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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7 13:01
자연의 콩밭
<우리 노짱님>
어린 날 그곳은 물귀신이 사는 곳으로 여겼다. 오랜 가뭄에도 질척한 물기와 동식물들이 떠나지 않는걸 보며 이 자리에는 분명 무엇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흘러드는 계곡과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물을 저장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게다. 그것이 궁금하여 발을 살짝 디뎌보다 무릎까지 빠지는 낭패까지 보았다. 까딱하다간 땅 밑으로 계속 빨려들 것 같은 공포감에 얼마나 떨기도 하였던지, 그럴수록 호기심은 커져 이 땅 밑에는 분명 신비한 세상이 있을 것이란 예감에 탐험이란 도전정신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게 바로 천혜의 습지 지역임을 알면서 마음이 끌렸던 이유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인류생태계를 보존케 하는 우리 몸에 콩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리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의 체내에 생긴 불필요한 물질을 밖으로 보내 체액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일을 하는 신장 기능처럼, 인간이 발생시킨 유기질이나 무기질을 변화시켜 물과 땅을 정화시키는 자정능력을 하는 곳이 바로 늪지대인 것이다. 그래서 습지를 자연의 콩팥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껏 우리가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습지의 자정작용이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바로 습지의 식물들은 물의 흐름을 지연시키는가하면 또한 수량이 극심하게 변화하는 것도 막아, 즉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진례면에서 발원해 노무현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화마을을 지나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총 길이21.2km 화포천을 보면서 습지에 대한 생각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10개의 지천과 늪지를 통해 우리들이 누렸을 혜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면을 가득 채우는 연꽃과 향기가 일품인 창포는 오늘의 화포천을 지키는 데 더 없는 보물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진흙탕에 일생을 살아가는 연꽃이야말로 우리인간에게 주는 감동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있지 않는가. 어쩌면 불결한 환경을 고운 자태로 만들어내는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화천들이 살아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창포는 오히려 여인들의 청결한 머릿결까지 만들어주었다. 오월 단오날 창포로 머리감기는 여름내 흘릴 땀에 상할지 모를 두피의 건강함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비듬과 피부병을 예방하는 성분을 지녔기에 당시로서는 더 없이 좋은 샴푸이기도하였다.
극도로 오염된 세상에도 떠나지 않고 귀중한 보물들이 살아있는 하천을 노무현대통령은 어찌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그 옛날 붕어와 메기 떼들이 노닐던 어린 날의 추억을 다시 되불러 오고 싶은 마음을 그는 접어둘 수 없었던 게다. 더 늦기 전에 옛날의 화포천을 꼭 찾아야겠다는 일념은 기어이 고무장화의 주인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하청청소에 열중하던 노짱님의 영상이 잠시도 잊혀 지지 않는 이유는, 그 어떤 부귀영화도 농촌을 떠나선 존재할 수 없다는 인상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이곳을 떠나 최고의 권좌까지 올랐지만 결국 농촌이 없는 성공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분의 밀짚모자가 그것을 말해주고 ‘가래와 쇠스랑’의 농기구를 든 손이 화포천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 옛날 부모님이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다. 비록 한사람의 농군으로 살다 갔지만 인간 삶의 근본을 지켰고 그런 삶이 결국 오늘의 자신을 키웠다는 점을 자세히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방치되고 오염된 하천을 살려 선친들의 길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바로 청소부 아저씨로 돌아오게 하였던 것이다. 자신이 이런 길을 닦으므로 후세들이 대통령과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리라 여겼고, 그 뜻이 모이면 진정 화포천을 지켜갈 수 있는 힘이 생기리라 여겼지 싶다. 노짱님의 검은 장화에서 또는 흐르는 땀을 스치는 흙 묻은 장갑에서 그런 사실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떠났던 습지의 식구들을 불러 모아 예전의 정취를 즐기며 진정한 화포천 가족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옛날 함께 했던 290여종의 동식물들은 얼마나 좋은 친구들이었던가. 모자라지도 추월하지도 않고 약속한 듯 때를 잊지 않고 찾아 와주는 그들의 충직함을 한시도 잊어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제철에 맞게 피워내는 갖은 색색의 식물들은 더 없이 신비롭고 호기심으로 채워주던 천사들이 아니었던가. 사람들처럼 소란을 피우지 않으며 질서를 지켜나가던 그들에게서 어쩌면 살아가는 과정을 배우고 소박한 진실을 알았는지 모른다.
무엇보다 월동하는 겨울철새들을 보며 이 자리를 더욱 잊을 수 없었을 게다. 일찍 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은 철새들이 먼저 알려주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어느새 날아왔는지 낙곡을 찾는 녀석들의 행진으로 이어졌고, 아침 안개 속에 맞이하는 무리들의 광경은 환상 그 자체이기도 하였다. 또 휘영청 밝은 보름달 사이로 V자형을 그리며 무리 지어 비행하는 모습은 에어쇼를 연상케도 하지 않았던가. 선명히 다가서는 대통령의 환영에서 화포천의 그 모든 사실을 읽을 수 있다.
더구나 물결위로 미끄럼 타는 청둥오리들의 귀여움은 더더욱 잊지 못하였지 싶다. 어릴 적 그들을 잡으러 온 힘을 다해 뛰고 또 뛰던 기억을 어찌 잊을 것인가. 고속도로를 달리듯 잽싸게 미끄러져 가는 녀석들을 따라잡지 못해 한없이 애를 태우던 시간들도 이곳엔 그대로 남아있다. 꼭 수영을 배워 놈들을 제패하고야말겠다는 당시의 욕심도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전해오는 것 같다. 그렇게 키웠을 것 같은 꿈들이 예쁘게 자맥질하는 지금의 청둥오리에서 선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보배로운 환경이 바로 우리 노짱님을 낳지 않았을까. 어디하나 버리고 놓치고 싶은 것이 없다. 여느 하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고라니, 너구리, 수달까지 살고 있는 희귀 지역이라니,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자연의 콩밭이라 불러도 무리가 아니지 싶다.
인간의 심성은 그 환경에 의해 형성되는 법이다. 수백만이 눈물과 통한으로 보낼 때는 그분의 사람됨이 우리들 가슴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슬픔으로 가득 찼던 노짱님의 영전도 바로 화포천이 만들어낸 힘이 아닐까. 자연의 질서가 인간의 질서라는 점을 노짱님을 통해 나타난 여러 정황들이 말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에서니 습지의 힘이 더욱 강하게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