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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3 23:18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님, 위의 인용문은 《지혜의 일곱기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저는 작금의 안철수 현상을 독차지하고 있는 안철수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가장 잘 설명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안철수가 해단식에서 한 말이 문재인 후보님과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행해진 것이라면 이제는 안철수 카드를 버리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석고대죄를 해서라도 안철수에게 용서를 구하던지 아니면 절필을 하던지 하겠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거운 짐의 크기와 무게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지 않은 길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 후보님이 보신 안철수의 진심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성공에만 눈이 멀어 아직도 감정 조절조차 못하는 자라면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모조리 태워버리시죠.
단 한 줌의 재로 화할지라도 어쩌면 독사의 자식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키울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은 노무현의 정신과 힘, 우직함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예전에 ‘문재인 후보님, 박근혜의 5년이라도 견뎌내겠습니다’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문재인 후보님이 짊어진 짐으로 하여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18년의 유신독재와 10년의 군부 독재까지 견뎌낸 국민들인데 박근혜의 5년인들 버텨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억압과 착취 속에서도 세상은 돌아가고 사람들의 삶은 이어집니다.
정권 교체보다 정치 개혁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안철수는 그가 하고 싶은 데로 하라고 하십시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남의 얘기를 들을 사람도 아님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독할 정도로 계산에 밝은 자이니 상황이 변함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보일 자입니다.
선관위로부터 받았다는 문자메시지를 핑계로 댄다면 이건 위선자 수준에 가깝고요.
유신독재와 싸울 때, 군부 독재와 싸울 때, 우리가 실정법이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던가요?
죽음을 걸고 투쟁했고 저항했지 실정법 안에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으로 볼 때, 한 생을 살면서 자신의 신념만이 절대적 가치인지 알고,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의도가 먹히지 않으면 그 억울함의 크기만 호소할 뿐, 상대에 대한 예의조차 보이지 않은 자에게 무슨 미래의 비전이 있겠으며, 대한민국을 다스릴 역량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그릇에는 담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쯤에서 안철수에 대한 미련은 버리시지요.
대선 승리를 하고 싶으면 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안철수가 교묘하게 처놓은 자체 검열의 봉인을 이제는 풀어버릴까 합니다.
이명박의 실정과 맞물려 대중 매체가 만들어낸 이미지 정치인 안철수의 한계가 너무나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그의 도움이 대선 승리로 이어진다고 해도 문 후보님과 정권 교체를 지상 명령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너무나 큽니다.
그에게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있는 게 분명하고 거기서 한 발도 양보할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문 후보님에게는 문 후보님이 옳다고 보는 길이 있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 오지 않았습니까?
고 노무현 대통령이 왜 위대했느냐 하면,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목숨까지 받쳐 책임진 것에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내의 회색분자들의 준동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지만 그것도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시고 오직 가야 할 길만 가는 것이 유일한 길인 것 같습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님과 우리들의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아무리 방해하는 자들이 많다고 해도 이루어질 것은 이루어집니다.
지금 당신이 짊어지고 있으며, 어떻게든 끌고 가서 반드시 대선 승리로 이어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대한 부담감의 압박에서부터 자유로울 때 성지에 이르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치적 계산 없이 뚜벅뚜벅 가다 보면 남은 16일이 그리 짧은 시간만은 아닙니다.
무엇도 가능한 시간입니다.
작고하신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고비를 맞을 때마다 어떻게 돌파해냈는지, 그것만 떠올리시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승리가 보장된 전투에서 명예란 없는 것 아닙니까?
이번 글의 시작도 《지혜의 일곱기둥》의 인용문으로 했으니 끝도 같은 책의 인용문으로 마칠까 합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네 비주류의 삶이 그런 것 같아서.
“반란에는 휴식처란 있을 수 없고, 환희의 배당도 지불되지 않는다. 정신은 감각의 부속물이며 감각이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어내고 일보전진할 때마다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보다 먼 모험, 보다 깊은 고난, 보다 심한 고통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