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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 19:21
안철수의 사퇴는 자명하다. 문재인은 백신을 얻었고, 안철수는 영생을 바랐다. 문재인 후보와의 결투 기피가 안철수의 영생의 불로초였다. 다만, 후보사퇴가 문재인에게 경선보다 부족한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다. 안철수가 링 위에서 갑자기 내려왔다. 민주당측의 조심스런 반응과 웃음이 사라진 말투에는 조금 우려의 느낌이다. 며칠 전, 내 주장에 솔밭님의 저에 대한 비판에 반론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안철수의 사퇴로 누가 승자인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솔밭님 언제 서울 상경할테니 저녁에 술이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최소한 밥이라도 사려고 했는데 이제, 이마저도 솔밭에게 빈대를 붙을 명분은 생겼다,
솔밭님의 주장이 맞다. 내가 좀 높은데 있다. 평창의 고도가 500m 정도니 서울 강남 대치동보다 헐 높은 것은 높이가 증명한다. 근데 높은데서 사는 것은 떨어질 때 무지 아프다. 평창까지 올라오는 과정에 귀가 먹먹하였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고도에 위치하였지만, 속세의 달콤한 분위기와 휘황찬란한 밤의 불빛이 아주 그립다. 함 상경할 작정이다. 밥은 최소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건너편 신도리코 맞은 편에 있는 "남가스시"에서 사시라. 사케는 준마이급으로..ㅋㅋ. 솔밭님은 내가 정찬을 즐길 때, 은마아파트 앞 중국집 "현경"에서 자장면을 추천한다. 물론 내가 먹은 것은 솔밭님이 솔밭님이 드신 것은 내가 계산하겠다.(정리)
안철수가 사퇴한 배경은 지지율 하락이 첫째 요인이다. 마지막 반전을 노렸지만 이미 추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민주당측과의 협상결렬의 책임을 지울 때, 이미 승부는 결정났다. 정치란 게임의 룰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둘째 출마 시점이 늦었다. 출마시점이 늦은 것이 제 1의 요인이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거진 모든 정책을 선점한 후 출발선이 너무 뒤졋다. 고작 정치개혁이 주 단골 메뉴였다. 정치개혁은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기득권을 내려 높으라는 메시지자 차별성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은 자칫 양당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통계학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전선을 너무 확대했다. 민주당의 총선실패가 정치개혁이 부족했다고 하는 자체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지자의 이삭줍기나 다름 없다. 민주당의 정치개혁이 미진하여 새누리당을 찍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얼토당토한가.
셋째 안철수가 스스로 설정한 이미지든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든 도덕적 잣대의 기준을 스스로 높였다. 그 다음 수순과 행보가 대중들의 기대와 다르게 여러 악수를 두었다. 안철수가 출마결심을 고민할 때, 안철수 지지율이 최고 정점이었다. 그의 사회적 기부로 몸값이 오를 때로 올랐다가 후속타가 없었다. 안철수가 원했든 목마른 대중들의 신화에 우상숭배든 첫계단이 너무 높아서 앞으로도 계속 고도를 높이기가 어려웠다. 대중들은 안철수의 과거 이미지와 비교하며 실망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비교대상은 안철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질 좋은 프랑스 와인을 먹다가, 과일향이 범벅된 와인을 먹을 때 소비자의 기호는 변심한다. 안철수의 처음은 프랑스 와인이고 과정은 점점 질이 낮은 와인으로 변질된 느낌이다.
넷째 캠프의 능력이다. 이미 문재인과 박근혜가 상당한 인재를 영입하였고 후발주자인 안철수는 기회조차 없었다. 전략도 아주 초보적 수준이었다. 민주당과 새누리당 그리고 장외의 캠프진만 비교해도 안철수는 너무 부족했다. 이들의 네트워크는 아주 축적된 조직이지만 안철수는 조직의 세기가 부족도 했다.
다섯째 안철수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다. 문재인과 박근혜는 과거지향적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다. 졸지에 문재인도 앙시앙레짐에 속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주축인 40-50대는 그리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변화를 원하다가도 곧 익숙하게 과거 경험적 포지션을 취한다. 사람사는 세상의 노무현 광장의 글만 읽어도 주장이 두서가 없다. 신념은 이익에 왜곡되고 상황은 이기심으로 변질한다. 그렇다고 내가 도덕적 인간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 자신도 없는 인간이니 이해들 하시라. (대충 내가 느낀 점이다. 정리)
아래 "체게바라"의 글을 읽었다. 인간은 그리 이념적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서 이념화(부분) 할 뿐이다.스탈린의 인간개조 프로젝트는 비극으로 끝났다. 사민주의가 "최소강령, 최대강령, 이행강령"으로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어거지다. 인간은 불평등 할 수밖에 없게 설계되었다. 인간이 이기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선은 종교에 있지만 그 종교가 아직 사회를 구제하지 못하고 있다. 유전적으로 분석하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유전자는 거의 같다. 이슬람의 중동도 유대인과 유전적 요소도 거진 일치한다. 둘 다 조상이 동일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쌈박질을 하지 않은가? 이슬람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차이는 단순히 후계자 싸움에서 갈라져 나왔다. 사소한 차이가 진화를 하면서 교리까지 차별화 했다. 이념의 잣대보다 현실과 현상에 기초한 우상숭배가 합리적이라 생각할 뿐이다.
안철수의 도덕성은 일단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난, 문재인과 비교하면 문재인이 헐 도덕적 인간이라 생각한다. 단, 난 이런 정합적 판단은 하지 않는다. 정규분포상 평균의 가치다. 기업인으로의 안철수와 법으로 먹고사는 문재인의 가치에 다소 편중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니면 극단주의자의 이스라엘과 중동의 끝임없는 보복전이 된다. 순혈의 가치를 믿는 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소유욕으로 존재의 가치가 부정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백백교의 종교 교리(이념)처럼 받아들이면 꼭 사고가 난다. 그들 스스로 목을 얽매이게 만들기 충분조건이 된다. 극단주의의 피폐한 영혼을 인터넷에서 우리들은 매일 본다.
안철수 현상은 유리하든 불리하든 오로지 현실로 보면 된다. 이건희의 똑똑한 넘 한 넘이 수천 명을 먹여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아니다. 정치는 그래도 가치지향적이라야 한다. 안철수의 자본주의와 더 통하지만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다. 정치가 무서운 것은 지도자의 잘 못된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 지,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기업의 합리적 판단과 이익이라는 효율성이 정치에 도입되면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안철수의 정치개혁에 내가 그리 동참하지 않은 이유다. 정치는 다소 비능률적이어야 한다.
글로벌적 경제위기에서 수출로 먹고산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수출을 위하여 국내 농업과 내수위주의 산업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차별적 요소다. 농업을 보조하는 것은 농사를 짓는 대다수의 농촌 노인들을 위한 복지도 된다. 그들 모두를 국가에서 연금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일면 중 하나일 뿐이다. 문국현도 그랬고, 박찬종도 그랬다. 40대 후반이 된 지금 메시아적 종말론으로 우상을 섬길 수는 없다. 다수가 중간이면 사회는 진보하게 되어 있다. 세월이 조금 걸릴 뿐이다. 빨리빨리 간다고 먼 곳을 가지는 못한다.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지만 아직 아프리카의 수준은 그리 높다고 할 수 없다.
안철수를 보듬는 문재인의 자세는 훌륭하다. 인간적으로 정치인으로 살기 아까운 인물이다. 내면이 강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강단이다. 이제 다소 늦었다. 안철수와 함께 갈 수 있는 "국민연대"란 더 큰 반박근혜 전선에 돌입하는 절차만 남았다. 문재인과 민주당, 안철수와 국민이 다같이 가는 길..그나마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최소의 선택이다. 새누리당은 붉은 색이다. 민주당의 노란색과 안철수의 색, 새누리당의 붉은 색도 포용할 수 있는 색깔까지 양보해야 한다. (스탕달의 적과흑은 군대와 종교의 색깔이다)
..솔밭님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꿈꾸지 않습니다. 저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제가 쏠까요? 불타는 토요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