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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9 02:12
이번 글은 대선 패배의 숨은 원인을 밝히는 글 중에 하나입니다. 고든 레어드가 집필한 《가격 파괴의 저주》과 토머스 호머딕슨의 《거꾸로 선 세계》와 데이비드 시플러의 《워킹 푸어》라는 책들이 있습니다. 이 책들을 보면 전세계적으로 비정규직이 늘고 임금이 생존선 근처까지 하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돌아가는 원리의 일부가 나와 있습니다.
책의 주제는 다르지만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와 필립 짐바르도의 《루시퍼 이펙트》, 존 퍼킨스의 《경제 저격수의 고백1, 2》, 프랭크의 《승자독식사회》,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탈리즘》, 제니퍼 위시번의 《대학주식회사》와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등을 첨부하면 이미 2007년도에 한계에 이른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라도 생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희소한 자원을 놓고 벌이는 무한 경쟁이라는 작동방식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이윤율 하락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시장 안팍에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증대와 ‘요소 가격 균등화’니 하는 것들 때문에 기업들의 이윤율은 갈수록 하락을 면치 못합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이익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거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화시켜야 합니다.
물론 이를 탈피하는 방법은 나이키나 애플이 보여준 것처럼 대규모 투자가 들어가지만 이익이 나지 않는 생산에 관련되는 것들을 비롯해 각종 비숙련 업무들을 아웃소싱으로 돌리고 본사에는 기획과 재무 및 마케팅 조직만 운영하는 신자유주의적인 방식도 있습니다. 나이키와 스타벅스, MS와 애플이 어마어마한 이윤율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반노동적이며 반제조업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임금 하락이 생존선 근처까지 내려온 작금에는 이런 방식으로만 자본주의 전체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나온 것이 월마트 같은 초국적 단위의 가격 파괴 유통기업들이 등장하기에 이릅니다. 포스트포디즘에 기반한 대규모 생산을 유지하려면 이에 걸 맞는 대규모 소비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특히 빠른 임금 하락과 맞물려 저임금노동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갈수록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백화점과 비슷하되 싼 가격으로 생필품(대부분 초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되거나 수입한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는 대형 제품 판매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조업체들의 납품가를 대량 구매로 후려칠 수 있는 그런 초저가 대형 할인마트가 바로 그것입니다.
토지 가격이 낮은 도시 외곽에 넓은 주자창을 확보한 공간, 각종 소비행태에 관한 심리학의 도움을 받은 이동경로에 따라 같은 제품들을 모아놓고 팔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7가지 제품군으로 묶여진 진열대가 끝없이 이어진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이 가격 파괴의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따라 임금 하락에 시달리는 중산층과 하층민들의 욕구를 어느 정도 풀어줄 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경제에서 인용
이렇게 현대 할인경제가 각 국가와 도시마다 자리를 잡게 됨에 따라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으로 전락한 저임금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생존선 주변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 정부의 도움으로 환율이 안정적이고 저임금에 환경 규제가 느슨하며 단순 노동에서 숙련된 노동까지 모든 단계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집중화된 제조업의 천국, 중국의 등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금융 공학의 도움을 받아 급속도로 세를 넓힌 각종 할인 금융과 서브모기지프라임처럼 마지막 재산까지 갉아먹는 대출 경제, 물보다 싼 석유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만능의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통한 대규모 물류 등이 정보통신기술과 합쳐져 전세계가 연결됨에 따라 동기화된 세상이 등장하게 된 것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두 번째 전성기를 맞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분명 각종 원자재들의 가격이 폭등했음에도 세계 경제가 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 가격 파괴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헌데 그 신화라는 것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2008년을 기점으로 해서 대폭발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금융이 실물경제에서 멀어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도 함께 상기시켜 주면서.
그 이후로는 무소불위의 신자유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등 가격 파괴라는 현대 할인경제의 신화는 실물경제까지 물고 늘어지며 참혹한 저주로 돌변하게 됐습니다. 최근에 각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대형마트와 SSM, 체인형 대기업들에 의해 골목상권과 지방경제가 무너지는 것도 모두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번성한 나라일수록 그 피해가 심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옵니다.
바로 이런 현대 할인경제가 18대 대선의 향배를 가른 숨겨진 원인입니다.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현대 할인경제에 자비로운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을 선택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1%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한 진보 진영의 승리는 불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할인경제만큼 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요.
필자가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을 구분해서 경제민주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5천만 명에 이르는 소비자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내수시장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는 뜻입니다. 수출기업으로 자리 잡아 초국적기업의 수준으로 올라선 재벌들과 싸우기 보다는 그들과의 타협과 함께, 내수경제 키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 선봉에는 정치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입니다.
우리나라 진보 세력들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면 절대 보수 세력을 이길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의 전략에 대한 공부와 분석 및 대처가 없다면 백전백패인 것이지요. 대안 방송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 해도 무엇에 초점을 맞춰 국민들과 소통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또 다른 대형 매스 미디어의 탄생과 다를 것이 없게 됩니다.
정말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공부해야 합니다. 최소한 보수 세력들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쏟아내고 있는 각종 보도와 주장들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려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공부해야 합니다. 단순히 대안 방송에서 들려주는 것에만 의존하면 아주 잠깐 동안의 승리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일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적이며 세부적인 논리에서 승리할 때 진보의 가치가 더 큰 평등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 강해지고 세상을 바꾸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면 사이비 정치경제 평론가들의 논리에 속지 않고 앞선 세대들을 설득하며 후세대들과 소통하려면 일정 수준까지는 공부해야 합니다, 반드시.
2012년의 마지막 주말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