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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13:35
올해에 들어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가 한국일보의 편집국장으로 내정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안철수 양보론’의 진원지가 한국일보라는 것을 전제로 깔고 제 정치적 상상력을 풀어보겠습니다.
최근에 들어 종편 방송과 KBS와 MBC, YTN 및 조중동문을 보면 보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모든 매체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도의 포기와 보수로의 회귀입니다.
김종인씨의 효용이 다했음을 분명히 한 박근혜 후보부터 시작해 수구 꼴통으로 돌아간 것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 새누리당의 온갖 망발과 ‘안철수 양보론’을 보도한 한국일보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자원들의 총 동원령이 내려진 모습이 역력합니다.
이미 이번 대선의 향배에 대해 계산이 끝났다는 얘기이겠지요.
이쯤에서 제가 보수 세력의 전략가라면 지금가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이번 대선에 임했을까, 하나씩 복기해 보겠습니다.
제가 보수 세력의 전략가의 관점에서 복기부터 하는 이유는 안철수 후보의 협상 중단이 단순한 오해라고 보기에는 돌아가는 형국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5.16군사쿠데타 이후 이 땅의 보수 세력이 최선을 다하고도 정권을 내준 적은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IMF환란을 초래한 1997년에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김대중 정부에게 정권을 넘겨주는 것은 그들조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제외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오랜 독재 기간들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이룩한 유럽 여러 나라의 정치가들은 이때에도 진보정권이 2번은 간다고 예상했기는 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보수 세력들은 그들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오랜 기간 동안 보수 세력들이 벌였던 탐욕의 파티 이후, 그 너저분한 쓰레기 처리를 파티의 당사자들인 보수 세력이 직접 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역할을 위해서 한 번쯤 권력을 넘겨줘도 그 다음에 정권을 찾아오면 그만이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보수 세력들은 IMF의 구조조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한데 구태여 전세계를 정복한 그들과 등을 지면서까지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한 발 물러서 소나기를 피하고 실리를 챙기면서 소진한 체력을 보강하는 삼중의 효과를 거두는게 훨씬 유리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IMF의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대한민국이란 참담한 그 자체였습니다.
IMF 구제 금융을 받은 나라들에서 어김없이 발생했던 신자유주의의 범람이란 지옥의 재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승자독식 논리에 따라 1%의 독점은 강화된 반면, 벤처 광풍으로 중산층이 무너지고, 카드 대란과 노동유연화로 대량 실업과 하층민이 양산되었고, 잠시 숨을 고르던 부동산 거품이 본격적으로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와 스티글리치의 <세계화, 그 불만>,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죠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와 <프레임 전쟁> 등등을 보라).
IMF의 악랄한 구조조정의 폐해들이 김대중 정부가 모두 다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귀착되는 동안, 체력을 보충한 보수 세력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구축해놓은 권위주의적 정경유착이란 헌옷을 주주 자본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의 정경유착이라는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습니다.
헌데 이들이 생각도 하지 않은 곳에서 고려의 대상조차 안 되었던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나타나 바람을 일으키는데, 그런 현상의 파괴력을 전혀 고민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보수 세력들은 어어 하는 사이에 정권 탈환에 실패하고 맙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하고도 패배한 최초의 대통령 선거가 바로 참여정부의 집권이었습니다.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승리를 경험한 세대들의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쉬운 것은 승리를 확인한 그들이 더 이상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공양하고 자식을 교시키고 자신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보수 세력의 전략가들은 바람의 정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한 것들이라면 무엇이든지 찾아내 해체하고 분석해 보았습니다.
요즘은 진보주의자들도 보지 않는 마르크스의 저작들과 미셀 푸코와 딜뢰즈, 라캉과 벤야민, 래비와 가타리도 다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각 시대별 젊은이들을 마케팅적으로 분석·연구해 정의 내린 기업들의 보고서들도 그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젊은 피들도 정치권으로 수혈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나오미 클라인의 <No Logo>와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과 <다중> 등을 보라).
물론 기업들이 정의 내린 X세대니, N세대니, M세대니 하는 각 시대별 젊은이들의 특성들은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젊은이들이 그런 정의에 합당하게 소비하도록 만든 기업들의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었지만, 보수 세력의 입장에선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정권을 탈환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장땡인 것입니다.
바람의 정체를 속속들이 파악한 보수 세력의 전략가들은 이때부터 조중동을 필두로 해서 친일파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진보에서 전향한 인사들로 이루어진 뉴라이트 계열 등을 동원해 끊임없고 악의적이며 집요한 노무현 정권 무너뜨리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미 상당히 진행된 부동산 거품을 극도로 끌어올렸고(당연히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부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IMF 구조조정의 폐해들을 철저하게 노무현 정권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빨갱이와 좌파라는 두 단어를 내세워 참여정부 5년 동안 이들의 악랄한 선동질은 단 하루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보라).
신자유주의가 극성까지 치달으면서 온갖 경제적 문제들이 속출했는데 이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었던 참여정부의 헛발질을 철저하게 이용해 먹기도 했습니다.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노무현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외풍에 시달려야 했고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의회의 탄핵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맹폭에 잠시 동안 생업에만 전념했던 386세대들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넥타이 부대와 국민들의 힘으로 탄핵을 무효화시켰지만, 그 정치적 상처는 끝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족이 잘려지고 분당이 진행되는 등 만신창이가 된 참여정부는 4대개혁 입법과제는 고사하고 정치적 뿌리까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해온 몇몇의 참모들만 데리고 참여정부는 부동산 가격 거품을 빼는데 성공했지만, 그 밖의 것들(대표적인 것이 한미FTA와 강정마을 해군기지, 비정규직 보호법 등)에서 상당한 실족을 하고 맙니다.
보수 언론들은 이런 참여정부의 행태를 패거리 정치라 했고, 진보 세력은 참여정부의 실족을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한다고 맹폭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극성으로 삶이 갈수록 어려워진 국민들도 노무현 대통령 때기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보수 세력의 승리는 확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이 미련한 노무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는 일념에 정부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공권력의 사용마저 최대한 멀리했습니다.
가뜩이나 권력기반이 약한 노무현 대통령으로써는 먼 훗날에야 재평가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장의 현실 정치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이었지요.
그 다음은 모두 다 아시고 계신 것처럼 이명박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렇게 정권을 탈환한 보수 세력은 무려 10년 간 챙기지 못했던 이권을 나눠가졌고 언론을 장악하고 온갖 토건사업을 벌이며 경쟁만능의 교육관과 승자독식의 유전자를 젊은이들의 세포와 뇌리에 깊이 박아놓으면서 국가와 국민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대신 미국과 일본의 뒤꽁무니에 찰싹 달라붙어서 만일에 대비한 보험은 들어놓았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진보 세력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난 다음이니 아무리 개판을 쳐도 대한민국에서 보수 세력이 정권을 내줄 일은 다시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반이명박 코드를 적당히 유지한 채 콘크리트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필두로 해서 재집권 전략을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변수란 2030세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 후보 정도인데 그들이 보기에 안철수 현상이 불러낸 안철수는 선한 이명박에 다를 것 없어 보였습니다.
노풍에 대한 경험측상, 인류 보편적 정치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젊은이들이 혁명에 준하는 바람을 일으켜도 결국 그 혁명의 열매를 따먹는 것은 노회한 늙은 생강들임을 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반이명박 정서와 기존 정치에 대한 혐오감으로 똘똘 뭉친 2030세대들이 일으키는 바람이나 현상이야 어느 시대나 있었던 것, 안철수 현상이라고 하는 바람의 위력이란 노무현이 일으킨 바람에 비하면 현실 정치적 조직과 힘이 약하니 그리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했지만 4·11 총선에서 승리한 것에서 자신들의 전략이 얼마나 진화해 있는지 그들 스스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승리가 민주통합당의 무능함과 진보 세력의 고질적인 병폐 때문에 이긴 거라고 모든 언론과 전문가들을 동원해 국민의 여론을 환기시켜놓은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이게 웬 떡입니까?
조금씩 세를 넓히며 보수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던 꼴통 진보들이 제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치명적인 실족은 참여정부의 실정과 어느 정도 연결돼 있으니 이것보다 좋을 것이 없게 됐습니다.
자, 이제는 보수의 재집권을 위해서 덜 위협적인 야권 후보를 우회적으로 띄우기 위해 언론과 전문가, 여론조사기관들을 총동원해 마치 안철수 현상이 가장 두려운 존재인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정확히 압니다, 현상이 불러낸 인물은 현상을 내재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람으로 일어나려면 상당한 조직과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태생적으로 현상이나 바람에 약할 수밖에 없는 진보 세력(민주통합당)은 그들에게 휘둘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음도 분명하게 압니다.
그러다가 현상이나 바람을 일으킨 2030세대들의 열기가 조금씩 가라앉고 현상의 주인공인 안철수 후보와 그의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이 세 불리를 느끼며 현실 정치의 높은 벽 앞에서 흔들릴 때쯤부터는 본격적으로 진보 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 방면에서는 도를 튼 자들이 지금의 보수 세력들이니 단일화를 겨냥한 융단폭격이야 누워서 떡 먹기죠.
기존의 민주통합당에 최대한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로 현상이 커지면,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을 능가할 정도가 아닐 때쯤부터는 양쪽 진영을 향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두 후보 간의 단일화는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과정이라면 최대한 그들 간의 갈등의 골을 키워가면서, 현실적인 벽 앞에 서면 쉽사리 식어버리는 젊은이들의 현상을 투표율 하락으로 몰고 가기만 하면 만사 OK인 것이죠.
지역적 견고함에 빨갱이 콤플렉스, 끊이없이 분열하는 무능한 진보, 안보 위협 등등.. 전통적 레퍼토리로도 충분하니 별반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박근혜 후보와 '도로 한나라당'으로 돌아간 새누리당이 대놓고 보수 회귀를 선언한 것도 내가 만약 보수의 전략가라면 이미 세워진 프로세스의 당연한 진행일 뿐입니다.
중도라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조사해보면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인데, 보통 젊은이들일수록 진보적 외피를 두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중도를 표방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들입니다.
예전 같으면 난리가 났을 각종 노동자 관련 사건들(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이랜드, 알리안츠생명, 창조컨설팅, 유성기업,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이 일어나도 그저 일회용 관심만 보여줄 뿐 그 이상의 것들은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욕설을 투척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시기가 40년이고, 한국에서는 20여 년입니다.
지금의 2030세대가 모두 그 시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들은 아니라고 부정해도 그들의 피 속에는 민주주의와 함께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스티글리츠의 <스티글리츠 보고서>와 리처드 피트 외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라).
그들 중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는 미국의 진보들과 마찬가지로 ‘돈과 권력 앞에 무릎 꿇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대부분입니다.
현 대한민국의 보수 세력들로써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당히 보수화된 자유주의자들이니 문재인 후보만 확실하게 짓밟으면 정권 재창출은 별로 어렵지 않는 일이 됩니다.
그 역사적 사실들이야 어떻건 간에 20세기 마지막 10년과 21세기에 자라난 진보 세력들의 대부분은 공정시장을 믿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익숙한 세대들입니다(피터 코닝의 <공정사회란 무엇인가>와 프럴리히와 오펜하이머의 <정의의 선택>, 존 롤스의 <정의론>을 보라).
스티글리츠나 장하준 등이 좌파적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들입니다.
뼛속까지 민주주의와 빈곤 극복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찼던 386세대들과는 상당히 다른 세대들입니다.
디지털 기술과 환상에 빠져 있는 이 세대들의 맏형이 안철수 후보이고요(빌 게이츠의 <디지털이다>, 찰스 리드비터의 <무게 없는 사회>, 제임스 베니거의 <통제 혁명> 등을 보라).
그들에게는 가상의 세계처럼 그것이 무엇이든지 상상이 가능하고 스크린이 보여주는 것처럼 빠르고 분명해야 합니다.
네트워크를 넘나들며 빠르게 접속하고 감정과 언어를 배설하고 감각적으로 소통하지만 어느 사이트에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욕구와 기호에 대해서는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지만, 현실 세계의 엄혹함과 견고함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화된다고 해도 실제의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은 아날로그적 현실입니다.
그 사이에 자리한 채 ‘내가 주인이다’ 하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자들이 보수 세력들이고요.그들에게 이렇게 하면 기득권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보고서를 올리는 전문가들이 사악할 정도로 뛰어난 보수 세력의 전략가들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했듯, 돈이 되는 것은 무조건 전문화되기 마련입니다.
안철수 후보와 그 진영에 포진한 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현실 정치 경험이 전무하거나, 그 중심에 있었으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할 만큼 노회했거나, 또는 그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싸우며 현실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간, 그래서 아직도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으며, 하늘이 두 쪽 나도 유신 세력의 잔당들이 정권을 잡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사람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 세대가, 그 전의 앞 세대가 젊은 시절에 그랬듯, 현상과 바람을 일으킬 순 있어도 정권 창출과 유지,계승에는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현상과 바람을 일으키는 기술적 변화만 있을뿐, 젊은이들이라면 언제나 그렇듯 똑 같은 꿈을 반복할 뿐이라는 것을 보수 세력의 전문가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 중단 선언이 어떤 과정들이 연속돼서 일어났는지는 안철수 후보 진영만 정확히 알고 있겠지만, 이 모든 것들이 보수 세력의 전략적 움직임이 없었다면 쉽사리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제발 2030세대들이,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이 이것에 대해 알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이미 10대 중반에 이르기만 해도 한 번 형성된 자아란 그 무엇으로도 바꾸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가장 비참한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2030세대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고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적인 면에서 앞선 어떤 세대들보다 능수능란하기에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은 분명합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무한대의 도피처가 있고 먹이감이 있고 재미가 있기 때문에 다시 흩어져 네트워크 속에서 다시 타인과 접속하고 감정을 배설하고 적당한 소통을 이어가면 그만입니다.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좋겠지만 그렇게 못한다 해도 견뎌내지 못할 세상이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않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지고 있는 저 같은 사람은 너무나 답답하고, 문재인 후보의 처절한 투쟁이 너무 안타까워 미칠 지경입니다.
그 욕심 없는 사람이 이 비열하고 더러운 정치판으로 다시 돌아와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오직 운명 하나에만 의지한 채 묵묵히, 뚜벅뚜벅 두 번째 바보처럼 걸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보입니다.
정말로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 아닌지, 그런 결과로 모든 것이 귀결되는 것이 아닌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솟아 오르는 아픔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한 자 한 자 지면을 채울 때마다 피 끓는 외침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양보로 디지털 세상에서 혼령처럼 떠돌아다닙니다.
접속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는 디지털 세상에서...
기득권 언론의 문재인 죽이기, 이에 편승한 안철수 http://blog.daum.net/do-justis/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