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
0
조회 105
2012.11.19 10:27
남의 저서 틀린 부분 꼼꼼하게 지적해 주는 사람
조국 서울대 교수에게 문재인은 오랫동안 ‘문변’으로 기억됩니다.
80년대 초반 울산대에서 ‘병아리 교수’ 생활을 시작하던 당시
문재인은 이미 부울경 지역의 노동사건과 인권침해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며 맹활약 중이던 변호사였으니까요.
조 교수는 법학논문을 쓰기 위해 판결문을 참고할 때마다
변호인 란에서 ‘문재인’이란 이름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에 대한 염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
표현의 자유와 노동삼권 등 사회․경제적 기본권의 귀중함에 대한 신념이
바탕에 깔린 문재인의 변론문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사실을
조국 교수는 못내 잊지 못해 합니다.
또한 서울에서 대학공부를 한 문재인이지만
지역에 터를 잡고 촌놈으로 자처하는 모습도 좋았더랍니다.
사람들이 문재인에 대해 말할 때
능력이 뛰어나더란 것도 그렇지만 ‘인품까지 좋더라’는
얘기를 빼먹는 경우가 없는 것을 보고
‘문재인,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더랍니다.
참여정부가 끝난 뒤,
문재인이 ‘문변’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야 두 사람은 처음 만났습니다.
조 교수는 그에게서
신중, 절제, 원칙이 몸에 배인 신사의 이미지를 읽었습니다.
또한 동시에 조 교수는 그에게서 어떤 뜨거움을 보았습니다.
법률가 생활과 청와대 경험은
그 뜨거움을 응축하고 있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런 뜨거움이 두 민주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그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결의와 실천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조국 교수가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함께
<진보집권 플랜>이란 대담집을 내고서
문재인에게 한 부 보냈더니 얼마 뒤 그에게서 편지가 왔다지요.
통상 “좋은 책 잘 읽었다” 정도의 덕담으로 그치기 십상인데
문재인의 편지는 놀랍게도
책 내용 중 잘못된 사실관계와 통계 수치를 지적한 친필 메모였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구나.
참으로 치밀한 사람이구나.”
조국 교수는 혀를 내둘렀습니다.
남의 저서 읽고서 통계수치 오류 지적한 메모로 답장하는 사람,
문재인은 그런 사람.
※이 얘기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알려준 것입니다.
손자에게 줄 뻥튀기 세 봉지 만원에 샀다고 자랑하는 사람
참여정부가 끝나고 문재인은
부산이 아닌 시골 양산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평소 가깝게 지냈던 최수연 씨가 권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삶에 이제는 휴식이 필요한 만큼
좋아하시는 들꽃 연구소장이나 하시라고.
그때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재산이라곤 시골집 한 채가 전부라
변호사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비 조달이 어렵다.
그나마 조금 있던 돈은 청와대 생활 할 때 다 까먹었다.
서울 생활 만만치 않더라.”
또 정치 일선에 나서 달라는 주위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그는 넋두리 하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갔어야 했다.
밥벌이만 아니었어도 더 깊은 골짜기로 갔을 텐데….
변호사 업무하기에 이 정도의 거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는 진정으로 시골 생활에 적응한 듯 했습니다.
서재에서 책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쉬지 않고
텃밭을 가꾸고 나무를 돌보고 키우는 동물을 챙겼습니다.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을 귀히 여기며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런 문재인이 손자가 태어났을 땐 그날로 ‘손자바보’가 돼버렸다지요.
손자가 시골집에 온 날이면
문재인은 외부 일정 내내 마음이 바빠 동동거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즐거움 중 으뜸가는 건 손자에게 과자 사 주는 일,
하지만 아기 엄마는 식품첨가물 범벅인 과자는 멀리하는 대신
감자나 고구마를 쪄서 간식으로 주었습니다.
애가 달은 문재인이 궁리 끝에 찾아낸 과자가 봉하쌀로 만든 뻥튀기.
그래서 양산 집에는 봉하쌀 뻥튀기가 떨어지는 날이 거의 없었답니다.
어느 몹시 바쁜 날, 어렵게 시간을 쪼개 뻥튀기 세 봉지를 만 원에 사서는
싱글벙글 자랑에 여념 없는 보통 할아버지,
문재인은 그런 사람.
※이 얘기는 부산가톨릭대 강사 최수연 씨가 알려준 것입니다.
남자 체면 때문에 ‘개고생’한 사람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 1년 만에 문재인은 청와대를 물러납니다.
뼈 빠지게 일하느라 건강도 상했고 더구나 이를 열 개나 뺐으니
모르긴 몰라도 거쳐 온 1년이 징글징글 했을 듯.
그리고는 도망치듯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로 트레킹 여행을 떠납니다.
1997년에 처음 간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추억을 못내 잊지 못해 선택한 여행,
‘꿈같은 자유’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죠.
4,700고지의 베이스캠프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청와대 1년 동안 뺑뺑이 치느라 ‘저질 체력’이 돼 버린 걸 감안해
3,500고지의 산간마을 도는 코스를 골랐습니다.
여행사에다 포터를 2명 부탁했는데 한 명만 와서 하는 말,
웃돈을 좀 주면 혼자서 지기에 충분하다!
침낭, 파카 등 부피가 클 뿐, 무게는 웬만해서 그러라고 했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부부 두 사람의 짐이라 20kg는 족히 넘는데다
부피가 커서 체구 작은 포터의 덩치만 했다죠.
보통 30~40kg를 지고도 날아다닐 정도로 단련된 그들이라
사실 별문제는 없는 건데… 문재인은 여기서도 미련한 일을 벌이고 맙니다.
괜히 동정심이 발동해 짐 일부를 넘겨받아 덜컥 자기가 진 겁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허걱! 10kg도 안 되는 짐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트레킹 내내 죽는 줄 알았답니다.
“에이, 대한민국 남자의 체면이 있지!” 라는 생각 때문에
도로 돌려주지도 못하고, (으아아… 돌려주고 싶어!)
그렇다고 “여보, 당신이 메소” 할 수도 없고…
사서 고생 문재인, 애잔한 문재인….
그리고는 자서전 <운명>에서 “트레킹을 고행하듯이 했다.”고 털어놓습니다.
또 “…끝까지 메고 갔는데 참 힘들었다.”라고도 했습니다.
과묵한 그가 이 정도로 말하는 걸 보면 힘들긴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히말라야의 경관이며 밤하늘의 별이며 맑은 공기며 보상은 충분했다.”
이건 웬 ‘정신 승리법’?
문재인은 그런 사람.
배추 모종은 덕계 영농조합에서!
문재인이 정치 일선에 나서고 난 뒤
양산 집 텃밭은 부지런하던 밭주인을 잃고 텅 비고 말았습니다.
그 전 같았으면 상치며 쑥갓, 가지, 토마토, 고추, 배추, 깻잎 등등
철을 바꿔가며 밭 가득 심어졌을 푸성귀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문재인 식구들과 한 가족처럼 지내며 밭일도 곧잘 거들던 최수연 씨는
밭의 빈 고랑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텃밭 가꾸기를 그렇게 좋아하던 문재인이 행여 양산 집에 들르기라도 하면
휑한 밭을 보고 얼마나 허전해 할까 지레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대신해서 배추라도 좀 심어볼까, 엄두를 냈습니다.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여름 어느 날, 최수연 씨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변호사님, 밭이 휑하니까 영 그러네요.”
“어…그렇지. 내가 이러고 있으니 뭐 어쩌겠노.”
“제가 배추라도 좀 심어볼까요?”
“도미니카가? 허, 그 좋은 생각이네. 근데 자네가 심을 줄은 아나?”
“제가 못하는 게 어데 있습니까. 오면서 보니까 동네에서도 모종 팔던데요?”
“아, 안 된다, 안 된다. 모종은 덕계 영농조합 거라야 돼.”
“가까운데서 사믄 안 될까요? 뭐 큰 차이 있겠습니까?”
“어허, 아이라니까! 덕계 거 사야 돼, 덕계 거.
거기 배추가 벌레, 병충해에 잘 버틴다고. 맛도 훨씬 좋고.
그라고 좀 넉넉하게 심어서 나중에 사람들한테 좀 갈라 주고 그래.”
“(하이고, 경선 와중에 참 깨알같이도 신경 쓰시네….) 예, 그리 할게요.”
배추모종은 덕계 영농조합이 최고인 줄 아는 사람,
문재인은 그런 사람.
출처/http://www.moonjaein.com/his_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