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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0 17:19
우리는 '촛불보다는 투표가 힘이 세고, 투표보다는 제도가 힘이 세다는 것'을 지난 총선과 대선의 결과를 통해 체험하였다.
촛불로 탄핵의 위기를 막았던 시민의 힘은 투표하는 시민 앞에 무너졌습니다.
투표하는 시민의 위력을 잘 알기에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20-30의 투표를 독려하였으나,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거 제도의 한계에 부딪혀 패했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고자 그동안 뛰어난 정치가들이 비전을 제시하며 대통령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대통령의 비전을 설명할 업적을 한 마디로 평가하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왕정에서 식민지 임시정부로 그리고 초기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라는 의의가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계발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이룩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은 12.12로 독재정권을 내몰고 연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킵니다.
물태우로 불렸던 노태우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다는 6.29선언을 발표하여, 군사정권이 다시는 우리의 역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뭘 한 게 없었던 김영삼 대통령마저도 금융 실명제라는 개헌으로 음성적 금융거래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는 법제도를 세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민주화 시대를 이룩하였고 6.15 공동선언이라는 남북정상회담의 뚜렷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계승자로서 10.4 남북정상선언을 이뤄냈고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어 국민 주권시대를 열었으며 국제회의를 처음 유치한 국격을 높인 대통령입니다. 그가 생전에 밝혔듯이 남북회담을 정례화 하도록 만들지 못함이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의 경색이라는 후퇴를 가져 온 결정적인 원인으로 제도적인 뒷바침과 개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반세기 이상 군림하던 보수 권력의 균열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어 보수에게는 대단히 껄끄러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2012년의 보수는 더 이상 새누리당만을 뜻하지 않으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 역시 포함해야 하는 시대로 변화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집합적인 인식과 열망으로 안철수 현상이 나타났음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현상이 패한 이유로 보수도 되었다 진보도 되었다 하는 그의 애매한 포지셔닝도 있지만, 그보다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선언하면서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그의 생각이 '기본이 없는 허약성과 무엇을 제시하는지 알 수 없는 모호함'임을 많은 유권자들이 알아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음으로 박근혜 후보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후보였던 안철수를 누르고 야권 단일 대선 후보로 나선 문재인 후보의 실패의 이유가 무엇이었나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대선의 실패는 노무현을 버리고 좌클릭으로 옮겨간 진보 정당의 실패이며 반독재와 반자본의 운동을 주도했던 구좌파의 권력 해체라는 낡은 사상의 패배입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것이 맘에 안 들더라도 그 자리를 대체할 무언가가 없으면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구좌파는 권력의 해체는 강하게 주장했지만 새로운 권력에 대한 비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51%의 국민이 가졌던 의문은 재벌 해체 해서 그 권력을 누구에게 어떻게 돌려주겠다는 것인지였고, 민주당은 이런 국민들을 이해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재벌 해체하면 나라 망한다는 수구이익집단의 간교한 혀에 그냥 놀아나고 말았습니다. 편파적인 언론과 기회가 평등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설명할 기회가 우리에겐 없었다고 말한다면 비겁한 것이며, 앞으로 그 평등하지 못한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전략 조차 세우지 못하는 무능함과 대책 없는 대안으로 보수에 필패하는 길 밖에 남지 않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제도적 변화를 비교적 많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정치제도의 모순을 여실하게 보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이원집정부제'와 '지방분권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였습니다. 선거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며 개혁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 예를 들면, 부산 총선에서 절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민주당이 얻고도 16석을 내주고 2석 밖에 얻지 못한 것은 제도의 문제였습니다. 온갖 뻘짓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는 민주당의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48%의 득표를 하였다는 것은 그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한 지지가 그만큼 높았음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그러나 총선에서 이미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심판론에 너무나 오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단일화가 늦게 진행되어 버린 탓도 있었지만 본인의 비전을 충분히 설명하고 국민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제도로는 내가 지지한 만큼의 국회의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 인식을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금융실명제와 같은 제도적 변화가 실제로 우리의 정치를 바꾸고 삶을 바꿉니다. 그런데 반성이 없이 그저 진짜 대통령 대신 그 자리에 앉은 도둑 대통령이라고만 치부해서는 미래가 없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제시했던 정책은 투표하는 권력을 이길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보자는 비전의 제시였습니다.
그가 제시했던 제도개혁의 내용과 노무현 대통령이 이룩했던 국민주권 회복과 보수의 기득권 해체를 무시하고 미래를 이야기 한다면, 이는 시대의 변화를 요구하는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5060세대를 투표 거수기로 만드는 새누리당의 행태와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참고: '정치의 몰락' 박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