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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20:54
SBS김태훈 기자입력2012.11.05 13:57수정2012.11.05 16:45
지난 주 수요일(10월 31일) 국방부 언론 브리핑룸이 군인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국방부 안 시설이지만 기자들의 공간이어서 군인들이라곤 공보장교 외엔 들락거리지 않는 곳인데도 그날은 5일장 같았습니다. 뭔일이 있었는고 하니, 바로 '장군 인사'가 발표된 것입니다. 관례적으로 준장, 소장, 중장 인사는 브리핑룸에서 처음 발표하는데 누가 됐는지 알아보려는 장교들이 브리핑룸으로 몰려든 겁니다.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도,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올렸을 때도, 철책이 뚫렸을 때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습니다. 군인들에겐 국가 안보 이슈보다 더 간절한 것은 진급 이슈인 것 같다는 생각에 몹시 씁쓸했습니다.
장군 인사 발표 순간…명예 따위는 없다
10월 31일 오전 10시쯤부터 수많은 장교들이 브리핑룸 안팎에 모여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 북한이 뭐 또 쐈구나!" 그런데 기자들은 잠잠했습니다. 북한이 조용하다는 뜻이지요. 이젠 "오늘이 무슨 날이지?", "나 혼자 물 먹고 있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주간 일정표를 훑어봤는데 10월 31일엔 시시껄렁한 일정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교들에게 물어봤더니 장군 진급자 발표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기자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준장, 소장, 중장 진급자 발표를 브리핑룸에서 처음한다는 것을....
상황을 예의주시하다 보니 어떤 장교가 푸른 종이가방을 들고 대변인실로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잠시 후 공보장교가 그 종이가방을 브리핑룸으로 가져왔습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그 가방 속에 장군 인사 보도자료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장교들은 서로 먼저 빼낼려고 늑대처럼 달려들었습니다. 기자들은 뒤로 밀려났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공보장교가 "신분 확인하고 기자들에게 먼저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자도 공보장교한테 얼굴 확인시키고 그 자료 받아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느낌과 소리가 이상했습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봤더니 수많은 장교들이 제가 읽고 있는 장군 명단을 같이 보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제 보도자료를 막 찍어댔습니다. 전화로 보고하고, 카톡으로 보도자료 사진 전송하고... 국방부 한복판이 전쟁터였습니다.
썰물처럼 사리지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찍어야겠다고 곧 생각해냈지만 한발 늦었습니다.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상부'에 보고하고,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낼 때까지 시간이 그리 많이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맡은 바 임무, 목적을 완수한 장교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빨랐습니다. 북한 도발에도 그런 속도로 대응한다면 북한은 도발할 엄두를 못낼 것입니다. 평상시에도 일처리를 그렇게 속전속결로 하면 오죽 좋을까요.
"군인은 생계를 위한 직업에 불과하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김정일 사망, 북한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이슈가 생겼을 때 브리핑룸은 해당 업무 관련 군인 몇명만 와서 국방부와 합참의 브리핑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장교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브리핑룸으로 '난입'한 사건은 이날이 처음이었습니다. 북한의 도발, 장군 인사 가운데 군인들이 더 관심 갖는 사안은 장군 인사라는 거지요. 기가 막힙니다.
"인사가 만사"라지만 군인은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을 지키는 명예로운 자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초임 장교 임관식에서부터 명예를 거듭 강조합니다. 하지만 장군 인사 때 군의 모습은 "나도 직장인일 뿐이다"였습니다. 명예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었습니다. 군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사 읽고 군 고위층들이 부하들 호통칠 테지요. 그럴 필요없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랬을테니까요. 또 국방장관께서는 "전교조도 종북이고 , 유신반대 투쟁도 종북"이라는 안보 교육을 사병들한테 하기에 앞서 장교들 직업관 교육 먼저 살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김태훈 기자on****@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