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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13:47
한의 노예가 된 듯 싶다.
민주주의를 이끈 주역들이 그렇게 전락했다.
세상은 이전보다 많이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바뀌지 않았다.
역동의 세월 속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투쟁을 통한 성취 아니 쟁취만 배운 것 같다.
투쟁을 함께 한 또는 함께 할 동료에게만 애틋한 사람들이 있다.
"자발적"을 외치고 뜻이 같아야 한편이라는 공식이 굳어져 있다.
왜 이들은 바뀐 세상을 인정하지 않을까?
자아를 상실하기 때문 같다.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힘든 지난 세월의 고통들이 발목을 잡는다.
한 번에 모두 다 바꾸길 바라는 마음이 과해 보인다.
조금씩 무리 없이 바뀌길 바라는 것도 필요한데
하나의 결과가 세상 전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분전을 다짐하지만
실속은 없고 편협한 무리가 생기고 자유와 자율을 내 세운 방종이 기승한다.
수 많은 선열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이루려던 민주주의가 고작 투쟁으로 전락된
슬픈 현실에서 그 보다 무서운 어두운 미래를 본다.
따질 것이 많아서 진보라면 내가 진보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은 따뜻하다 믿는데 정작 그들의 가슴은 한정된 무리에게만 따뜻하다.
때가 되어 힘을 보태야 할 때도 물러 서는 법 없이 권리를 탐하는
그 것이 마치 정의인양 믿는 사람들이 이 나라 미래를 걱정한다.
그들의 걱정은 승리를 탐하는 발견에 있고 그들의 발견은 탓이다.
오만가지 탓으로 상대를 압박하려는 심보를 벗어나지 못하며 제자리 걸음하다 물러 섰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자성은 커녕 정의를 내 세워 제 편에게 득이 될 사람들을 내치려 한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면 자기들만 남는 것을 두고 세상이 깨끗해 졌다고 말할 사람들
세상은 절대 깨끗해 질 수 없다.
세상은 절대 투명해 질 수 없다.
말은 할 수 있지만 실제 이룰 수 없는 세상을 놓고 정의를 발산하는 건 어리석다.
당신과 나의 세상이 다를 때 다른 그 세상을 서로 이해하며 수용 할 수 있을 때
개혁이나 혁신 같은 게 가능하다.
버리자는 것이 아닌 고쳐서 함께 가자는 것이 개혁이고 혁신이 아닐까?
한 에 파 묻혀 투쟁 거리를 찾는 건 짐승의 본능일 뿐 정의가 아니다.
버리기 위한 투쟁 그 것으로의 전락이 아프다.
그 많은 선열들의 애틋한 주검이 고작 한으로 남아 꼬장이 되 버린 이 현실이 참담하다.
주검으로 그 분들이 말하려던 것은 바르게 고쳐서 함께 가자였을 게다.
정의를 응징으로 오해하며 분노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이 세상이 빛을 잃는다.
누구든 당신의 세상에 초대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서 진보가 번성한다.
내 쫓지 마라 모셔와도 모자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