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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8 10:51
모시 떡국
<우리 노짱님>
잠자리 날개옷으로 표현되는 모시가 몇 십 년째 우리 장롱 안에 잠자고 있다. 정말 귀하디귀한 그 옛날 비단옷만큼이나 귀한 모시가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비법을 써가면서 보관한 것도 아니다. 그냥 보자기 싸서 한쪽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모셔두었을 뿐이다. 가끔씩 생각나면 풀어보기는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좀 친 구멍이라 던지 사람의 고운 살색을 나타내주던 색상은 한 치도 변색됨이 없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러 변하게 마련인데 모시의 성질은 세월의 흔적을 말하지 않았던 게다. 일편단심의 지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빛깔과 결은 여인의 정절을 느끼게 한다. 분홍과 배지의 중간색을 띈 색상은 영락없이 보드라운 여인의 속살을 보는 듯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어서 이리도 정감이 가는 것일까. 올 하나 흐트러짐 없이 결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분명 현대적 기술을 능가하는 자태를 말해주기도 한다. 올올이 섬세함이 묻어나고 그 정성이 고결하고 견고했음이 가까이 하면 할수록 깍듯한 애정을 불러온다.
심지어는 경건해지기까지 한다. 180센티미터나 되는 크기의 줄기를 겉껍질을 벗겨내고 속껍질을 이와 입술을 이용해 쪼개어 가는 실을 만들었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준다. 이 순간이 바로 모시의 결을 결정하는 과정이니 눈과 마음의 기를 모으지 않으면 한편의 옷감을 마련되기가 어려운 법이다. 얼마만큼 가늘게 쪼개느냐에 따라서 곱고 굵은 옷감이 결정되는 셈이다. 모시의 품질은 바로 우리 어머니의 입술에 달려있다. 가족의 여름나기를 위해 이렇듯 가볍고 고운 실을 뽑는데 정성과 애정을 다하였던 모성애적 희생정신이 놀랍기만 하다.
수십 년이 흐르는 동안 내 어머님이 물려주신 모시 한필을 지금껏 보관하고 있는 이유도 극진했던 과거 우리 어머니들의 가족애 정신을 만나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쪼겐 모시를 이어 붙여 ‘날기를 해서’ ’꾸리를 감아, ‘마지막베틀로 짜‘ 천지자연의 이치대로 태어난 한필의 모시를 볼 때마다 기가 막힌 음양의 상생이며 조화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여성들의 정숙하고 섬세함은 이런 길쌈을 통해서 길러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정말 길쌈은 특별하리만치 섬세하고 정숙하지 않으면 이루어내기가 어렵다. 모시 필을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자. 우선 기계로 찍어낸 듯 잔손질로 이루어진 그 고르기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나는 고도의 현대과학도 그 질이나 빛깔은 우리 여인네들의 손끝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관찰하면 할수록 깊은 느낌을 준다.
이런 저런 이유였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화단에 모시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다. 수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한해도 그르지 않고 때맞춰 자신의 삶을 비춰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렇게 모시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자태를 아마 기억에서 잊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장롱 안에는 어머니의 체취와 함께한 모시한필이 고이 잠자고 화단에는 사계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생물의 혼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이 또한 귀한 인연이 아닌가.
바로 모시떡국이 인연의 단어를 일깨워 주었다. 모시 떡이란 말은 근래 와서는 더러 들었다 만은 예전에는 음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모르던 시대였다. 흔하게 재배하였지만 잎은 그저 그름으로 여겼다. 집 앞 넓은 밭에 무성한 모시의 잎이 싱그러움으로 넘쳤지만 뿌리와 줄기의 공생관계로만 알았을 뿐 식탁에까지 오르리란 생각은 못하였다. 유독 잎을 소꿉놀이에 쌈으로 잘 이용하기는 했다만 지나고 보니 그 잎이 지닌 성분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는지 참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선견지명의 주인을 오늘 모시떡국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향수와 식탐을 일으키는 “모시떡국이요, 모시떡국!” 택배기사의 목소리는 이웃까지 자극하여 너도 나도 목을 내 밀어 구경하기들 바빴다. 아주 진한 초록떡국으로 그 옛날 모시 잎 색과 밭에서 새어나오던 향을 고스란히 담고 노무현대통령의 고향마을에서 배달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펼쳐놓고 떡 조각을 먹기 시작했다. 그 싱그러운 공기를 선사하던 모시 잎이 수십 년이 흐른 후에 건강식으로 찾아올 줄 누가 알았던가. 따가운 햇살이 슬슬 여름이라는 계절을 알려올 때면 앞 다투어 넓이를 더해 무성히 숲을 이루던 그 잎이 초록떡국으로 태어나 나의 곁으로 왔던 것이다. 햇볕 한 점 스며들 공간 없이 왕성한 기운을 펼치며 서로의 시샘이나 하듯 건강한 모습들을 펼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비라도 하루 듬뿍 오는 날에는 활개를 치듯 녹음들을 만들어내었다. 우리들은 손바닥과 잎과의 크기를 재면서 손 크기를 앞서가던 넓은 잎을 참으로 신기해하던 기억도 새롭다.
오늘날에 떡국으로 태어날 잎이여서 그렇게 소중하게 와 닿았을까. 어쩌면 영원히 지나치고 말았을 모시 잎이 떡국을 만나면서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모두가 우리 노짱님의 유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초근목피 하나하나 연구 개발하여 식탁으로 불러들이는 지혜가 진정 우리 농부 대통령의 면모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그로부터 얻어지는 건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집에는 백미와 초록이 어우러진 떡국이 이제 별미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껏 먹어온 떡국이지만 모시의 등장으로 새로운 음식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바른 정신은 이처럼 큰 기쁨을 가져온다는 것을 떡국을 대할 때 마다 느끼게 된다. 이런 점이 바로 농촌개발 진정 농촌재건이 아니겠는가. 초록색이 고명처럼 산뜻하여 그 잎들의 잔치가 내 식탁을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