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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혈 (수필)

댓글 6 추천 3 리트윗 0 조회 188 2013.01.29 13:09

귀혈貴穴

<우리노짱님>

 

 

 

 

나란히 자리한 쌍분雙墳이 오묘한 힘을 느끼게 한다. 더 없이 맑고 아늑하며 소박하게 다가서는 기운이 생전 우리 노짱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꼭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에 온 듯 친근함도 들게 하고 어느새 ‘내 새끼 왔나’! 하고 덥석 안아줄 듯한 인자함도 묻어난다. 여느 봉분과 다를 바 없는 동그마니 작은 묘소가 그런 느낌을 준다.

 

정말 대통령부모님 묘소일까! 티브이로 보아왔던 역대대통령들의 호화묘소가 기억나 몇 번이나 비석의 글자를 읽었지만 그 주인공이 분명하였다. 그야말로 우리조상의 묘이고 이웃사촌의 무덤이었다. 서민적이라 하지만 이리도 욕심이 없었나 할 만큼 권력이란 뜻은 단 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없이 다정다감해 보이기까지 했다. 넓게 펼쳐진 들판을 앞으로 하고 낮은 산등성이 아래 편안히 누운 듯한 자태가 친근함을 주었다. 생전같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 하고, 막내아들 판사시험 합격에 가난 면했다고 좋아하던 당시의 모습도 떠올랐다. 얻어 먹이다 시피 한 자식이 별정직을 따냈으니 그 감격이야 무엇에 비교하랴. 어디 학비한번 제대로 주었던가. 공사판에서 다친 허리 비틀거리며 고등학교를 마친 아들이 아니던가. 생각할수록 그 대견함을 떨칠 수 없었을 게다.

 

생전의 예감대로 ‘우리 무현이 대통령 될 것이라는’ 예언이 적중했음을 알았을 때 어머님은 지하에서 그 기쁨을 어떻게 맞이하였을까. ‘백말을 풀어주며 타고 가라던 할아버지가 나타나던 태몽을’ 기억하였을까. 아니면 젖먹이 등에 업고 30리 걸어 장사 길 나섰던 아픔들을 회상하였는지. 나는 묘소 옆에서 한 여인의 한없이 강했을 모성애를 그려본다.

 

마흔 셋에 얻은 지금의 대통령이 된 아들은 모친에겐 귀함을 떠나 걱정부터 앞섰던 자식이다. 남편이 번 돈은 억울하게 사기 당해 버렸고 맨몸으로 부딪쳐야 했던 여자가장의 고달픈 생활은 앞날이 무섭기까지 하였으리라. 특히 늦게 둔 아이에게는 더 애착이 가는 법이다. 지금처럼 고령화 사회가 오리라는 예측도 불투명한 시대였고 늙어 가는 자신을 바라볼 땐 부모도리 제대로 못할 듯한 불안감은 어떠한 위로도 해당될 수 없었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3-40리 시장 길이 멀리가 없었다. 또한 무능한 남편의 권위도 세워줄 수도 없다. 자식의 불행이 빤히 내다보이는데 세상 어떤 도리가 통하겠는가. 돈이 있나 젊음이 있나. 그 어떤 것도 남겨줄 수 없는 처지가 늦둥이 엄마들의 고충인 게다. 그저 있는 힘껏 뛰고 달리는 게 최선의 도리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식의 인생은 부모가 선택한 법인만큼 살아갈 길 또한 열어주어야 하는 게 부모의 책임이다. 부부가 함께 힘을 합쳐야함은 두말할 필요 없지만 그게 아니 데니 문제라는 것이다. 유독 품위 없는 대통령이라는 항의를 많이 받을 때마다 나는 품위를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노짱님의 말씀이 그것을 전해주고 있다. 그 답변은 아버지의 가장 역할에 문제점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닐까. 더러는 모친이 부친을 구박했다는 말들도 들렸다. 무엇보다 남자의 노동역할을 요구하는 농경사회에서 남편의 자리가 튼튼치 못할 때는 더욱 이런 소리를 듣기마련이다. 더구나 노산의 후유증까지 따른다면 어려움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러니 어머니의 머리와 어깨에는 한순간도 농산물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들나물 산나물 채취도 그녀의 몫이어야 했고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이고 지고 달려가야 했다. 가진 것 없이 늙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이것뿐이었다. 혹여 라도 노쇠한 몸이 빨리 병이라도 난다면... 그런 불안감은 어떤 장벽도 뛰어넘어야 했다. 더 늙기 전에 이 아이 장래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일념은 30리 길이 고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영에서 마산까지 먼 길을 여자상인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귀혈이란 사실 명당 터를 두고 이르며 자식이 귀하게 된다는 뜻이다. 풍수라는 명제 앞엔 나는 그 어떤 이유도 말할 자격은 없지만, 우선 노짱님의 환경에서 걸어온 어머니의 식견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노산의 몸으로서 살아온 여인이기에 그 헌신이 여느 어머니와는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어떤 고귀함도 젊음에 비할 수는 없다. 패기라는 것은 튼튼한 몸과 마음에서만 창출될 수 있는 법이다. 사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뜻은 현대에 맞는 말이 아닐까. 가난에서는 나이를 극복할 수 있는 축적해 둔 에너지가 없다. 그저 책임과 의지로 이겨나가야 하는 게 당시의 삶이었다. 그 점이 오늘날 귀혈을 낳은 이유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껏 풍수학으로 보던 사람들도 현대에 와서는 생전 반듯한 삶과 결부하는 예가 있다. 출중한 인품은 세상이치를 움직일 만큼 좋은 기를 모은다는 뜻을 말함이지 싶다. 결국세상질서는 우리인간들에 의해 운영되어왔다. 흙 한줌 풀한 포기도 사람들이 있어 그 가치가 빛났고 역할도 물론 다양화되었다. 우리 또한 그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공존하는 관계이니 자연과 인간의 기는 바로 통일된 영속성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무엇보다 풍수가 거기 해당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러니 마음이 명당을 만들고 명당이 귀혈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는 뜻이 나만이 내리는 결론이 아니리라 여겨본다.

 

내가 귀혈의 주인공을 더욱 깊이 평가해볼 수 있는 이유는, 내 어머니가 마흔 셋에 나를 낳았고 내 나이 마흔에 아들을 낳았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노산의 집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에 굶주림과 노화 앞에서 한나라 대통령어머니가 되기까지 아무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식을 위한 일념도 누구보다 뛰어나야했고 삶의 열정은 불꽃 틔는 끈기만이 가능했다. 즉 보통사람으로서는 이겨내기 어려운 강한 정신력만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제는 도전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귀혈을 음미해야겠다. 풍수라는 세계와 한 몸을 이루는 일체감도 느껴볼까 싶다.

 

한 여인의 일생이 소리 없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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