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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5 01:35
저는 2030세대의 힐링을 위한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다 중간에서 덮고 말았습니다. 독서광인 필자는 어떤 책도 도중에 접는 적이 거의 없는데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프롤로그에 나오는 단 두 문장과 경남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명’ 이외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간에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열정이 존재를 휘두르고 기대가 존재를 규정하는, 불일치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때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어두운 시기다.”
위의 인용문과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명’은 상당한 정도의 현실성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지만 ‘직업 선택의 10계명’은 이번 글에선 생략하겠습니다. 제 주위의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명’은 최종 면접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나 디지털 세대들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매우 실용적인 내용들입니다.
헌데 최근에 들어와서는 위의 인용문도 제가 동의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제가 최근에 들어서야 그 실태의 일단을 알게 된 2030세대의 현실이란 위의 인용문은 글 놀이 정도에 불과하게 만듭니다. 이 인용문은 소득 분위 상위 10~20%에 속하는 대학생들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청춘의 대다수가 ‘평생 임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참혹한 현실에서 ‘열정이 존재를 휘두르고 기대가 존재를 규정하는’ 낭만적 상황 따위는 중하위 80~90%에 포함되어 있는 청춘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존선에서 ‘평생 임시직’을 놓고도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삼포세대’라는 것도 비극적이지만 너무나 낭만적인 표현에 불과합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역사는 크게 두 종류의 인간 군상들의 노동력 착취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탐욕의 기록입니다. 첫 번째는 잉여노동력과 산업예비군을 창출해 저임금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해 농촌 인력을 도시로 끌어들인 ‘일방적 희생’과 그 결과로 발생한 ‘상호 파괴의 역사’였습니다.
농촌은 젊은 인력을 빼앗김에 따라 갈수록 피폐해지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고, 도시는 넘쳐 나는 실업자들로 인해 각종 사회 문제들과 범죄와 환경 파괴가 동시에 양산되는 ‘상호 파괴 현상’을 심화시켰습니다. 이것은 마르크스도 예견한 일이지만 인간을 위한 경제학의 원조 격인 슈마허가 그의 명저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자세히 밝혔습니다.
거대한 전환은 너무나 간단한 정치 행위로부터 시작됩니다-주간경향에서 인용
두 번째는 노동을 사고파는 것을 가능하도록 만든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본질 때문에 아동 노동에서 여성 노동을 거쳐 2030세대의 노동력 무한 착취와 저임금의 고착화입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한정된 자원(토지, 노동, 천연자원 등)을 놓고 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한계 때문에 ‘이윤율 저하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런 ‘이윤율 저하 현상’ 때문에 기업들이 담합하고 내부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만들어낸 제2차 육체노동자의 황금기(이를 폴 크루그먼은 ‘대압착시대’라고 했습니다)도 정치적 경영자들과 노동조합이 만들어낸 일종의 노동가치 지향적 담합시대였습니다.
이 당시의 거대기업 경영자들과 노조들은 정치적 역할까지 담당했는데 이들은 지나친 경쟁이 공멸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 보존을 위해 기업 간의 일종의 담합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와 LG전자와 팬택 등이 노동자 임금을 지켜주기 위해 가격 경쟁을 자제하는 약속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그 유명한 명언인 “경쟁은 어느 정도까지는 쓸모가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우리가 모두 열망해야 하는 협동은 경쟁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도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과 노동자의 공멸을 막으려면 적정선에서 경쟁을 제한해야 공생이 가능하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운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영속을 꿈꾼 케인즈의 경제학과 일정 부분에서만 겹치는 이런 정치경제 정책은 비록 거대기업들의 담합을 장려하기 때문에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너와 대주주들이 자행하는 노동력의 무한 착취가 가능해집니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며, 1%의 이익 독점을 위해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가 그 핵심입니다.
헌데 이런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1970~80년대를 끝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선봉에 선 정치경제 지도자가 영국의 대처-하이에크 조합과 미국의 레이건-프리드먼 조합입니다. 이들 중에서 영국의 여성 총리인 대처는 박근혜 후보가 롤 모델로 삼았다가 경제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자 슬그머니 거둬들인 인물입니다.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공권력에 희생당한 대처 총리의 재임기간 동안 영국의 노조들은 파괴됐고 국영기업들은 민영화되었으며 노동자들의 임금은 끝없이 하락했습니다. 노동유연화의 도입도 그녀의 작품이고 영국이 유럽의 선진복지국가 중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높은 국가가 된 것도 그 출발점이 대처의 집권시기입니다. 육체적 여성과 리더십으로써의 여성성은 전혀 별개의 사안인 것을 대처 총리가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영국과 미국과 마찬가지로, 보수 정권의 무분별한 국정 운영 때문에 발생한 IMF 환란 이후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 신자유주의의 15년 동안 이 땅의 청춘들은 알바생이라는 의미의 평생임시직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2008년 미국 월가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이명박 정권이 경제 구조를 대기업 위주로 고착화시켜버려 회복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다음 정권에서 2030세대를 위한 파격적인 조치가 없으면 이들의 삶은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베이비부머들과 극한의 취업 전쟁을 치러야 할 판입니다. 제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차라리 대한민국의 현대경제사를 세대 간 전쟁처럼 끌고 가느라 자의적 오류가 발견되는 《88만원 세대》가 분야는 다르지만 훨씬 현실에 가깝습니다.
복지 제도도 곳곳에 허점투성이이고 사회안전망도 부실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본격적인 저성장시대로 진입한 경제를 생각하면 2030세대로 대표되는 이 땅의 청춘들은 아플 시간조차 없습니다. 2012년의 청춘이란 이중 삼중의 벽으로 가로막힌 참담한 그 자체입니다.
인류 정치사에 이런 아름다운 동행은 없었다 - 오마이뉴스에서 인용
이런 면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 후보와 2030세대의 국민 멘토인 안철수 전 후보와의 공동 유세는 정말로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정치 역사에 이런 아름다운 동행은 필자는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기념비적인 정치 유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는 이 두 사람의 동행에 일말의 희망을 걸어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신(어떤 종교의 신도 상관없습니다)의 배려가 있다면 두 사람이 이끌어갈 다음 5년이 그 처음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편향적이라고 해도 필자의 판단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두 사람이 새로운 시대의 첫 지도자가 된다면 필자는 그 임기 내내 청춘의 문제를 풀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할 것입니다. 태어나 백일이 조금 지난 다음에 소아마비에 걸려 친척이 오너로 있는 K생명에 낸 이력서마저 반려된 경험을 갖고 있는 필자로써는 현 2030세대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력서를 내기 전에 오너에게 귀 뜸이라도 했으면 지금쯤은 거대 금융회사의 제 친구들처럼 임원의 자리에 있겠지요. 솔직히 저는 공부도 무척 잘했고 능력도 상당했으니까요. 제 블로그에 올려놓은 ‘나의 사업 이야기’를 보면 일정 부분 동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어쨌든 이 땅의 2030세대에게 전가된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폐해들이 내년부터는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문재인-안철수 조합이 다음 5년을 이끌어가야 그나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것만은 진실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과 성찰을 가지게 된 필자가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습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참혹한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투표에 참여하십시오.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각종 폐해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의지의 산물인 정치 참여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1%의 부자들에게는 보험도 필요 없지만 99%에게는 ‘국가에 의한 이해의 강제적 조정’인 정치가 유일한 보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날이 4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참담하고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여러분의 한 표가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그것도 분명하고 획기적이며 꾸준하게 말입니다. Occupy 2012, 분노한 자들의 행진과 아직도 타고 있는 촛불은 이제 다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맨붕상태에 빠져든 것이 분명합니다. 방송 토론마다 나와서 고함치고 난리 부르스를 치는 것을 보면!!! 헌데 2030세대들의 투표율이 올라갈 것 같은데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