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 지나면 이 땅에 자리 잡은 제도권(과 기득권) 진보좌파의 몰락으로 점철된 2012년이 끝납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올해처럼 소위 진보좌파라 하는 세력이나 집단들이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필자처럼 지상 최고의 가치란 열린 세상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이고, 그런 민주주의는 하위 개념인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간에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 간의 더 큰 평등을 추구할 때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존재할 수 있음을 굳게 믿었던(아니 그렇게 믿고 있으리라 굳게 믿었던 필자가 어리석었을 뿐인) 동년배들의 변절까지 지켜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당이야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할 때 이미 진보좌파가 아닌 지독히도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정희와 이석기로 대표되는 통합진보당의 유신시대적 관념과 의식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맨붕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결과만 놓고 보면 이제는 유시민조차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진보 매체임을 소리 높여 주장하던, 그래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떠들어 대던 경향신문과 돌아가신 고모부님의 피땀이 어려 있는 한겨레까지 중도보수로 돌아선 것까지 목도하는 것은 차라리 허무함이었습니다. 여전히 이들은 사이비 행태를 벌이고 있지만 나머지 언론들이 너무나 편파적이라 욕을 하기도 힘겨울 정도입니다.
올 4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사이버 공간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혼탁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물론 더 큰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좌파의 가치가 아직도 시대정신이라 믿고 있는 필자로서는 네이버와 네이트는 언급하는 것 자체가 수치입니다.
다음 아고라는 어떨까요? 서프라이즈 같은 온라인 정치 사이트들은 그 이념적 지향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모든 이념적 지향점에 오픈되어 있는 다음 아고라의 ‘경방’은 조금 다릅니다. 비록 그 입지가 형편없이 좁아진 진보좌파의 가치이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의 본질을 지향하는 논객들이 있었습니다.
헌데 ‘경방’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상당수 논객들이 지극히 단편적인 지식과 경험들, 때로는 지독히도 왜곡된 논리와 편협한 관점으로 활동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답답함을 금지 못했습니다. 함량미달은 차치하더라도 진보좌파의 탈을 쓴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네티즌을 선동하는 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진보와 보수의 구별도, 우파와 좌파의 개념도 그 역사의 진화조차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기득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저주나 퍼부어대거나 사이비들에게 열광하는 것을 보며 여러 번이나 사이버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들은 조금도 자신과 다른 생각들에 대해 관대하지도, 고민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솔직히 몇몇 논객들에 대해서는 넌더리가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열하고 허접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칠 수 있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는 논객들을 보면서 세상의 진실이나 그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려야 한다는 처음의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건강이 극도로 나쁜 상황에서도, 몇몇 선동가와 사기꾼들의 협잡 때문에 어느 누군가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고, 치열하게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뛰어난 사람도, 지적으로 완성된 사람도, 인격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해 매일같이 자살만 생각하다 이왕 죽는 것 알고나 죽자는 심정으로 공부하기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된 인생 낙오자입니다. 집안이 성공한 덕분에 굶어죽지는 않지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뒤늦게 시작한 공부를 통해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초 지식 정도를 갖추게 된 사람일뿐입니다.
물론 한두 분야는 전문가 수준에 이른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랑할 정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하도 가짜가 많아서 큰 소리 치는 것이지 실제로는 제 수준이 형편없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시집을 빼고 이제 겨우 6~700권 정도의 전문교양서적을 읽은 정도이니 별반 자랑거리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전문적 영역에 이르게 됐습니다. 언론이나 인터넷에서 자칭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 중에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에서는 분명 전문가 영역에 이르렀습니다. 설사 제가 판별하지 못해도 그 분야에서 성공한 친척과 친구 및 선후배의 도움을 받아 진짜와 가짜는 밝혀낼 정도에는 이르렀습니다. 인문학과 사회학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및 방송통신 분야에서도요.
제가 지식이 늘고 나름대로의 판단의 기준이 확고해지면서 가장 어려워진 것은 거짓말로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의 위험함을 공부가 깊어질수록 깨닫게 되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실생활에서도 거짓말 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 바람에 삶은 더욱 힘들어졌지만.
특히 갈 길이 아직 멀지만, 나름대로의 공부가 깊어지면서 사람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고귀한지 알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조심하게 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면 하루에도 수십 편의 글도 쓸 수 있지만 근거가 없이 거짓말로 쓰는 것은 정말 힘겹고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체력이 딸려 탈고하지 않은 채 글을 올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 제가 쓴 글로 인해 누군가가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잘못 알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죽어서도 속죄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정말로 사람이란 태어났다는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진 존재임을 알게 된 이후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생겼습니다. 명백히 거짓이고 허위인 것이 분명한데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의 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제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자들을 하나하나씩 찾아내어 철저하게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정도이니까요(정말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헌데, 이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진보좌파의 가치가 한도 끝도 없이 몰락하는 가운데에서도.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사람이 먼저인 세상’,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의 목숨과 경험, 지식과 노동마저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에서 신이건 진화의 결과이건 간에 사람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분명하게 들어내는 문장, 필자의 보잘 것 없는 깨달음을 모두 다 담아낸 단 하나의 표현, ‘사람이 먼저인 세상’.
홍익인간도, 인내천도, 예수와 공자와 칸트의 정언명령을 비롯한 모든 성인과 철학자, 종교 경전에 나오는 ‘황금률’에 관한 모든 격언들도 그 핵심에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지향하는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존재의 가치가 무한하기에 개인의 자유란 사방이 막힌 벽이며, 평등이 더 크게 이루어진 세상일수록 더욱 행복하다는 각종 연구결과들이 수천 년에서 수백 년 전에 공표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선언들을 실제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전통 진보좌파의 가치는 정치적 자유와 함께, 더 큰 평등의 실현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양대 축과 동일한 것이고요. 보수우파에도 합리적인 것이 있다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2012년에 이른 지금까지 이 땅의 제도권 보수우파에서 그런 경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진보좌파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 가치가 영원한 비주류요, 마이너이며, 평생을 물질적 가난에 허덕여야 한다고 할지라도. 2012년을 통틀어 철저하게 무너지고 참혹하게 정복당한 바보들의 가치라도 말입니다. 필자는 그래서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며, 가짜와 거짓들이 거두어진 21세기 진보좌파의 부활에 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조금 늙은이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미리 드립니다. 제가 건강이 악화된 상태라 며칠간 글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새롭게 무장하고 더 단단히 거듭날 21세기 버전의 진보좌파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 동안의 관심에 거듭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늙은도령 배상.
P.S. 사람사는세상의 만 번째 회원인 것을 자랑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혹시 문재인 의원님과 연락을 취할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내년이라도 한 번 뵙고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연결이 가능하신 분이 계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