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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22:43
내일이면 강원도와 이별이다. 눈에 쌓인 평창의 밤과도 작별이다. 고즈넉히 다가온 평창의 별과 해후를 기다린다.내 삶에 다가온 무수한 여정의 일부분이지만 성공과 실패의 편린인 기억의 저편 너머다. 문재인을 지지한 식당주인과 여관집 딸이자 국립무용단의 단원인 그녀와도 이별이다.
연휴 기간에 내려온 모텔 주인장 딸과 한참이나 대화를 했다. 내 키를 2미터로 착각하고 좋게 평가하는 주인장의 배려로 그녀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립하지 못하고 예술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금전적 도움을 받고 있다. 그녀가 말한 발레의 용어 중에서.."브리제"란 말을 했다. 대충 그 뜻은 점프하여 다리를 차는 동작이라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도움이 나를 움직이는 브리제로 표현하고 싶었다. 도움과 진동의 그 끈처럼 서로 연결되었다는 뜻이라고 자위적 해석을 했다.
사람사는 세상 여성회원과 아주 친하다. 그녀와 카톡을 자주나 한다. 대화의 내용 중 99.9%는 책에 관한 내용이다. 서로 누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와 독후감을 이야기한다. 경제사에 관심이 주인 나와 역사적 사실에 관한 책을 주로 탐독하는 그녀와의 대화는 즐겁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깨닳음을 주고 있다. 방편삼아 읽은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고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내가 생각지도 않은 주인공을 어시스트하는 "리스베트 살란데르"의 전지적 전인적 관점을 이야기 했다. 그 덕분에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 2권을 읽는 동안에 긴장감이 떨어졌다.
강원도는 유난히 용이 나오는 지명이 많다. 영주시에서 내가 캐치한 혈연사회를 이해하였듯이 강원도를 이해하는 부분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있는 "용아장성"을 비롯하여 명태로 유명한 용대리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의 밤을 이겨낸 전설과 비교가 된다. 그 어두운 밤과 겨울을 이겨내기 위하여 이들은 스토리를 말했다. 잠재된 욕망과 참을 수 없는 희망을 용으로 구전했다. 강원도의 힘이드래요?
산이 가로막혀서 이웃집 읍내도 갈 수 없는 동네이자 힘든 동네가 강원도란 생각이다. 산 자락자락에 동네와 집들이 있다. 고단한 강원도의 역사다. 모텔 주인장이 준 옥수수 막걸리를 먹으며 강원도의 힘은 고단함과 지친 인간의 희망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척박한 땅에 고착하기 위하여 그들은 스스로 진화했다는 증거다. 불분명한 언어 습관에서 상대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단순한 생각이 아닐까?
문재인을 지지한 식당주인과의 대화에서 강원도는 힘든 동네라고 한다. 힘이 들어서 언어도 생활도 변했다고 생각한다. 눈이 지천으로 깔린 평창에서 대충 이해하는 투로 고개를 끄덕거려 주었다. 강원도의 힘은 이런 인식에서 살아난다. 페가수서님이 말을 한 "별마루 천문대"는 평창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마루에 있다. 아직 가지는 못했다. 별을 마주하며 강원도의 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설을 풀 기회가 있다고 자부한다.
강원도는 단절이다. 마을마다 이웃마다 단절의 힘이 가져다 준 자생적 생활의 방편을 추구한 동네가 강원도의 힘이다. 60% 이상 박근혜를 지지하고 전국 유권자의 3% 밖에 안 되는 강원도지만 그 단절의 폭과 연합하는 정신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소통은 그 지역적 단절을 극복하는 힘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서 남았다.
친노인 이광재가 있는 동네 출신인 전직이 주지스님과 오랫동안 대화를 했다. 그 주지스님은 당신은 관상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강원도의 관상은 어떠냐고 물었다. 결론은 소통이라 한다. 산을 넘고 물길은 트고 사람과 통하라는 답변이다.앞으로 강원도는 그렇게 변할거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다. 단 그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주석은 빼놓지 않았다.
어제 강원도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도 달도 밝았다. 선명한 북두칠성에서 강원도의 위치는 한국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그 부분의 과장된 빛과 소멸되는 초신성(supernova)의 밝음은 있을 것이다. 강원도의 힘은 그렇게 전승되고 이어진다. 그들의 그 어두운 겨울의 기나긴 밤이 강원도의 힘이다!
..에필로그..간만에 "머치모아류"가 반론을 제기했다. 부정선거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원이 아닌 원론적 답변이라 생각한다. 코멘트를 하면? 논리모순이다. 전제의 오류로 틀린 결론을 내린다. 부족하고 옹졸한 사인으로 상대를 전제하고 있다. 그 주장에 답변까지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머치모아류에 한 마디 한다면 요즘 영화에 틀린 그림 찾아서 비평을 한다는 느낌. 영화는 그 자체로 스토리의 완결성이지 스토리의 과정에 불거진 부분을 평가하지 않는다.
머치모아류에게 책을 추천한다."캔사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란 부제가 붙은 책이다. "토마스 프랭크가 쓴 책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란 책이다. 당신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해하지 못하는 상당부분을 설명하는 책이다. 뉴튼역학을 띄어넘어 "초끈이론"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머치모아? 그 말도 안 되는 "영장주의와 기소독점주의니"하는 말은 집어치우게나..촌빨도 이런 촌빨이 없어요. 충고하자면 "법률은 사실에 기초한다네"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