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
0
조회 78
2012.12.22 08:56
연근 캐던 날
<우리 노짱님>
김소희
아이와 어른 모두가 흙으로 칠갑을 둘렀다. 거무스름한 잿빛 물빛에 한껏 물들었다. 그 모습이 개그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어느새 관객과 연출자가 되어 모두들 웃었다. 격식과 꾸밈없는 순수한 극단이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것 같았다. 제법 불편할 것 같은데도 그 연출을 일찍 끝내려 하지 않았다. 어떤 소임을 다 하려는 듯 흙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땅으로 마냥 빨려들 것 같은 불안감도 그들에게는 의욕으로 비치고 있었다.
봉하마을 생태 연못 연근 캐기의 작업현장이다. 11월의 날씨가 진흙탕에 들어갈 만큼 수월한 기온이 아닌데도 너도 나도 주저 없이 팔과 다리를 둥둥 걷었다. 아니 하체는 아예 흙 속에 맡겼다. 마치 지하를 탐색이나 하듯 두 팔마저 땅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고 있었다. 이내 곳곳에 탄성이 터지더니 진흙투성이의 팔뚝만 한 연뿌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들은 더욱더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마치 새 생명을 얻은 듯 감격에 찬 모습들이었다.
이리들 행복해하는 현장을 만들어두고 왜 우리 노짱님은 일찍 먼 곳을 떠나셨을까. 생태복원을 위해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그 정성을 어찌 내려놓고 가셨는지, 그리운 님의 환영이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이토록 큰 연뿌리가 자랄 수 있을 만큼 복원을 위해 노심초사했을 당신의 고뇌를 이제야 알게 됨을 심히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만끽하는 기쁨 속에 찾아드는 슬픔 또한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크지는 기쁨만큼 슬픔과 미안함이 교차하니 이는 우리 노짱님의 진실된 마음이 찾아들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연근 작업의 진행은 더욱 활발해졌다. 어떤 이는 어른 다리 길이 만큼의 긴 뿌리를 수확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놀라움에 환호성이 터졌다. 나 역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니 신기함에 가슴이 부풀었다. 생태환경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맑은 흙 속에서 자란 생명체들은 바로 이렇게 크게 건강하게 자라는구나. 빛깔도 시장에서 만나던 모습보다 확실히 선명한 빛이었다. 맛 또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생태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 갈수록 대통령의 환영은 더 크게 다가서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쓰레기더미로 얼룩진 자리를 보며 대통령은 얼마나 크게 통탄하였을까. 이런 환경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앞으로 우리의 건강을 얼마만큼 지켜줄까. 아니, 지금까지 먹어왔다는 것도 심히 찜찜함을 감추지 못하였을 게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안 돼’ 수 없이 되 뇌이며 고뇌하였을 모습이 선하게 다가선다. ‘펄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하고 미꾸라지가 자맥질하는 과거의 시절을 되돌려 놓아야 한다’. 연근무더기가 쌓여 가면 갈수록 한껏 고뇌했을 노짱님 당시의 긴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왜 아니했겠는가. 지금껏 도회지에서 가졌던 편리한 생활들이 어떤 파괴와 희생 없이 주어지는 걸로 생각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런 생활이 영원히 지속하기를 바랐고 더 낳은 편리를 추구하며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는 스피드만 추구하였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천국과 같은 세상을 맞이하리라 여기며 새로운 것을 쫓아가는 문명의 천사가 되리라는 환상에 젖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노짱님의 한숨 소리에 이런 자책이 들었다면 나의 지나친 기우일까. 실은 이런 문제가 우리 모두의 환상이였지 어찌 한사람만의 일이었겠는가.
그 모든 정황들을 심사숙고하며 오늘날 생태연못으로 되살려낸 우리 노짱님의 고향마을에서 진정한 생태환경의 주인노릇을 해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앞으로 영원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도시에서 상실한 감각을 되찾아 존재와 기능을 이해하며 연의 저장고로서의 보존을 해나가야 한다. 환경은 곧 우리의 건강이며 생명이다.
10살의 해맑던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고 고 3학생이 위암과 패암으로 생을 놓아야 하는 현실을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린 생태환경에서 찾아야 할 일이다. 과거에는 가난이 병을 불러왔지만 지금은 오염이 병을 만드는 세상이 아닌가. 펄로 도배를 한 듯한 농군들이 더 없이 자랑스럽다. 내가 걸음마 적 펄을 과자인양 찍어먹곤 했던 일이 그 속에는 생명의 몸체가 있었다는 것도 지금에야 알 것 같다. 어른들이 굳이 말리지 않았던 이유도 그런 연유였으니 일찍부터 생태의 신비를 체감하고 있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자라던 5-60년대는 정말 생태환경이었다. 여리디 여린 아이들이 온 몸통을 펄 속에 묻어가며 놀이에 취했으나 피부병이니 환경호로몬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지금처럼 패션적인 양산 대신 연잎이 양산역할을 했고 현재의 임금님 우산처럼 넓이가 아니라도 연잎이 우산을 대신했다. 쨍쨍한 햇살과 억센 폭우 앞에도 코끼리 귀를 닮은 그 넓은 잎은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
지금 펄의 주인들이 가지는 저 호기심과 탐구심을 보며 내 어린 날의 영상이 떠오르는 것은 어지간히 나도 세상이기를 먹고 자랐다는 생각도 해 본다. 물질의 넉넉함이 자연의 파괴 속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이제 와서 깨닿는 걸보니 말이다. 이러니 오늘의 생태연못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광경을 저 먼 곳에서 흐뭇해할 노짱님을 생각하니 더욱 그를 향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대통령이 남겨놓은 유업 속에 누리는 이 아름다운 시간들은 돈으로도 쉽게 살 수 없는 가치가 아닌가. 무엇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서지고 사라진 것을 고치고 찾아 원상태로 돌리기까지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어려운 조건을 우리 노짱님이 좋은 조건으로 남겨주었던 것이다.
각자 캔 연뿌리를 우리는 즉석에서 먹었다. 해맑은 향이 아! 이맛이었구나.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속살도 시중 빛깔보다 한층 깨끗했다. 본래의 자리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수확했다는 뿌듯함으로 양손에 가득 든 연근이 여느 부자 부럽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201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