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출판기념회 행사가 있었다.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세 명의 대선 후보와 전현직 광역자치단체장 등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참석했고, 현장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운집했다. <생명의 정치>라는 책을 낸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이날 행사의 주인공이었다.
강 전 장관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 1층 강의실에서 진행된 '열린 인터뷰'에서 이 책의 메시지는 "권력정치를 생명 중심 정치로 바꿔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강조했다. 강 전 장관은 생명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치에 대해 접근하려는 시도를 했다면서, 자신이 보는 이번 대선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변화의 시대에 여성을 다시 묻는다'는 부제와 관련해, 최근 이슈가 된 '여성 대통령 박근혜' 논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야권의 두 주요 대선주자인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 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이날 인터뷰의 주요내용을 흐름에 따라 재정리했다. 이날 인터뷰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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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5일 서울 마포구 **** 강의실에서 열린 '열린 인터뷰'에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여성 대통령 박근혜, 안 되나?' 질문에 "안 된다!"프레시안 : 우리 정치가 '생명의 정치'가 되려면 새누리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도 하셨다. 여당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고 하는데, 안 되나?
강금실 : 안 되죠.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생명의 정치에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생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젠더'(gender. 생물학적 성과 대비되는 사회·문화적 성 : 편집자)다. 1995년 세계여성대회에서도 여성을 젠더로 규정했다. 여자로 태어난 여성이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 존재로서의 여성이다. 차별은 거기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자 남자를 놔두고 얘기하면 뭐가 차별이 있는지 알기 어렵지만, 사회경제체제로 들어왔을 때 차별이 있다.
박근혜 후보는 젠더로서의 여성의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 박 후보의 정체성은 '여성 정치인'이 아니라 '2세 정치인'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2세 정치인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철저히 아버지 모델, 어머니
이미지를 인용하고 있는 박 후보는 독립된 여성 정치인이 아니다. 과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과거.
더구나 박 후보가 모델로 삼는 그 아버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대개 성장 패러다임이라는 뜻이지만 저는 권력 패러다임으로서 이 말을 썼다. 성장 패러다임은 이미 폐기한 것이고 그러니 새누리당도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왔는데,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여성이 대통령 할 때가 됐다'는 말에 대해 박 후보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 이유 중 하나가 4.11 총선이다.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을 받은 223명 가운데 여성이 10.8%다. 새누리당은 231명 가운데 16명, 7%다. 박 후보가 여성 대표성을 갖고 있다면 이런 수치는 나올 수 없다.
지금 새누리당 정치인들 중에 여성 현역의원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나? (공천헌금 파동 사태의) 현영희 의원 말고는 없는 것 같다. (웃음) 조윤선 대변인도 공천 못 받았고, 이혜훈 최고위원도 국회의원 아니다. 수치가 말해준다.
박 후보에 대해 한 가지 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제가 법을 전공해서 예민한지 모르지만, 인혁당 사건을 민혁당이라고 했다든지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공부를 전혀 안 하는 지성이 부족한 지도자는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 정치가 복잡해지고 융합, 통합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 '두 개의 판결' 얘기를 보고 헌법 인식이 없는 게 아니냐, 불안하고 위험한 분이라는 생각이 있다.
청중 : 혹시 여성 정치인 가운데 눈에 띄는 분이 있나?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차기 여성 대통령 감이다 싶은?
강금실 : 두 가지가 있다.
한국이 2012년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발표 성 격차 순위에서 135개국 가운데 108등을 했다. 10년 민주당 정권도 크게 잘한 건 없지만 40년 새누리당 정권에서 쌓인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성장했는데도 아예 여성은 사람 취급 못 받는 삶을 살아왔다. 격차가 너무 심해 전체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하나는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문제다.
또 하나는 최초로 벽을 깨는 여성들, 소수자들이 아직도 나오고 있다. 여성 정치인이 15%도 안 될 정도지만, 시장 선거에도 대통령 선거에도 나오는 것이 의미는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그런 '최초'(라는 의미)를 가질 만한 여성의 대표성이 있냐는 건 분명히 해야 한다.
전체적인 기반에서 지역 구도도 바뀌고 동등하게 올라와야 한다고 보고, 그러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문제가 안 되는 사회가 올 거다. 지난 번 총선 속에서도 크게 성장할 여성 정치인들이 나오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얘기하는 건 좀…. 다 거론할 수도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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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전 법무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순수한 문재인, 강한 안철수에 바란다프레시안 : 야권에서 다시 후보 단일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상식적으로 단일화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왜 해야 하냐'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박근혜 후보 지지층에서는 못 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강금실 : 정치권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 모두가 겪는 어려움인데, '왜 사는지' 소신과 철학이 담긴 답을 낼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다. 개인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 청소년 문제이기도 하고, 세대·정치 문제기도 하다. 중학생만 돼도 아침부터 밤까지 과외하고 성적에 시달린다. 왜인가? 전체적으로 물량주의에 너무 압도당해 있다. 이명박 정부 책임도 있지만 시대흐름에서 놓치고 압도당한 부분이 있다.
정치 용어를 쓸 때 용어에 개념이 담겨야 한다. 오늘 오면서 그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가치가 굉장히 강조돼야 한다. 2007년 대선 때 '경제 살리기'라는 물량적 가치를 선택했는데 배반당한 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공존해야 하고 양극화를 해소해야 하고 함께 사는 삶과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정권교체를 왜 해야 하느냐, 권력 패러다임(으로서의), 박정희 패러다임을 극복해야만 다른 삶을 추구하는 정치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드린다. 그러면 정권교체로는 부족하다. 지금 선거는 수평적 권력교체가 아니다. 지역구도에 기반해 사실상 비민주적인 권력교체가 돼왔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정상적 보수정당으로 바뀌기 위해서라도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권력정치의 방법은 2가지가 가장 큰 수단인데 첫째가 지역주의 공고화다. 선거구제를 통해서 영남 67석 대 호남 30석으로 시작한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보혁논란을 벌이면서 동등한 경쟁을 하고 있다는 착시를 일으키는데, 기반과 여건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한 채 고착된 상태로 가고 있다. 민주당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여건도 있다. 둘째는 언론과 권력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수시기관,
정보기관 등이 집권자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권교체'라는 말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원탁회의 등 원로 분들이 '이기는 단일화'라는 말씀을 했는데 '뭔가 의미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신 것 같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 복지, 여성까지 갖다 쓰면서 정책 차이가 안 나게 됐는데 (예를 들어) '생명의 정권교체' 같은 말을 썼으면 좋겠다.
저는 단일화라는 말, 용어 자체에 좀 부정적이다. 지난 언론 인터뷰에서도 단일화란 말이 불편하다고 했다. '단일화'는 통합이 아니라 배제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최근 학자들이나 원로들이 가치연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처음부터 조심해서 새로운 가치를 담은 말을 만들어내고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혁신, 쇄신, 정권교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얼마나 절박한가에 대해서는 과연 정치권이 절박한가 하는 지점에서 좀 실망스럽다.
프레시안 : 야권에서는 대선 후보로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나왔다. 강 전 장관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치에 비춰, 두 후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강금실 : 그래도 저런 분들이 정치에 나온 건 우리의 미래가 밝다는 낙관을 하게 한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보면, 그가 이상으로 꼽은 정치가 철인정치다. 이는 제일 정치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불러다 맡기는 것인데, 권력의지가 있으면 위험하다는 말이다. 문 후보도 총선 때 티베트까지 '도망'가신 걸로 유명하다. (웃음) 안 후보도 1년 이상 '책임 있는 정치 할 수 있는가' 고민했다. 권력 욕심이 있었으면 '잘 됐네'하고 나왔을 텐데.
진심으로 국민을 위하고 헌법을 생각하는, 제가 말씀드린 위험한 권력의지가 아니라 헌법수호 의지와 공동선의 의지가 있는 분들이 야권 후보라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두 분이 이겨서 나라를 이끌어 나가면, 당장 많은 문제가 해결이야 되겠냐마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힘을 합쳐 나가면서 풀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두 후보의 공통점이 있는데, 기존 정치인이 아니면서 신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진정성과 능력이 있는 지성인이라는 점에서 좋은 후보인 것 같다.
프레시안 : 출판기념회 이후 일부 언론에서는 강 전 장관이 단일화의 배후다, 장외 세력이다, 심지어 안철수 편이다, 이런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하시는 역할이 있나?
강금실 :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제가 이번 대선에 얼마만큼이든 미력이나마 기여하는 게 저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한다. 지난 50년 정권 동안 새누리당이 40년 집권했고 야당이 10년 했다. 그 10년 동안 겨우 여성을 끌어올린 거다. 김대중 정권 때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여성부 신설하고, 참여정부 초기 법무장관이 저였다. 그 역할을 하고 혜택을 누린 사람으로서, 이번 대선은 제가 원하는 권력 패러다임 극복을 위해 할 만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단일화 역할은 제가 원하는 역할은 아니고, 무슨 장외세력이나 중재역할, 이런 것은 제가 비판하는 권력 패러다임이다. 사실을 가치관이나 의미로 접근하지 않고 권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굉장히 안 좋은 발상이다. '출판기념회에 문재인도 오고, 안철수도 오고. 강금실 막강하네. 그 영향력이 어디로?' 이런 거 아닌가.
대선에서는 국민이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으니 두 후보가 최고의 권력이다. 단일화는 집권을 위한 과정이고, 후보들이 고도의 정치협상을 해내는 전문성과 노련함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지 제3자가 중재역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제3자가 장외세력으로 끼어드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두 후보에게 책을 주시면서 덕담을 다르게 적어 주셨더라. 문 후보에게는 '꼭 승리하소서', 안 후보에게는 '아름다운 승리'라고 했는데 한편에서는 '아름답다'는 게 이상하다, 양보하라는 뜻 아니냐 그런 해석까지 나오기도 했다. (웃음)
강금실 : 그건 아니다. 각자 가까운 분을 통해 책을 보냈는데 같은 날이 아니라 문 후보에게 좀 뒤에 보냈다. 문 후보에게 보냈을 때가 아마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오를 때고 야권이 단일화해도 진다는
분석이 나와서, 승리가 간절해서 그랬나 보다. (웃음)
프레시안 : 트위터에 올라온 강 전 장관에 대한 질문 가운데, 강 전 장관이 보는 두 후보의 매력이 뭐냐는 내용이 많다. 강 전 장관의 눈을 통해 두 대선후보를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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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강금실 : 안철수 후보와는 밥 한 번 먹고, 초상집에서 인사 한 번 하고, 이번에 출판기념회에서 인사하고, 그게 다다. 문 후보님은 제가 같이 일했는데, 두 분 다 순수한 분이시다. 문 후보는 성품이 보는 그대로다. 문 후보가 민정수석, 제가 법무장관일 때 검사장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는데, 검찰 간부들이 '문학소년 같다'며 놀라더라.
안 후보는 1시간 이상 마주앉은 게 딱 한 번인데, 굉장히 강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강하고 많이 듣는 분이다. 제가 한 시간을 떠들었는데 딱 두 마디인가, 세 마디밖에 안했다. 그렇다고 안 듣느냐, 그게 아니라 유심히 듣는다. 안 후보에 대해 제가 높이 평가하는 건, 벤처 1세대로 그렇게 비즈니스를 한국사회에서 했다는 점에서 투명성에 대한 대단한 의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지금까지 보면 야권의 두 후보는 선거운동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지?
강금실 : 야권의 승리를 기대하는 국민이 더 많다고 본다. 두 후보 중에 어느 후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두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의 마음을 합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고, 누가 후보가 되느냐는 국민이 선택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과정이 왜 중요하냐면, 의미와 가치는 '스토리'(이야기) 속에 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없으면 삶이 메마르고 가치가 없어진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요즘 왜 여론조사가 매일매일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좀 위험할 수 있다. 거기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정 속에서 충분히 얘기하다 보면 저절로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얘기가 뭔지 결론이 나지 않나. 그게 다수결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반대 실컷 하고 결론이 선택돼야 평화로운 공동체가 된다.
전문: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