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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11:12
1. 2012년 12월 19일 밤. 나는 새누리당 당사 2층 상황실에 있었다.
1시간 전에 발표된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1.2%를 앞섰다. 그래서겠지. 상황실 공기는 생각보다 들떠 있었다.
정몽준 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선대위 관계자 십여 명이 개표상황이 흘러 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뒤로 지상파와 종편 중계카메라와 사진기자들의 사다리, 중계 데스크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1.2%. 까봐야 알지. 민주당 쪽에서도 9시 반이 넘어가면 역전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눈이 빠지게 실시간 개표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격차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당선 유력'. KBS에서 일찌감치 박근혜 후보의 손을 들어주자 텔레비전 앞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옆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카메라 플래시는 미친듯이 터졌다.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들어 오더니 텔레비전 앞 사람들 수가 늘어났다. 부족한 앞자리, 의자 하나에 두 여성이 앉기도 했다.
두 후보의 격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상황실 모습도 비슷했다. 텔레비전 앞에서 박수가 터지면 플래시가 따라 터졌고, 웃음소리가 들리면 카메라들도 찰칵거렸다.
'박근혜 대통령! 여성 대통령!'
박근혜 후보가 당사 상황실에 오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기쁨과 환호가 흘러넘쳤다. 박 후보는 텔레비전 앞 사람들과 일일히 손을 잡고 미소지었다. 아찔했다.
가만히 서서 대학 동기 카톡방에 카톡을 날렸다.
"독재자의 딸이 인권변호사를 이겼다"
내 뒤에 있던 박 후보 지지자가 내 카톡을 훔쳐보고는 시비조로 "자네 어디 기잔가?"라고 물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잠시 뒤 박 후보는 당사를 떠났다.
2. 지난 주말 영화 <레미제라블>을 봤다. 사실 나는 뮤지컬 영화인지도 모르고 스크린 앞에 앉았다. 커다란 배에 연결된 쇠사슬을 끌어 당기는 죄수들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몰랐다.
장발장(휴 잭맨)의 절규와 판틴(앤 해서웨이)의 아픔이 내 가슴 속을 후벼팠다. 영화관에서 듣는 뮤지컬 노래는 더 짜릿했다. 카메라 앞에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러낸 배우들과 그 모습을 6대의 카메라에 담아 낸 제작진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비참한 사람들'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꽃같은 청년들은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지난 40여일 동안 '대선올레'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확인한 민심은 변화였는데... 후퇴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돌려 놓고,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는 경제 제도를 바꾸자는 열망이었는데...
아팠나보다. 더 나은 세상, 더 밝은 미래를 꿈꾸던 사람들이 총칼 앞에 쓰러지는 모습이 아팠나보다. 1470만명이 이번 대선 결과에 아파할 생각에 아팠나보다.
지난 19일 새누리당사에서 느꼈던 억울함과 안타까움이 그제서야 내 밖으로 흘러나온 건지도 몰랐다.
3. 나는 아파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역사를 만든다고 믿는다. 서로의 아픔에 함께 울어주고 서로이 상처를 보듬을 줄 아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이긴다. 이제 5년 남았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미래를 준비하자. 결국 질긴 놈이 이긴다.
출처 :http://blog.ohmynews.com/gkfnzl/18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