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home > 노무현광장 > 보기

흉기바위 (수필)

댓글 2 추천 7 리트윗 0 조회 68 2012.12.09 15:10

흉기바위

<우리 노짱님>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사자가 잽싸게 일어나 세상을 향해 포효咆哮 할 것만 같다. 누가 나를 욕되게 하는가 또는 아프게 하는지, 갈퀴를 털며 당장이라도 덤빌 듯한 공포감마저 준다. 사람들이 뭐래도 나는 과거의 용맹과 권위로 이 자리를 지킨다는 기백도 오롯이 살아 전한다. 한때는 네발로 걷던 동물이었지만 지금은 동네를 수호하는 사자바위라는 이름으로 환생했다는 사실도 찌렁 찌렁한 소리로 들려줄 것도 같다.

 

왠만해서는 본래의 자태를 퇴색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바라며, 웅크린 것 같지만 기실 천지를 내다보고 있다는 것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견고한 울림으로 전해온다. 단단한 바위로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남을 것이며 사자형태를 갖춘 돌덩이는 언제까지 영원한 성전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만방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인심은 사자바위의 일편단심을 배반했다. 문명의 이기로 근엄하고 성스럽기까지 한 자리를 퇴색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사생활을 감시 감독하는 카메라를 설치하여 대한민국지도자의 안식처를 감옥소로 만드는 자리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수개월동안 한시도 기계소음이 끊이지 않았고 죄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장으로 추호도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슬픔을 더해 준다.

 

그들의 극한적인 행위에 이 나라 대통령은 결국 죄인으로 몰렸고 사자바위는 흉기바위로 이름을 달게 되었다. 고대인들의 제사를 지내던 성전에서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행위가 사자의 통곡을 불러오고 말았던 것이다. 어찌 하늘을 찌를 듯한 포효가 이 지상을 흔들지 않았겠는가.

 

과학이 없던 시절엔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가뭄이 계속될 때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일 년간 동네의 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는 물론 한 가정의 안전도 역시 이 자리에서 빌었다. 만약 형상이 생존하는 물체를 닮았다면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들이 지닌 기질이 곧 자신들을 지켜 주리란 기대로 오늘의 사자바위 같은 곳을 성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문명은 그 성스러움을 파손하였다. 역사적으로 아직껏 사람을 방에만 가두어두는 귀양살이는 없었다. 그저 사람이 살지 않는 고적한 섬으로 유배를 보내는 게 법이고 목적이었던 게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연이 있어 산책과 낚시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조건은 되었다. 그러다 사약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풀려 나와 본 위치로 복귀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우리 노짱님의 유배는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땅과 하늘을 차지할 수 있는 단 한 뼘의 공간도 허용치 않았다. 마당에 내려서면 흉기바위가 다가섰고 대문을 나오면 사람들의 야유와 눈총들이 가로막았다. 무엇보다 대통령 집안공간도 활용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사자바위 카메라가 제일 무서웠던 게다. 뒤뜰을 둘러보는 영부인을 찍지 않나 손님을 배웅하려 우산을 바쳐 들고 마당을 내려서는 모습을 대서특필하지 않나 아주 고도의 기술적인 언론의 횡포와 무모함이 사상유래 없는 귀양처를 만들었던 것이다.

 

“내 뜰을 돌려달라” 최소한의 권리만이라도 지키겠다는 노짱님의 간곡한 호소도 그들은 무시했다. 방안에서 하나, 둘, 셋, 넷, 셈을 하는 운동으로 시간을 보냈단다. 그는 자연이 주는 한 점의 햇볕과 바람마저 차단하는 이 나라 언론독재자들의 철저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진정한 권력은 돈과 언론에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다. 정치인에게 있다면 한나라대통령을 그런 방법으로 구속할 수 있었겠는가. 일대왕권체제에도 없었던 감옥과 귀양살이를 오늘의 법과 언론이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노짱님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내 나이 오십 중반을 살아오면서 수십여 차례나 겪었던 나의 애환이 담겨있어서이다. 소녀가장역할에서 야학으로 주부가장역할에서 문학으로 스스로 일구어나가야 했던 일상들은 팍팍한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14살이라는 나이로 15시간의 노동현장에 서야했고 남편의 무일푼으로 5식구의 생계를 꾸려야했다. 당시만 해도 남녀차등과 편견이 사회적인 질서였기에 그런 생활에서 오는 고단함은 밤을 새는 불면과 소화불량이라는 배앓이가 늘 내 곁을 따라다녔다.

 

나는 마음에 고민이 쌓이면 외부와 거래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흔히들 스트레스를 푼다고 구실을 찾곤 하지만 내 자존심은 문제의 해결을 혼자서 풀겠다는 성향이 강하다. 문제가 클수록 대인 기피증은 더 심하여 방안에서만 골몰을 끌어안는 기질이 있어, 운동부족은 물론 소화 장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먹는 음식이 시원찮으니 원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원기부족은 수면장애를 불러와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는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의사들의 진단결과였다.

 

허지만 나에게는 자유가 있지 않았는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털고 일어나 활동을 통해 심신을 단련할 수 있었다. 마음껏 수다를 떨어 울분을 해소하는 방법도 있고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신체를 단련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사실은 극한 위기에 몰렸을 땐 그렇게 했으므로 지금껏 건강을 유지해오고 있는지 모른다.

 

하물며 단 한치의 자유도 보장해주지 않았던 노짱님의 그 순간들은 어떠했겠는가. 생각만 해도 나에게는 무섭고도 아찔할 뿐이다. 모든 세상사가 절벽과 암흙으로 다가서던 아픔들을 몇 개월 동안 어떻게 견뎌내었을까. 인적과 자연의 소리마저 차단된 방안에서 어린아이 걸음마 셈하듯 한 걸음 두 걸음 운동으로 소일했으리라 생각하니 흉기바위 카메라가 더없이 원망스럽다.

 

누구 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잠 속에서 모든 걸 잊고 잊으므로 해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난 다는 것을. 그런데 불면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다. 내일의 꿈과 계획도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됨은 물론, 작은 충돌에도 부수고 망가뜨리고 싶은 자포자기로 일관하게 되는 게 나의 경험이다. 훗날 우리 노짱님의 죽음은 절대 헛된 죽음이 안 될 것이다. 여러 정황들이 더러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무엇보다 슬픈 역사로 기록될 사자바위의 눈물이 더욱 그런 마음을 일게 한다. 당장이라도 세상을 향해 크게 꾸짖을 듯한 우람한 모습이 내 눈앞에 크게 다가서고 있으니 말이다.

 

                  2010년 1월

목록

twitter facebook 소셜 계정을 연동하시면 활성화된 SNS에 글이 동시 등록됩니다.

0/140 등록
소셜댓글
솔바람1234 kimsohe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