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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2 09:05
[이근행의 편지] 이겨야 정의(正義)도 현실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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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먼 길이었습니다. 어릴 적, 십 리 눈길을 뚫고 학교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옷을 아무리 여며도 매서운 눈보라가 무시로 목덜미나 소매 사이로 파고들었습니다. 무릎 언저리까지 쌓인 눈을 발로 차고 걸은 탓에 바짓단은 늘 젖었다가 얼어서 빳빳한 가빠가 되어 있었습니다. 신작로를 따라 들판을 지나고 산모퉁이를 몇 번 돌아야 학교나 집에 도착해 젖은 양말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두 발은 불그레하니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동상의 경계선에서 발바닥이 들쑤시며 간지러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음을 뺀다’며 어머니는 메주콩 몇 되를 대야에 붓고 언 발을 묻어 주었습니다. 근래 눈이 꽤 내렸습니다. 몹시 춥습니다. 만약 지금 제게 다시 그 십 리 길을 걸으라 하면 아마도 ‘아니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너무 춥고, 시리고, 아려서 말입니다. 벌써 눈 내리는 섣달입니다. 연말이라고 여기저기에서 시상식들이나 송년 모임이 열립니다. TV에서는 연말 무슨 무슨 대상(大賞) 중계가 요란하게 이어지겠지요. 즐거운 일이고 축하해 주어도 될 일입니다. 그 자리에서 으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혹은 가수)의 길은 나의 천직입니다. 저는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걷겠습니다. 대충 그런 말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걸어갈 그 길.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제겐, 다시 태어나도 걸을 길, 그런 길이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격하며 대답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동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이만 하면 다시 걸어도 좋겠다, 라고 생각이 드는 그 길. 그것은 20여 년 살아온 공영방송 MBC PD의 길이었습니다. 참 좋은 선후배가 있었고, 언론인으로서 동지들이 있었고, 각자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상식과 정의가 살아 있는 조직문화가 있었고, 무엇보다 국민의 신뢰를 향한 노력이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제게 지금 ‘다시 태어나도 그 길을 걷겠느냐’ 물으시면 단연코 ‘아니오’라고 말하겠습니다. 가끔 들르는 여의도 사옥은 마치 유령이 사는 건물 같습니다. 해고자 8명에. 연 200여 명에 이르는 중징계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교육자. 유대인 대량학살에 비견될 ‘MBC 홀로코스트’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인 청소를 해대는 여의도의 가스실, 공영방송 MBC에서는 ‘권고사직’이라는 대량 해고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건물 자체가 제게 무섬증을 가져다줍니다. 어찌 생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슬프고 분노가 치밀지만, 지금 사정이 그러합니다. 저 또한 독해지고 삭막해진 걸 부정할 수 없습니다. 본래 신앙이 있지 않지만, 지난 3년 MBC에서 벌어진 일들을 당하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신(神)조차도 더욱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간사의 순리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무슨 고상한 절대(絶對)요 진리(眞理)란 말입니까? 잠을 제대로 못 이룬 지 한 참 됐습니다. 제게 현실적인 구원은 12월 19일입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제 동료에게 그렇고, 이 정권하에서 맞고 쫓겨나고 떠돌고 죽은 모든 이들에게 그렇습니다. 대선국면에서 접한 심장을 찌르는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정혜신 박사의 ‘이번 대선은 목숨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번 대선에 노동자들의 목숨이 달려 있고, 이번 대선에 언론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또 다른 5년은 도전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나날을 견뎌온 이들에게 또 다른 5년은 더 싸우기도 어려운 자포자기의 지옥일 것입니다. 제가, 정권교체가 모든 대의(大義)에 앞서는 급박한 명제(命題)라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싸워야 할 땐 싸우는 것만으로도 큰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눈물 나게, 열심히들 싸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겨야 할 때입니다. 이겨야 정의(正義)도 현실이 됩니다.
눈이 분분히 날리던 오후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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