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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07:26
찰 보리빵
<우리 노짱님>
한 여름날 보리밭을 일구시던 엄마의 옷은 항상 젖어있었다. 삼베적삼에 촉촉이 물기베어든 등은 원래 그러러 니 여겼다. 철없던 나는 촉감이 좋아 물장난하듯 두 손으로 토닥이고 비비며 좋아라 했다. 그런 여식을 사랑스럽게 받아주며 놀이의 장소로 등을 내어주던 어머니는 오히려 흐뭇한 기분을 내 비추었다. 그 질펀함이 힘든 노동과 허기 속에 흐르는 식은땀이라는 것을 철부지는 일찍 몰랐던 게다.
설익은 보리로 지은 밥을 그래도 햇보리여서 냄새가 구수하다며 육남매 밥 숱 가락에 자신의 배고픔을 달래던 그 날의 모습도 조용히 다가선다. 아마 풍요가 낳은 오늘이 꼭 모든 것을 가져다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넌지시 일러나 주듯 생전의 선연한 자태가 그려진다. 엄동설한에 뿌리내리던 강한 생명력의 놀라움은 현대과학을 무색케 할 만큼 신비함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도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 같다. 또한 눈 덮인 들판에서 피워내는 끈기로 우리 민족의 근원을 말해주던 그 깊은 의미와 자연의 오묘함은 오랜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큰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다정한 목소리도 내 귓전을 맴돌고 있다.
우리 노짱님의 고향마을에서 봉하 찰 보리빵을 만나면서 내 어린 날의 시간이 되살아나고 있다. 보리가 주는 따뜻함과 유독 푸른빛으로 우리의 정서를 싱그러움으로 전해주던 그 자태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미끈한 보리울대를 꺽어 악기를 만들던 기억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서고 보리피리소리에 음악적 성향을 키워보던 기쁨도 떠오르기도 한다. 하늘 향해 뻗어 올리던 수염은 어찌 그리 무성해 보이던지. 진초록으로 넘실대던 넓은 들판은 마치 바다를 연상케 했고, 쉽게 바다를 구경할 수 없었던 산골아이에겐 바다에 대한 동경의 애틋함을 풀어주기도 했다.
5월의 종달새노래는 그야말로 꿈속 세상이었다. ‘비비베베 비비베베’ 맑은 소리로 들녘과 하늘의 길을 열어가던 종달새는 봄의 전령사였다. 조용하던 보리밭은 그들의 식구들로 화음을 이루었고 그 화음이 넓게 퍼질 때면 보리는 더욱 싱그러움으로 넘쳤다. 울음 또 한 드높은 하늘을 수놓아 그 만큼 봄이 깊어 감을 알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보리빵에서 이런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것은 비록 보릿고개시절의 애환이 있어서만이 아니다. 사실 당시의 지긋 지긋한 가난을 면하기 위해 달려온 우리에겐 이제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먹을 것만 해결된다면 제일 큰 행복이 찾아오리라 여겼고 자연히 보리밭에서 누렸던 청정한 공기쯤은 절대 혼탁해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는가. 잘 살기위한 산업화라는 과정을 그치면서 정말 중요한 자연을 잃어버렸다. 중금속이라는 오염물질을 만들어 보리가 지닌 그 튼튼한 체질에 의지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정말 단 한 점도 공해를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 우리는 살고 있다. 주체 할 수 없을 만큼 넘치던 푸르름과 맑은 공기는 옛말이 되었다. 산천 빛과 하늘도 그 옛날의 빛을 잃은 지 오래고 잿빛 속으로 묻혀가는 투명성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보람을 느끼며 살아 온지도 한참 되었다. 결국 그런 기쁨이 오염물질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찬바람 속으로 푸른 머리 찰랑이며 들판을 메우던 보리의 빛깔마저 퇴색시키는 세상을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을 다행히 이곳에서 찰 보리빵을 만나면서 그나마 근본마저 퇴색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게 되었다. 빵이 지닌 빛깔이며 그 맛이 그때의 미각을 많이 전해주고 있어서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혼탁한 물질들을 정화 또는 제거하는 역할까지 한다는 그 일편단심에 조금도 의심이 가지 않았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언 땅을 지켜내던 그 속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은 했다만 세상을 지켜내는 역할까지 하다니 찰 보리빵의 그 구수했던 옛 맛이 깊은 향수가 되어 다가선다.
찰 보리빵을 봉하마을의 향토먹을거리로 남게 된 것은 아마 이런 장점들이 있어서 일게다. 이 모든 작용들이 우리 노짱님과 함께했고 그 속에서 대통령의 꿈을 키우고 자연의 소중함도 일깨웠을 것이니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보리를 만나게 되면서 그 옛날 풋보리 찧어먹던 기억으로 오늘의 찰 보리빵을 만나려하였는지 모른다.
또 농민으로 새 출발을 위해 보리의 기억부터 찾는 일이 우선이라 여겼을 수도 있겠다. 혹여 대통령직에서 남아있을 권위를 떨치는 방법도 보리에서만이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생명의 근원을 말해주던 곡식이란 점을 감안해 반드시 전통 먹을거리로 남기고 싶었으리란 마음도 든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보리의 구수함을 느낄 수 있으니 고도로 발달한 서구화된 입맛도 청정한 보리의 맛은 변화시키지 못했는가보다. 제과점의 고급화된 제품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미각이 오롯이 살아있으니 이 또한 노짱님만이 남긴 봉하마을의 유산이 아니겠는가. 추위에서 성장하는 곡식이기에 해충들의 근접이 어렵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농약과 방부제라는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점이 보리빵을 멀리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하다.
또한 병충해가 생겨도 여기엔 무당벌레라는 녀석들이 있어 철저하게 적들을 막아내고 있다. 그들은 보리를 자기조상들이 낳은 알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무당벌레 녀석들의 엄마가 낳은 큰 알에서 자신들처럼 애벌레로 깨어나지 않은 알을 발견하였다. 정성껏 알을 품었지만 번데기가 되어야할 알에서는 얼음이 꽁꽁 어는 겨울인데도 뿌리와 털이 돋고 있었다. 걱정이 된 무당벌레는 겨울잠을 자고나면 설마 애벌레로 태어나겠지 추위를 걱정하며 잠을 잤다. 봄이 되자 맨 먼저 잠을 깬 엄마는 혹여 얼어 죽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살폈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지 알이 있던 자리에는 못 보던 풀이 자라고 있었다. 지금껏 품었던 알 껍질을 발견하고는 “아하 보리였구나!” 그제야 아빠 엄마 무당벌레는 한 숨을 놓으며 보리를 아끼기 시작했고 진딧물이 생기면 자기가 낳은 알의 적이라 여기며 얼른 잡아먹었다. 이리하여 보리는 우리에게 영원한 무공해의 곡식으로 자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노짱님은 이런 동화속의 이야기에서 만도 보리의 소중함을 잊지 못하였지 싶다. 잿빛들판을 파란 물감으로 물들이던 그 속에는 분명 무당벌레가 지키고 있으리란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퇴임 후 돌아가면 진정 보리의 먹을거리를 살려 오염된 터전을 정화하리라는 결심을 하였을 게다. 그 속에서 무당벌레의 삶도 느껴보고 조상들이 걸어온 보릿고개도 새겨보았지 싶다. 그래서 인스턴트와 되어가는 시대의 문제점을 고쳐보자는 발상이 크게 작용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노짱님의 성격이 순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봉하마을에 서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튓 마루에 올라서면 긴긴 겨울에도 푸른 들판이 다가서고 대지가 주는 푸근함은 혼탁한 성품을 만들기에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 자태는 촉촉한 기운으로 채워져 희망과 용기의 자양분을 만들었음을 우리 노짱님의 행적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오늘도 봉하들판에 서서 그 옛날 청 보리밭을 만끽하고 있다. 그곳에서 밭고랑 따라 달음박질하던 어린 날의 노짱님도 만나고 힘껏 뛰다 차오르는 숨 고르기를 하늘 향해 품어내던 그날의 통쾌함도 만난다. 이제 노짱님의 푸른 꿈은 이 들판에 남아 모든 이의 가슴에 따뜻한 찰 보리빵의 미각을 돋구어 주리라. 신토불이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새겨주면서 말이다.
개떡이라 불렀던 보리빵! 이제는 우리 모두의 진미이며 성찬이다.
봉하빵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