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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세대는 국민으로 태어나 사회적 관계로 노예가 된다

댓글 4 추천 1 리트윗 0 조회 78 2012.12.24 21:50

먼저 50대의 일원으로써 1030세대들에게 마음 깊이 사죄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심한 대못을 박은 세대가 필자가 속해 있는 50대라는 것에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의 분노와 좌절, 성난 마음을 어찌 모르겠으며 그에 맞대응하는 50대들의 편협함에 저 자신도 끝없는 절망에 빠져듭니다. 저들과 함께 50년 이상을 이 땅에서 살았다는 것에 치미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겠습니다. 62.5%에 달하는 50대의 변절로 시대정신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에 있다고 믿는 유권자들의 꿈은 좌절됐습니다. 최소 한 달 이상은 대선 패배의 후유증과 분노하고 성난 마음들이 한반도 곳곳을 부유하며 울부짖을 것입니다.

 

 

참혹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고, 분출하는 분노는 대상을 찾아야 할 것이며, 벌써 좌절하고 절망한 마음들은 어디서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는 극도의 탈진에 이르겠지요. 집단적 파멸의 길로 가는 각 개인들의 처절한 싸움이 차가운 바람에 휩쓸려선 버려진 도시의 외곽에서 잠이 들면 비로소 하루가 끝납니다.

 

 

그렇게 어떤 이유라도 찾고 싶었던 마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차가운 대지 위로 태양은 또다시 떠오를 것이며 지구는 여전히 자전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어제가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것이 없다고 비릿한 웃음으로 빈정거립니다.

 

 

하지만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닥까지 가시되 거기서부터 또 땅을 파고들어 그곳에 머물지는 마십시오. 누구는 수검표를, 누구는 대안방송을, 누구는 새로운 정당을 외쳐대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미친 듯이 달려드십시오.

 

 

다만 자신이 출발한 자리가 어디였는지 잊지 마십시오. 만에 하나 자신의 생각이 틀렸거나 더 나아갈 수 없는 거대한 장벽에 막혔을 때 거기서 좌절해 재기 불능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돌아갈 곳, 처음 출발한 곳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뉴시스에서 인용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번 패배를 기점으로 해서 ‘21세기 진보좌파 정당을 만드는 것’에 생을 걸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정당인 민주통합당을 대체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21세기 진보좌파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상황은 악화될 뿐 나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최정점에 이른 자유 시장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마저 변형시켜버린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두 사람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한 명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마르크스이고, 또 한 명은 벤야민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를 밝혔다면 그 상부구조를 문화적으로 풀어낸 벤야민의 시선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살펴봅시다. 비록 미완성이지만 20세기의 위대한 지성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1 - 파리의 원풍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군중 속에서 도시는 때로는 풍경이, 때로는 거실이 된다. 곧 이 두 가지는 백화점의 요소가 되며, 백화점은 정처 없이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상품 판매에 이용한다. 백화점은 산책자가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이다. 산책자 형태로 지성이 시장에 발을 들려놓는다. 겉으로는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살 사람을 찾기 위해서.”

 

 

1030세대들은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던 계획경제 공산주의가 패망한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입니다. 그렇다보니 1030세대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하나라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심한 지금에도 자본주의4.0을 얘기할 뿐 그 밖의 대안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상품의 사용가치와는 독립된 질을 갖는다”는 말과 “패션은 상품이라는 물신을 어떻게 숭배해야 하는지 의례를 지정한다”와 같은 말을 이해하려고도 동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전자는 소위 ‘신상’이라는 것이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정수임을 밝힌 것이며, 후자는 유행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에 사로잡힌 대중들의 소비행태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노스페이스 열풍이나 아이폰에 이어 갤럭시 시리즈 열풍까지, 박태환과 김연아에서 싸이까지 우리는 새로운 것이나 0.01%의 성공신화에 열광하고 소비할 뿐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논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신상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허나 새로운 것은 늘 기존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뒤늦게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이라는 껍데기를 둘러싸고 나왔을 뿐, 본질(상품의 사용가치)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현재의 1030세대들은 그것의 새로움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신상’이 대중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는 첫 번째 표상이 되어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새로운 것이 끝없이 창출되고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세상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이놈의 지구라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하는 성장이란 동력이 한계에 이르렀고, 새로운 세대일수록 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미 가진 자들은 기존에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가지지 않으면 불안한 것처럼,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소비하지 않는 자는 노동하지 않는 자보다 더욱 불안한 심리에 빠져듭니다. 작금의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모든 노동행위는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는 평등이론)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절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 기술의 본질 자체가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올라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매스 미디어(인터넷과 SNS까지 포함됨) 시대라면 각종 불평등을 강화하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란 정글의 논리는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1030세대들이 작금의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려면 ‘자기조정 능력이 있는 시장’이란 의미의 ‘자유 시장 논리’와 ‘사회적 생산방식이자 잉여가치의 독점을 통한 거대 자본 축적의 과정’이라는 ‘자본주의 논리’를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처럼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개혁하고 싶다면 둘 다를 동시에 알아야 합니다.

 

 

헌데 대한민국의 진보좌파 정당과 제도권 언론, 제도권 교육 기관 중에는 이런 것을 대변하고 알려주며 가르치는 것들이 거의 전무합니다. 특히 이 두 가지 논리의 21세기 버전에 대해 고민하는 세력들도 없습니다. 20세기의 진보좌파 세력들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어색한 동거에 들어가면서 1030세대의 미래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습니다.

 

 

1030세대 여러분들, 작금의 현실이 어떤 정치경제 시스템에 의해서 창출된 것입니까? 몇몇 인물들이 모든 것을 이렇게까지 만들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구조에 대해, 그 작동 원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영원히 노예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흑인은 흑인으로 태어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노예로 산다”고 말했던 것처럼.

 

 

좌파와 우파가 아닌 진보와 보수의 싸움에서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무참하게 패했습니다. 필자 같은 50대들이야 하도 많이 져서 승리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2030세대들은 진검승부를 벌인 이번 18대 대선에서 한 번 진 것에 불과합니다. 슬퍼하고 분노하기에는 여러분들의 청춘이 너무 아깝고 너무 고귀합니다.

 

 

슬퍼하되 비극에 빠지지 마시고, 분노하되 증오에 빠지지 마십시오. 언제나 삶에 굳건한 뿌리를 두되 이상보다 조금 높은 곳을 향해 투쟁하십시오. 앞으로 할 것에 대해 낙관하지 마시고 앞으로 이룰 것에 대해 부정하지 마십시오. 보이는 것의 이면을 보기 위해 경험에 근거하되 극도로 회의적인 긍정으로 풀어가십시오. 

 

 

무엇보다도 평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술책임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자유란 사방이 막힌 벽’이라는 말처럼,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의 자유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가 사방에서 나의 자유를 막고 있는지 그것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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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바보 jir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