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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5 19:32
3일간 휴가였다. 예배당보다 더 치열하게 봉헌하는 불교도인 어머님과 동생, 나, 가족이 모였다.얼렁뚱땅 모태신앙을 자부하는 우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 탄신일에 모였다. 가족들에겐 휴일이 중요했고 휴가가 중요했다. 신앙은 그 둘째였다. 기독교신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렇게 모였다. 예수님의 은총이다. 은총은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예수를 핑계삼은 휴일의 즐거움이다. 페가수서님과 베어크릭님은 나의 이런 표현에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다만 종교에 대하여 편향성은 없다. 유연하자는 모토가 내 주장이니까.
그런데 우리 가족들은 의식적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와 시즌에 예수님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관절이 좋지 않다고 노골적으로 "미건"의료보조치료기의 3백만원이나 하는 침대를 나에게 사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일단 의사에게 물어보고 수술과 의료의 보조적 행위를 하자고 주장했지만 어머니는 나의 말을 씨알도 인정하지 않았다. 섣날 선물로 어머니에게 조만간 그 침대를 기쁘게 봉헌할 예정이다. 이런 행위에는 중요한 슈퍼밈(supermeme)이 숨어있다. 불교도로써 무조건적 기독교를 폄하하는 논리가 숨어있지 않을까? 아직 어머니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았다. 다만 그 불편한 어머니와 기독교의 싸움을 한 전적으로 평가하면 그렇다는 속내가 숨어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를 봉헌한다는 주장에 어머니는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하고 버스에 탑승하여 이명박 반대와 이상득도 반대했다. 어머니의 친구는 이상득체제에서 도의원까지 한 여성지도자였다. 그런 친구가 전화를 했다. 이상득을 지지해달라고.. 어머니는 칼날같이 이제는 그만하라고 했다. 팩트를 원하시면 뉴스를 검색하시라.
어느 날 의사인 "베어크릭"께 물었다. 나이가 먹으면서 노환에 대한 인정을 안 하신다는 나의 푸념에 베어님은 쿨하게 답변하셨다. 이제 조그만 아픔에도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그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으신 어머님이 나에게 마냥 기댄다. 어머니의 언니(나에게 사촌 누나이자 이모의 딸이 병원과 좀 통한다)에게 전화 한 통 이면 최소한 경상도에서 최고의 전문가인 대학병원 교수에게 특진을 받을 수 있는 능력자가 이제는 마냥 나에게 기댄다. 외로운 것인지 세상의 그 불편함을 이겨내고 이제는 즐기려는 편협함의 발로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이제 늙어만 간다. 언젠가 죽음의 강을 건널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태도가 중요하다. 습관이 중요하다. 태도와 습관은 우리를 의식적으로 고착화 시킨다. "에밀 루소"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아무거나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 했다. 사람사는 세상이든 박근혜를 지지하든 무비판적 습관성 마약처럼 이럴 것이다라는 것이다. 보수도 진보도 이런 "하비투스"는 굉장히 위험하다. 도식적으로 자신을 정합화, 정량화 시킨다. 사람사는 세상에 참신한 의견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래서는 진보의 가치가 발전할 수 없다. 그나마 "체 게바라"는 의중을 아주 섬세하게 내밀고 있다. 도식적 보수와 습관성 진보라고 우기는 사람들을 매일 본다. 그들에 의견은 추천이 목적인지 누구나 아는 노멀한 주장으로 인간의 생각을 보수보다 천박하게 우상화 시킨다.
세그웨이를 발명한 "딘 케이멘"은 이런 태도를 경멸했다. 환경을 보호하고 무한의 가능성이 있는 세그웨이이지만 인간의 습관화한 도식적 보수의 꼴통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금 과장했다. 내가 말하는 톤이다. 사람사는 세상에도 이런 노무현 지지자의 도식적 꼴보수적 행위를 본다. 상상력은 결여되고 행위는 진보를 좀먹는 무변화의 무한착각적 유신시대에나 적용되는 어이상실의 생각이다. 보수를 비판하면 무조건 진보라는 생각! 보수는 무조건 적이라는 생각! 진보를 무조건 보수보다 우위라는 생각! 이런 생각은 사실 파시스트보다 더 위험하다. 우리의 생각을 한정하고 발전을 정체시키는 대량학살 무기가 된다는 생각은 털에 눈꼽만큼도 없다는 판단이다.
진보를 방해하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다? 진보를 방해하는 제일의 요소는 태도와 습관이다. 무조건적 반대다. 슈퍼밈(supermeme)이다. 논리도 비젼도 없다. 노무현의 불행에 기대어 기생하는 유해한 해충의 습관이다. 감정적 정서적 반대를 위한 반대의 주장에 그 어떤 "대안과 새로운 경향"도 없다. 갈수록 사람사는 세상의 글질 수준이 떨어지는 원인이다. 누구나 질리도록 같은 주장에 비슷한 논리에 조중동의 도배에 가까운 컨닝에 감동하지 않는다. 감정은 박제되고 노무현은 죽어간다. 노무현의 지지자가 노무현을 정체시키고 머물게 만든다. 노무현이 살아있었다면 경을 칠 노릇이다. 변화가 삭제된 무생물의 자가증식을 본다.
대안이 사라졌다. 노무현은 비정규직에 대하여 입법을 사과했다. 노무현은 그만큼 변화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노무현이 아닌 사람들이 노무현을 박제화시키고 있다. 인식의 전환과 변화가 없다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자들이 스스로 노무현을 가두어버린다.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자력도 아니고 가스발전도 아니다. 상대주의적 입장에서 화력발전(석탄)보다 원가가 싸게친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은 심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시원한 지붕"(cool roofs) 운동이 더 효과적이다. 시원한 지붕 운동은 도로와 집의 페인트 칠을 흰색(white)로 바꾸면 11년 동안 110억톤의 이산화탄소 감소효과가 있다. 20년 동안 한다면 240억톤의 이산화탄소 감소효과가 있다. 에어콘은 20% 감소한다. 2008년 이산화탄소 배출의 전세계적 총량은 240억톤이다. 단 이런 것의 방해는 습관화된 태도와 관습이다. 아파트 값이 내려간다거나 다양한 컬러로 개성을 죽일 수 있다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주장이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사는세상에서도 이런 부류의 주장과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이들에게 희망도 없는 이유다. 아예 보수세력들이 이렇다면 해결의 방안을 찾을 수 있지만, 진보를 주장하며 보수보다 더한 이런류의 사람들을 보면 진보는 고사하고 노무현의 부활은 멀기만 하다. 문제는 우리들에게 있다. 아직도 남탓인가? 아니면 자신의 우매한 탓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는가? 노무현은 죽어서도 피곤하다는 것이 정확한 내 생각이다. 습성이 가져다 준 익숙한 습관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미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