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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1 15:24
먼저 쌍용차 문제의 작은 실마리가 풀린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아직 풀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지만 아주 늦은 첫 단추를 꿰었으니 나머지 문제도 적절한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우경화된 세상에서 보수 정권의 유리함은 이렇게 입증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역사의 보편적 발전과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진보의 숙명과도 같은 것들에 대해 다루어볼까 합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기초생활수급자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로 한 것에 이어 처음으로 노동현안에 대한 언급을 했습니다. 쌍용차 문제의 작은 실마리도 같은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현대차가 엄청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마저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진행된다면 박 당선인은 연이어 점수를 따게 됩니다, 그를 지지하지 않는 48%의 일부에게서도.
박 당선인의 행보보다 더 극적인 상황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극우 성향의 자민당 아베 총리가 새롭게 정권을 잡은 후에 내놓은 일본의 세제개편 방안이 마치 진보 정권을 보는듯합니다. 아베 총리는 ▲소득세 최고세율 40%→45%로 인상 ▲상속세 과세 대상의 확대 ▲고용확대와 사원급여 인상 기업에 법인세 감면 ▲손자에게 교육비 증여 시 1인당 1000만~1500만 엔 면제 ▲중·저소득층 지원(주택구입 등)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아베의 세제개편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국민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도 한 이유지만 그것보다는 국민 전체에게 부를 분배해 소비를 진작시켜 20년째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는 일본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주 목적이 있습니다. 이른바 전세계 진보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부자와 기업에 대한 증세(또는 특정 조건 하에서의 감세)를 통해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을 이루어보겠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대선 패인에 대한 글에 중에서 보수는 과거에서 배우고, 특히 진보의 정책들을 연구해 자신의 정책으로 흡수한다는 말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또한 옛날의 진보가 지금의 보수라고 하면서 세상은 좌측으로 많이 이동했음도 함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이 너무 힘들어 자살밖에 택할 것이 없다는 분들에게 세상은 진보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살아보시라 했습니다.
이번 아베의 세제개편과 중·저소득층 지원은 자민당이란 보수정권의 60년 독점을 깨트린 민주당에서 선거공약으로 들고 나왔으나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들, 보수 시민단체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쳐 시행조차 못한 것들입니다. 물론 민주당의 공약에는 그보다 더 진보적인 것들도 있었지만 이 정도의 변화조차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가 이번에 당선됐다면 박 당선인처럼 모든 언론들의 칭찬과 기업들의 자발적인 협조 속에 앞에서 언급한 조치들이 진행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당선된 다음 날부터 얼마나 많은 저항에 직면해야 했는지 되돌아본다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전후 미국에 의해 국가 구조가 재편된 나라들은 그 출발부터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앞선 시대에 겪었던 일을 우리가 20년~5년 사이로 따라하게 되는 것도 그 근본적 뿌리를 성찰해보면 같은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에 의한 국가 개조이지요.
식민지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주로 뉴라이트 계열에 많이 포진해 있다)은 일본의 한반도 토지대장 작성이 어마어마한 개혁인양 떠들어대지만 벤야민과 칼 폴라니 등의 저작들을 읽으면 그것이 바로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 가는 핵심임을 알게 됩니다. 처음으로 땅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은 그 땅을 도시개발을 위한 수용절차에 따라 반강제로 팔게 되고 잠시 목돈을 손에 쥐지만 땅은 자본의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투기붐(18세기의 런던, 19세기의 파리가 그랬다)이 일어나고 각종 상가들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자본들은 도시를 장악하고 넓혀나가게 됩니다. 그러기를 60년이 넘어서면, 중간에 ‘잃어버린 10년’이나 ‘IMF환란’ 같은 것을 겪게 되면 더욱 급속한 재편이 이루어지고 각종 불평등은 극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세상(국가와 국민의 우경화를 반드시 동반한다)으로 가는 보편적 과정입니다.
더욱 아쉬운 것은ㅡ그러나 당장의 삶이 생존의 근처에서 허덕이는 분들에게는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과정에서 진보의 가치와 정책들이 보수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 보수의 통치 역량은 강화되고 진보의 영역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세상은 좀더 좌측으로 옮겨왔지만 그만큼 진보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고, 실제 진보좌파는 그런 방식으로 역사의 발전에 공헌해왔습니다.
제가 여러 번 쓰려고 하다 머릿속에만 담아두고 있는 글 중에 ‘진보는 자본주의와의 타협방안을 세워라’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런 세계사의 흐름으로 볼 때 진보좌파가 신자유주의 이후의 세상, 즉 자본주의4.0 세상을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려면 적정선에서 자본주의와의 타협방안을 세우지 않으면 집권의 가능성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4.0은 ‘1% 대 99% 사회’의 해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세상을 보다 좌측으로 옮기려면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좀더 좌측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자본주의4.0과 타협점을 찾되 그 최종 목표는 더 큰 평등이 실현되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지금 안철수를 언급하거나 중도를 얘기하는 진보세력들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상부구조(광고와 소비로 대표되는 세상)를 바꾸지 않는 한 하부구조(생산과 유통방식)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앞으로의 진보는 상부구조를 바꾸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최근 스티글리츠가 ‘가장 치명적인 경제 위기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바다도 상당히 산성화됐고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라 생태계의 꼭지점에 있는 인간에게도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아무튼 진보의 가치와 정책을 덥석덥석 삼켜버려 그 영역을 넓히는 보수의 놀라운 유연성은 이번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과 아베 총리를 통해 또 한 번 재현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보수의 변화를 권위주의적 유사진보의 꼼수라고 합니다. 형용모순인 이 말은 세상이라는 것이 결코 논리나 지식, 숫자나 이념으로만 재단될 수 없음을 말하기도 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다음 선거에서 진보좌파 세력이 집권하려면 모조리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21세기의 진보좌파가 가야할 길에 대한 정립부터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통치의 기간을 늘려 가면 야금야금 진보의 영역을 잠식해나갈 보수 정권 하에서 국민들의 삶은 아주 조금씩만 나아질 것입니다. 근본을 바꾸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