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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5 23:10
신뢰의 정석' 문재인,
'네거티브 몸통' 박근혜
'속사포 독설' 이정희
정말 답답한 TV토론이었다. 참모가 써준 원고를 거의 읽는 수준인, 그래서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지닌 박근혜 후보의 약점을 어떻게 해서라도 감추어주기 위한 진행방식이었다. 의무적으로 1분 질문하고 1분30초씩 답하거나 사전에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사회자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유권자들이 어떻게 변별력을 갖고 후보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 미국 대선에서 격돌을 벌인 공화당 롬니 후보와 민주당 오바마 후보 간 TV 토론을 살짝만 본 국민이라면 왜 이런 수준의 토론밖에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는 진행하지 못하는가하고 분통을 터트렸을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이 아깝다, ‘돌려 줘’”라는 말을 쏟아내기에 충분했다.
주고받는 문답식의 토론은 사실상 없었다. 치열한 정책 토론이 사라진 토론실종 토론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주고받기 식 토론이 왜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기 위한 대선토론에서는 기피되는 것일까. 선관위의 박근혜 감싸기 토론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만약 2번째, 3번째 토론에서도 진행방식이 완전상호 토론 방식으로 바뀌지 않고 박근혜 후보 봐주기식 토론 진행방식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오히려 민심의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유권자들은 적어도 지난번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 토론과 같은 형식의 열띤 토론을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을 실망뿐이었다. 마치 유권자들이 앞으로 TV 토론에 관심을 두지 말도록 하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겉과 속이 다른 수박 같은 정치인, 박근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치, 외교, 통일 분야 토론은 후보 간 몇 가지 차이점을 드러냈다. 박근혜 후보는 입에 달고 다니던 ‘박근혜는 신뢰의 정치인, 약속의 정치인’이란 말이 허구였음을 드러냈다. 박근혜 후보는 네거티브 선거를 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해놓고 많은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이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 문재인 후보를 흠집 내려고 작정을 하고 나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재인 후보는 ‘젠틀 재인’의 이미지와 함께 검찰개혁과 정치쇄신 의지가 눈에 띄었다. 안정감 있는 지도자의 모습도 차분히 보여주었다. 물론 이정희 후보와 달리 무미건조한 톤의 목소리와 토론 태도에 파이팅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유권자들에게 각인되는 효과는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진정성과 함께 알맹이가 들어 있어 국민들에게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지도자라는 신뢰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시종일관 시니컬하게 토론에 임했다. 특히 박근혜 후보에게 에두르지 않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박근혜 후보도 “작정을 하고 나왔군요”라고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쏟아냈다. 두 여성 정치인의 공방 때문에 토론의 품격이 떨어졌다는 토론 뒤 정치평론가들의 지적도 나왔다. 새누리당 선거 핵심참모들도 이정희 후보를 매도했다. ‘꿩 잡는 매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이정희의 날선 공격에 ‘준비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라는 새누리당의 구호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버렸다.
특히 이번 토론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된 사실이 있다. 박근혜 후보의 뇌 구조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구심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단순실수로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 박 후보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15년간 해온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말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조차 몰라 한참 당황한 것을 보고도 순간의 실수라며 모르는 척 넘긴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번 토론에서 자신이 공격하기 위해 작정하고 나온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김석기·이재연 의원으로 성씨를 바꿔 불러 이정희 후보의 비웃음을 샀다. 비판하려는 상대 정당 국회의원의 이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한동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유명한 두 사람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른다는 것은 뭔가 뇌구조에 문제가 있거나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것은 아닐까.
대선을 전쟁에 비유하자면 엉뚱한 상대방 장수의 목을 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툭하면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박근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엉뚱한 상상마저 하게 된다. 그녀가 혹여 대통령이 되면 취임선서를 하면서 “나 박정희는 …”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각국의 사절과 국민 대표들이 모인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그런 상상을 하도록 만드는 박근혜의 비정상적인 언행이 이상한 것일까.
문재인의 철학-진정한 리더십은 국민과의 소통
대통령의 리더십을 묻는 국민을 대신한 사회자 질문에 박근혜 후보는 소통, 경청 등이라고 답한 문재인·이정희 후보와는 달리 위기관리라고 밝혔다. 이런 뇌 구조로 어떻게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국가에 위기가 생기면 대통령으로서는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위기관리를 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대통령은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위기가 생기지 않도록 국가를 관리해야 한다. 암 치료보다는 암 예방을 잘 하는 의사가 명의다. 국가지도자는 위기관리가 아니라 위기예방을 잘 해야 한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모든 면에서 낫다는 경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이미 구시대 정치인이다.
그 동안 새누리당은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져오는 수구보수의 전통을 지켜오면서 네거티브 전통 또한 뼛속까지 지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안철수 후보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새누리당이 최근에는 문재인 후보를 공격대상으로 해 치졸한 네거티브 공세를 벌여왔다.
그리고 마침내 첫 텔레비전 토론에서 그 네거티브의 몸통이 핵심참모가 아니라 실은 박근혜였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박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참여정부 민정수석 시절 금감원 국장에게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예금자들이 고발해 소송이 진행 중이고, 정무특보 시절 아들을 공공기관에 특혜로 취업시켜 조사를 받았다고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근혜 생각-내가 하면 네거티브도 검증, 남이 사실 적시하면 그건 네거티브
이에 문 후보는 박 후보가 네거티브 선거는 안 한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 새누리당이 자신에게 흠집 내기에 심혈을 기울일 때도 “박 후보만은 그렇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사안을 가지고 마치 부정비리가 있는 것처럼 계속 발언하는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점잖게 꾸짖었다. 아마 문 후보의 반격에 박근혜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구나”라며 뜨끔했으리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자신의 트레이트 마크는 지금까지 자신과 새누리당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합작해 만든 가짜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신뢰 정치인이 가짜라는 사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박 후보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한국사회의 명제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정희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가 재벌을 등쳐 모아 놓은 돈을 전두환이 박 대통령 사후 청와대 금고에서 6억원(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은마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1백억원이 훨씬 넘는 거액)을 사회에 환수하라. 아버지 박정희가 빼앗은 영남대와 김지태 부일장학회장한테서 강탈한 장물인 정수장학회 등으로 잘 살아온 게 아니냐”며 추궁하자, “네거티브를 작정하고 나온 것 같다”며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날카로운 창을 피해가려 했다.
자신이 이 후보의 공격을 받기 직전에 문 후보에게 부끄러운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 것은 모르쇠하고 이정희 후보가 자신에 대해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한 것조차 네거티브 공세라며 물 타기 발언을 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공방은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박근혜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주었다.
대선 토론회는 국어책 읽는 초등학교 교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