니라 ‘타진요’가 그랬듯이 ‘명백한 영역’에 대한 것이란 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의 잘못된 인식을 규탄하며, 한국 사회의 공적 담론이 이루어낸 성취를 계속해서 그의 인사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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