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home > 노무현광장 > 보기

권위주의에 의한 통합으로 갈 것인가, 점진적으로 논리적, 이성적 개혁으로 갈 것인가.

댓글 1 추천 3 리트윗 0 조회 35 2012.11.26 02:16

일본은 통합이 잘 된 나라라고 볼 수 있지요. 평생직업, 부모의 직업을 자식이 가지게 되구요. 가업. 문제는 정치, 지배가 가업인 집안과 피지배가 가업진 집안으로 나뉘게 된다는 거지요. 노쇠한 정치인들을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로 둔 후손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구요. 여전히 길거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젊은이를 만나면 마구 패줘도 문제가 안되고, 법적으로도 문제가 안되는 나라가 일본이지요.

 

악수를 싫어하고, 신체터치를 정말 싫어하는 것도 일본인의 특징이지요. 아무리 평정을 유지하는 젊은이라도 조금만, 장난결에라도 신체접촉이 되면 정말 화를 버럭하고 내지요. 사무라이 문화라는게 결국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베어 버리는 문화이지요. 결국 권위주의의 최정점인 문화인데요.

 

예를 들어, 일본애들이 배우는 영어사전은 영어 단어 하나에 일본어 단어 하나만 있어야 하지요. 학생들 단어집처럼. 여러개의 선택지가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구요. 그러니 서구문명을 들여온 첫번째 사람이 오역을 하게 되면 그 후손들은 죽어도 그 오역을 벗어나지 못해요. 

 

우리나라 법학계가 딱 그렇지요. 예를 들어, 어려운 말로 재판에서 사람이 두 명이상 합해지면 주관적 병합, 재판에서 다투는 것이 두 개이상 합해지면 객관적 병합이렇게 표현하거든요. 솔직히 영어로는 subjective, objective이니까, 실제로는 주어, 주체병합, 목적어 객체병합이 훨씬 직관적인 이해가 쉬운 단어인데 말이죠. 그런데 죽었다 깨어나도 일본의 어느 선구적 학자가 오역을 해놓고, 영어 하나에 일본어 하나 이렇게 해 놓은 것을 일본을 떠난 한국의 학자조차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시험에서 달리쓰면 틀리게 되니까요.

 

통합과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학상 '학습된 실패내성'(learned failure tolerance)라는 것이지요. 쉽게 얘기해서 실패만 잔쯕 경험하게 하면 스스로 알아서 좌절의 늪에서 기느라 무조건 강자에 복종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시험도 어렵게 내고, 노력해도 성적이 안 올라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패자부활전이 없는 문화를 만들어서 일단 좋은 고등학교를 못가면 좋은 대학교를 못가게 하고, 그러면 다시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마치 실업을 계속 경험하게 해서 아예 직장을 구하지 않게 좌절하도록 하면 실업률은 낮아지는 아이러니 같은 것이죠.

 

그런데 이런 일본이 제일 싫어하는게 있어요. 바로 논리(logic), 이성(reason), 합리(rationalism)지요. 학벌, 권위로 얘기하는 것에 근거를 얘기하면서 복종을 하지 않거든요. 뉴라이트에서는 한국이 전근대, 일본이 근대화를 시켜주었다고 하지만, 사실 근대화 소위 르네상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유럽의 구권위인 신으로부터 인간이 독립하고, 그에 저항하는 것을 말하지요. 즉, 권위에 대한 도전, 저항정신이 바로 근대화정신이란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반란이 있었던 나라이니 그야말로 저항정신이 넘치는 사회였지요.

 

한때 우리나라 자칭보수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단어가 있어요. 국가의 품격, 혹은 국격이란 단어이지요. 일본에서 유행했던 베스트셀러인 "국가의 품격"에서 나온 것이지요. 이 책을 보면, 저자는 미국의 이라크전을 비판하면서, 미국은 국격이 낮은 나라라고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문화가 논리이므로 논리에 반대한다는 취지를 역설하지요.

 

그래서 영어 일본어 사전에서 논리적(logical)이란 단어를 찾으면 "독선적"이란 단어가 나타나지요. 영영단어 사전이나 라틴어, 독일어 사전 어느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어휘 해석이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전세계에서 일본만이 논리적이란 영어를 독선적이라고 해석합니다. 아차. 우리 영어 한국어 사전도 영일사전을 베꼈으니 논리적=독선적이라고 되어 있는 사전이 있겠지요? 이렇게 문화의 수입은 수십년이 지나도 왜곡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뭔지 아시죠? "독선적"이다. "분열적"이다. 왜 그럴까요? 대표적인 명제가 바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연정"을 통한 선거제도 개혁(독일식 정당명부제)이 "필요조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선거제도 개혁만으로는 지역감정 해소가 되지 않는다. 그건 충분조건이 아니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필요조건이란 바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여러가지 있지만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런 의미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분조건 이런 것만 좋아해요. 갑이 이루어지면 을이 이루어진다. 그 갑을 내 놓아라. 이렇게 국민들이 요구를 하거든요. 그러니 5천만 인구가 모두 5천만의 자기 주장을 해요. 이걸 해 달라, 저걸 해 달라고 하지요. 그런데 노짱님이 갑자기 이게 제일 우선순위야, 그 근거는 이런겁니다. 하니까 기분이 나쁜 것이거든요.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주관적으로 인상평가를 해 보니, 기분이 나쁘다 이거지요. 국민감정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특히 기존의 권위, 학벌, 인맥, 직책으로 자기 말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게 없는 노짱님의 주장 자체가 맘에 안드는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근거를 보고 판단하지 않거든요. 자기에 복종해 줘야 하는데 다른 말을 하니, 기분이 나쁘고, 그러니 소통을 못한다, 독선적이다 이렇게 비난을 하구요. 마치 가정에서 배우자들 사이에서 당신은 왜 내편 안들어주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비난을 듣는 것이나 같지요. 유시민 장관이 왜 "옳은 얘기를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쁘게 한다"는 구민주계의 평가를 받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왜 내편에게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느냐, 기분나쁘다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안철수 씨는 예전에 방송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했지요. 자기가 아는 어떤 친구는 책을 보다가 자기 주장에 맞는 근거를 보면 참 좋아하던데 자기는 그 친구가 싫다구요. 세상이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라면서요. 즉, 안철수씨는 논리적인 것을 싫어하고 여성적인 동감을 바라는 경험론자이지 절대 합리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근거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것을 독선적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그의 토론에서의 자세를 이해할 수 있지요. 여성적 리더쉽이라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좌절의 연속에 사로잡힌 사람이 권위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건설적인 실패내성'(constructive failure tolerance)이란게 있지요. 즉, 이상하게도 사람들 중에서는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도 좌절하기는 커녕, 에잇, 오기다. 더 열심히 공부하자. 이러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이지요. 바로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구요. 다만, 심리학에서는 아직 어떻게 해야 실패를 해도 오기를 가질 수 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게 일본식 처세술이지요. 싸움닭이론입니다. 이건희가 방송에서 소개해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이론인데요. 일본에서 싸움닭을 키울 때에는 차기 참피온을 키울 때는 노련한 전 챔피온 닭을 데려가 싸움을 붙인다고 합니다. 다만 전 챔피언이 이기려고 할 때마다, 즉 후계자가 질려고 할 때마다 끼어들어서 뗴어놓지요. 이러면 후계자는 실패경험 없이, 즉 실패내성이 싸이지 않고, 노련한 기술만 익힐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렇게 하면 후계자가 큰 실패 한번만 겪게되면, 극복할 방법을 알 수 없다는게 문제지요.

 

 반면 인지행동주의 심리학, 교육학에서는 맞춤형, 1 대 1 개선을 얘기하지요. 바로 사람에게 조금 어려운 수준의 문제를 내고, 그를 풀게해서 적절한 성취동기를 부여해서 실패의 경험을 완화시키고 오기를 가지게 만드는 방식이지요.

 

권위주의에 젖어서 사는 자칭 보수층과 우리 민중속에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 있던 반문명, 저항주의의 급진좌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과학적 검증, 논리적 접근, 객관적 연구 등을 통해서 해결해 간다면 적절한 저항,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강제적인 개혁보다는 자발적, 점진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해가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국민보다 반발짝 앞에서 설득을 해 가는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지요. 구극의 진리를 알려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설사 잠정적인 진실에 불과하더라도 합의를 거쳐서 설득의 시간을 가져가는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목록

twitter facebook 소셜 계정을 연동하시면 활성화된 SNS에 글이 동시 등록됩니다.

0/140 등록
소셜댓글
사로 saro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