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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8 14:37
사저私邸 하나
<우리 노짱님>
아방궁 또는 노방궁! 노무현대통령의 사저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일간지에 보도되는 기사들을 읽으며 그 옛날 거대한 중국의 궁전이 현대에 다시 등장하는구나 하는 호기심 반 저항감 반으로 맞이하였다. 500억이란 천문학적 숫자도 더욱 기가 막힐 만큼 충격을 주었다. 몇 만평 몇 십 만평 조성이라는 단어는 권력의 부패를 정말 절감하게 만들었다. 우리를 점점 위축시키는 위정자들에 대한 반항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기만 하였다.
그토록 독재타도를 외치다 피 흘리며 이룩했던 민주열사들의 원혼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돈을 자신 한 몸 기거할 자리로 이용하는 패륜적 지도자를 어찌 보고만 있는 것인지. 두 주먹 불끈 쥐고 머리에 붉은 띠 두른 용사들의 노방궁이 왠말이냐? 불꽃 틔는 항쟁은 어디에 숨었을까. 마음으로 또는 가슴으로 밀려드는 분노를 좀처럼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정말 무소불위의 권력과 향략의 상징물이었던 그 옛날 아방궁이 그려지기도 했다. 동서로 700m 남북으로 120m 2층 건물 일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거대한 궁전이 우리 앞에 펼쳐지리란 예감도 들었다. 그래서 날으는 새도 떨어뜨리는 지상천하 독주자가 이 대한민국을 호령하리란 무서움에 떨기도 하였다. 서민은 정말 영원한 서민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법치국가란 어디서 나왔으며 그 모두가 헛소리이기도 하였단 말인가? 피 끓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던져 달성하고자 했던 이상은 어디로 갔으며 최루탄과 화약가루가 거리를 뒤덮던 광풍은 무엇이었는지. 안타깝게 다가서는 소식들이 개탄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내내 보도의 진면목에 의아스러움을 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껏 여 야의 대결은 있어온 일이고 반대파들의 모함 또한 배제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민주화란 재단에 목숨을 바쳤던 열사들의 애국심이 자취 없는 역사가 되리란 믿음은 더더욱 들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마음 한켠을 뚫고 일어나는 독백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분명 누군가의 모략일 것이라는 가닥이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염원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내가 봉화마을을 여러번을 찾으면서 소문과의 진상이 다름은 물론 만나는 순간 일어나는 사실은 도를 넘어 큰 분개심마저 일었다. 아무리 맞추어 보려고 애를 섰지만 보수파들이 떠들어대던 사건은 단 하나도 만나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뭔가는 좀 비슷한 점이 있을 게다 엉터리없는 소리들이야 하겠나 하는 의아심을 갖고 주변을 돌면서 탐색을 하였지만 궁전 같은 흔적은 단 한 점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드시 어느 낮은 산을 방불케 할 만큼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리란 기대도 영영 아니란 걸 알았다. 정말 아니지 않는가. 아니나 다르게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말이다. 정말 아주 가혹한 너무나 가혹한 누명이었던 것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귀신이 곡을 하고도 남을 일일지언정, 이럴 수는 없다는 통분이 가슴을 짓눌렀다. 누구를 단죄하려면 단 몇 가지의 근거를 갖고 하는 게 순서고 이치 이런만 여느 소시민과 다를 바 없는 주거를 두고 그렇게나 대서특필을 하다니, 대통령이기 때문에 당해야했고 대통령이기에 참아야했던가. 정말 우리 노짱님을 생각하면 큰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언제는 인권침해라며 자유를 달라던 그들은 이제 와서 대통령을 치명적인 인신공격을 하기에 바쁘다. 어쩌면 이런 사실들을 자신이 독재체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은 가져보지 않았을까? 모욕과 모독은 그 사람의 인격적인 살인이란 죄의식을 느껴 보진 않았는지, 지금까지의 정황들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다면 만약누군가 자신의 결백을 누명으로 일관한다면 감당할 고통을 그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 상대에 대한 감정은 하늘을 찌를 듯한 분노에 떨 수밖에 없음은 물론 삭여내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은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벽을 뚫고 땅을 치는 울분이 겹겹이 가슴을 에워싸는 한으로 위축된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결국 네가 나되어 보라는 이치와 다를 바 없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야당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있는 당이지 조건 없이 비판하고 헐뜯기 위해 존재하는 당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영 아니라는 생각이다. 왠지 노무현 죽이기라는 단어가 꽤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누구의 허물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괜찮을 것도 같다. 도륙도 이만한 인격적인 도륙도 잘 없지 싶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 또는 나 자신 역시 언론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점이 더욱 분통 터지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우선 외형부터가 양철집 형태와 가까운 지극히도 우리 한국적이고 서민적인 전통 가옥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비서와 경호원의 주거를 다 합하여도 저택이라 불릴만한 집이 못되었다. 사저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실내 평수는 2-30평이란 말을 한다. 식당이나 집무실로 오고갈 때 신을 신고 걸을 수 있도록 흙집형태로 만들었다는 말도 전한다. 정말 농촌과 숨을 쉴 수 있는 전형적인 주택이란 점에서 추호도 의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겉과 다르게 실내는 어마어마하게 꾸며져 있을 것이란 추측으로 야단들이다. 25평의 작은 공간에 무엇을 얼마를 치장할 것인가. 또한 지하를 이용하고 있을 것이란 억측도 구구절절하다. 궁전이란 이름으로 매도를 하다 발목 잡힌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이제 이런 행위뿐인가. 마지막발악으로 전전하는 반대파들이 실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변명과 억지만으로 버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크게 사죄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돌아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정말 억울하게 많은 돌을 맞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돌덩이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으리라는 짐작이 가기도한다. 피멍으로 얼룩졌을 그의 상처가 시간이 지날수록 돌이 되어 가슴을 메우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감히 그를 궁전의 주인공이라 말하는가.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아저씨이자 농부인 것을 초가집 생가와 초라한 사저가 생전 우리 노짱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201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