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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언니가 가르쳐 준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 폴포트정권 잔악성 /박정희정권과 관련된 내용이므로 올립니다.

댓글 4 추천 3 리트윗 0 조회 41 2012.11.06 09:44

크메르 루즈, 폴포트정권 잔악성과 킬링필드에...

어느 여행자의 블로그에서 펌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 이 슬픈 캄보디아 역사가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닌 불과 30여년전에 발생한 것이었다. 앙코르왓트 처럼 유수한 문화유적을 남긴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었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화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딜가나 가난으로 찌들고 힘든 모습이 묻어난다. 역사는 교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슬픈 역사를 되풀이지 않기 위해서는 킬링필드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프랑스의 식민지시대 기나긴 통치를 받고, 1953년에 독립을 하였지만 1960년대 베트남과 미국과의 국교단절로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게다가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중에 베트콩의 보급로를 열어주는 통에 미국의폭탄투하로 무고한 양민이 학살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미국은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미명아래 캄보디아에 무자비하게 폭탄을 투하하여 수십만(?)명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고 한다. 이것은 엄연한 킬링필드에 관한 진실이다.

이후에도 20 년이 넘도록 내전에 휩싸여 국민들이 죽음의 학살장으로 내몰렸다. 크메르루즈가 세운 좌파정권(공산정권)의폴포트(Pol Pot)에 의해 약 4년간(1975년~1979년)의 악명같은 역사를 겪었다. 미국의 폭탄투하가 킬링필드 1기라면 폴포트에 의한 집단학살은 킬링필드 2기라고 할 수 있다.폴포트가 집권한 시기에 공산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 지식인, 승려 등이 집단처형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급자족을 목표로 집단 식량증대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아,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죽거나 처형된 사람의 수가 2백만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 잔악성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때 죽은 유골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슬픈역사가 미국과 훈센총리에 의해 완전히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캄보디아를 폭격하여 무고한 양민이 대량으로 죽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양민 학살시킨 책임을 폴포트에 뒤집어 씌우고 있다. 이것이 유명한 " Killing Fields" 라는 영화가 탄생하게된 배경이다. 이 시기에 200 만명이 학살을 당했다고 하지만 이는 완전히 미군에 의해 조작된 사실이다. 그런데 현대의 세계사에서는 '킬링필드 = 크메르루즈 = Pol Pot = 200 만명 학살' 로 이어지는 역사가 되버렸다. 1969~73년에 아메리카가 폭격해서 죽인 60만~80만명에 이르는 양민들을 흔히 알고 있는 킬링필드 전설에서 분리시켜야만 온전한 역사가 된다.그런데 이런 역사는 캄보디아인들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전혀 상관없는 미국이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한 시나리오가 그 나라의 역사가 되고, 세계사가 된 것이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역사를 들으면서나라의 흥망은 지도자의 자질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명의 지도자의 광기와 사상(이즘)이 얼마나 비극적인 역사를 초래했는지 위령탑속에있는 유골이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한마디로 캄보디아 비극적인 역사와 가난은 베트남 전쟁시 미군의 폭격과폴포트 정권의 광기어린 대학살극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된다. 이런 역사를 알고나니 캄보디아가 왜 그리 가난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튼 이런 슬픈 역사를 머금고 있는 킬링필드 희생자들의 유골을 모아 놓고 명복을 비는 위령탑을 들렀다. 위령탑 맞은 편에는 현대의 절이 있고 스님들이 주변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 위로 흰 뭉개구름이 멋있게 걸쳐 있는데, 위령탑의 슬픈 자화상은 누구도 그 한을 풀어줄 수 없는 모습이였다. 크메르루즈라는 공산당에 의해서 저잘러진 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대학살극으로 이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나라 발전을 뒤돌려 놓은 아주 가슴 아픈 사건임에 틀림없다. 동족 상잔의 비극은 킬링필드에 엄연히 있었다.

위령탑 옆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서 명복을 빌 수 있게 되어 있다. 위령탑 옆에는 크메르루즈를 이끌었던 폴포트의 모습, 수용소의 모습, 죽은 자들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흑백사진으로 걸려 있다. 그 뒤로는 불교사원이 있었는데 ,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향을 피우고 참배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았다. 위령탑을 뒤로 하며 그 곳을 떠날 때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암울했던 그 시대에도 하늘은 똑같이 푸르렀으리라.그래서 아픈 역사가 더욱 아프고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사진복사가  안 됩니다.

사이트에서 직접 보시길~~~~

 

 

사진: (킬링필드 위령탑 앞에서. 아이들이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를 이해하고 있을까))

 

 

 

사진: ( 잔혹한 킬링필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사진들)

 

사진: (위령탑에 모셔진 유골, 이 유골이 2 백만이나 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

 

사진: (위령탑에 유골이 모셔져 있다. 이 곳은 프놈펜에 있는 위령탑을 축소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사진:(위령탑에서 만난 아이들. 순박하고 귀여운 얼굴이다)



http://blog.naver.com/nayahklee?Redirect=Log&logNo=140043664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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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든 sore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