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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20:18
성장 담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인류를 파멸로 이끌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계에 이른 것이지요.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 속에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조금이라도 더 이끌어가고자 하는 정치경제적 논리조차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정도이니 생명이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자본과 국가(민족과 인종 포함)의 연합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실 자유 시장 하나만으로도 인류는 종말에 이를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 갈 때까지 가고야 마는 대량 생산(이제는 아웃소싱이 일반화됐다)과 광고를 중심으로 창출된 과잉 소비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인류도 지구도 그 한계점에 이른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밖에도 ‘물보다 싼 석유’를 중심으로 주로 대량 생산에 맞춰진 과학기술의 발전(그러나 생태계 파괴나 환경오염, 지구온난화와 물 부족 등 문제투성이의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는)과 사회 및 공동체의 파괴와 개인의 소외를 창출하는 대신 1%의 권력에게 무한대의 능력을 부여해준 정보통신 혁명까지 온갖 요소들이 복합돼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리 많은 관변학자들과 체제 및 기득권 수호 세력(수구 꼴통)의 해괴한 논리와 광고로 돌아가는 극도로 상업화된 방송들이 이런 현실을 아무리 숨기고 왜곡하고 호도해도 더 이상 자유 시장 자본주의 중심의 성장 담론이란 절대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인류는 경제 성장이 역으로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 시점에서 보면 분명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파시즘적 속도로 빨라진 성장이 인류 전체의 삶과 지구라는 환경의 파괴까지 이어진 현 시점에서 보면 인류는 빠르게 퇴보하는 중입니다. 제임스 베니거가 《통제 혁명》에서 밝힌 것처럼 세계를 극도의 혼란으로 몰고 간 19세기의 폭발적인 성장을 새로운 통제 혁명(물류체제와 산업재편을 가능하게 해준 정보통신이 핵심)으로 제어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통제가 가능한 시기는 한참 지났습니다.
게다가 식품학과 의학적 지식 및 기술의 발달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인류는 더욱 힘겨운 시기로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전세계의 생산을 담당했던 중국마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 인류의 퇴보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자체로 초 슈퍼컴퓨터인 양자 컴퓨터가 일상화 되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물론 인간의 몸과 정신을 과학기술과 의학 및 생명공학, 화장품과 패션 등으로 최대한 빨아먹는 산업은 번창하겠지만.
헌데 이런 공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차피 지구라는 행성의 나이가 100억 년 정도 남았으니 지구에서의 역사라는 것도 최종적인 한계는 있습니다. 다만 그런 불가항력적인 것들을 번외로 하면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삶은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보다 행복해지고 윤택해질 수 있습니다.
이미 1970년대에 슈마허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등에서, 그보다 전에는 칼 폴라니 같은 정치경제학자는 《거대한 전환》 등에서 이미 해답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사회적 경제와 공동체의 부활, 협동조합의 활성화, 선진국과 후진국을 연결해서 공존의 묘를 찾는 중간 기술 및 청정·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농촌의 활성화 등을 통해 인류에게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내놓은 해법들이 정치와 경제 및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1%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인 수탈적 생산방식에 너무 집착해서 상부구조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했고, 유럽(특히 영국의 런던)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르크스가 정치의 영역을 너무 축소시킨 것도 한몫했고요.
위대한 미셀 푸코가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절대적 공헌을 한 각종 학문과 지식들(지배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사회학과 건축학, 정신분석을 필두로 한 의학, 각종 심리학과 그 밖의 인문학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감으로써 규범적 사법제도와 자본주의가 세상을 점령해나간 것을 고발하다 8년간의 긴 침묵 끝에 인간(의 성)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사람이 먼저인 세상(+저녁이 있는 삶)으로 가치의 기준이 바뀌면 공멸의 길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당장 1%의 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대체할 방법은 없습니다. 국가라는 한계를 넘어선 초국적기업들의 그물 같은 연계망에 의해 거꾸로 된 세계를 일거에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우주 전체를 기본입자 단위까지 관장하는 전능의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보다 한참은 아래 단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 처음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는 정치의 기능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사실 정치의 기능이 전세계적으로 원활하게 작동하면 군사력 강화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칸트의 국제평화체제와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과 일맥상통하지만 각국의 정치가 자본과 민족 및 인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인류는 비로소 민주주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저는 칼 폴라니의 사회의 복원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사회적이며 지역공동체적 경제라는 이중적 경제의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주의의 논리(1인1표)가 1원1표와 조화를 이뤄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 이르지도 못했고 이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런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내려면 개개인이 보다 지적 영역을 넓히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삶의 곳곳에서 민주주의 정치 원리에 대해 배우고 익혀서 스스로 강해질 때 세상을 개혁하기 위한 지혜가 기득권 위주의 시스템마저 넘어설 수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yes, we can 하려면 지적 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필자 말고도 세상 곳곳에서 인류의 위대한 지적 재산들을 쉽게 풀어내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어려워하는 것들을 21세기적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에 동참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분들은 TV 시청과 정보통신기기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교양서적들을 읽으십시오. 자기계발서나 힐링 용 서적들이 아닌 인류 공존의 지혜가 담겨 있는 책들 말입니다. 특히 《죽도록 즐기기》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읽으면 커다란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내용이 별로 어렵지도 않으니까요. 그렇게 현대의 진정한 모습들에 대해 다룬 책들을 한 권씩 읽어가다 보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열릴 것입니다.
지금 제 글을 읽고 계신 분은 글을 다 읽은 다음에 제가 언급한 책들부터 사서 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나서 필자가 사는 용인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 특정 날짜를 지정해서 모이면 저와 토론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제 건강 상 봄과 가을에는 이런 일들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일단 TV 시청과 인터넷 사용 시간부터 줄이기를 부탁드립니다. 스마트폰도 멀리 하시고요.
이제는 정말로 정치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시작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각종 소비 중독 현상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TV 시청과 인터넷 사용이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마시고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류 공존의 지혜가 있는 곳으로 지금 다가가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