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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20:44
잔디와 골프
<우리 노짱님>
마른잔디가 동장군의 기세를 전한다. 지난여름 초록이 겨울 빛을 알리는 자태가 그런 느낌을 준다. 굳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듯 빛을 바꾸고 연출해가며 자신들을 지켜나가는 모습도 참 가상하다. 곁에 물이 있어 더 춥기도 할 텐데 계절 빛을 잃지 않고 자기 색을 자랑하는 저들 앞에서 춥다고 움추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뜯으면 뜯기고 밟으면 스러져도 상한 몸 추스르고 새살을 키워 오늘 나에게 성찰의 계기를 심어주는 잔디가 이 겨울을 더 없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물기를 안으로 감추어둔 탓일까. 까칠한 촉감이 피부에 닿는다. 금방 바스러질 것 같은 마른 몸속 어디에 푸른 물기를 숨겨 둔 것일까! 마치 계절의 불청객 침범을 막으려는 듯 철저하게 방어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아주 극한 얼음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마른몸짓으로 막아내겠다는 결의가 꽉 찬 느낌이다.
오늘에 잔디를 대하고보니 지금껏 무심하게 스쳤던 기억들이 새롭다. 철없던 내 어린 날에야 이런 잔디의 속성을 어찌 알았겠는가 만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곳을 찾고 보니 양지바른 언덕에 해바라기하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땔감 몫은 거의 내 차지였으니 갈비 끌기 솔방울 줍기는 겨울방학동안 철저한 일손으로 자리 메김 되었다. 언 볼과 손을 녹일 수 있는 자리는 바로 잔디밭이었다. 고사리 손을 녹이는 데는 더 없이 따뜻한 융단이 되어주기도 했다.
여름에는 또 얼마나 시원한 돗자리였던가.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누워도 피부에 닫기만 하면 이내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그 천연적인 신비의 궁금함과 잔디만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속성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뜯어도 보고 빛깔을 관찰도 하였지만 어린마음에는 그 무엇도 찾아내지를 못해 궁금하기만 했다.
놀이터로도 더 없이 좋은 자리였다. 산자락에 소들을 풀어놓고 썰매타기, 기마전, 고무줄뛰기, 물구나무 서기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넘어지고 스러져도 타박이니 골절이니 하는 상처를 잘 입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틈 없이 뿌리를 내리는 잔디의 위력과 땅을 받치고 있는 잎의 단결력이 이런 융단역할을 하였는가 싶다. 그 놀이를 통해 스포츠 정신도 배웠을 게고 넉넉한 인심도 배웠을 것이며 우리들의 체력과 꿈은 바로 이곳에서 커 갔으리라 여긴다.
어느새 서서히 푸른 물기를 잃어 갈 때면 결실의 계절이 다가옴을 알았고 마음은 이내 풍성한 가을들녘으로 향하기도 했다. 지난여름 함께했던 싱그러운 빛이 사라지는 아쉬움보다 계절 색을 나타내는 그 자태가 마음의 풍요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어느 시기이던 잔디밭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자리로 함께했다.
그런 잔디밭을 오늘 노무현대통령 고향 봉하 마을에서 만났다. 옆에 저수지가 있는 탓일까 겨울 색이 한층 깨끗해 보였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기에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질게 얻어맞았던 한을 견디고 난 어떤 인내의 힘인지, 훼손 되지 않은 형태 하나하나가 대견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없는 울분을 쏟아내고도 남음이 있겠건만 정갈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 자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가까이하면 할수록 궁금함을 떨칠 수가 없다.
저렇게 소담스럽기까지 한 잔디가 어느 한때는 ‘골프’ 라는 귀족놀이터로 이용되고 불리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였고 양지바른 언덕의 보료로서 포근함을 더해주던 자리가 수십 년이 흐른 해후에도 이리 아련한 추억을 품어주는데, 아담한 산골을 지키고 있는 저들을 메스콤 지상은 호화놀이판으로 매도를 하였던 것이다. 봉화산 어느 골짝에 대형골프장을 마련해놓고 초호화판 운동을 즐기고 있다며 이 마을을 온통 절대 권력자의 고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골프장하면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평수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그리고 지상에 발표를 하자면 반드시 현장이 드러나 있어야한다. 공치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며 사람들의 움직임도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럴만한 공간도 없을뿐더러 더구나 들어설 장소도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꿈이라도 있었다는 단 한 점의 흔적마저 보이지 않았다. 저수지가 있고 그 옆의 어린이 놀이터 공간정도가 전부였다.
골프장이라니! 대낮에 코를 베어도 유분수지 어찌 이런 새빨간 거짓말로 이 나라 대통령을 모함한단 말인가? 대통령이 아닌 그 누구도 단서 없는 중상모략은 있어서 아니 되지 않는가 말이다. 무슨 추리극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의 장난질 연극무대를 꾸미는 일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근거 없는 작태로 세상의 모든 불신과 혼돈은 죄다 봉하마을에 실어다 놓았으니 이 어찌 통탄하지 않을 일이랴! 꿈동산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던 내 어린 날 초록 꿈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거친 세파를 헤엄쳐 오면서 만약 잔디와의 추억이 없었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더 황폐해졌을까. 어쩌면 상처투성이로 남았을지 모른다. 이토록 소중한 내 정신의 모태를 이 나라 언론은 추악한 범죄현장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언론이라 하면 국민의 귀와 눈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닌가? 그 대변자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책임과 도리 또 한 가지고 있어야한다. 최소한 사랑으로 특필하기를 바라진 않지만 폄하와 누명으로 일관해선 안 된다는 게다. 그런데 골프장 문제는 철저히 누명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이 나라 최고 학부를 나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간 이 자리에 오기까지 공들인 부모의 은덕과 자신의 피땀을 잠시 새겨본다면 현재 자신들의 행위가 과연 정당성이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할 일이다. 반드시 그대들은 음해자이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파렴치범이라는 걸 훗날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공부이전에 사람이 되라고 진정 사람이 되라고 말이다.
나에게 사계절 보료가 되어주었던 잔디동산을 빼앗은 그 무모함도 절대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몸과 마음이 추울 땐 더러 찾기도 하였고 그럴 때 마다 그곳은 언제나 꿈동산으로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의 잔디밭은 그 소중함을 이 나라 언론이 빼앗아 버렸으니 분개심 또한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잔디에게 속삭일 것이다. 누가 어떤 박해를 가해오더라도 잔디의 속성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꼭꼭 새겨뒀다 머 언 날에 꼭 진실을 말하라고 그렇게 일러 둘 참이다. 슬픔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누누이 일러 둘 생각이다. 단단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