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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0 06:53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아들놈이 막 입학한 중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으니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해야 한다며.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에서 친구가 다른 녀석과 싸움이 붙었는데 친구를 도와서 같이 때려줬다고 했습니다. 주범은 아니다 뭐 이런 식의 변명이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아이는 학칙에 따라 징계 대상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교장실에 들어가니 교장선생님이 앉아계셨고 그 옆에 동네 변호사 출신의 무슨 위원장인가 하는 분, 학생지도주임, 담임 등이 배석해 있었습니다.
지도주임이 간단히 모임의 이유를 말하는데 새로운 정보가 등장했습니다. 마침 어제 아이들 입학 후 첫 조회가 있었답니다. 그 자리에서 교장선생님은 학교폭력의 근절을 입에 침을 튀겨가면서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마치 날 잡아잡수쇼 하는 식으로 쌈박질이 터져버린 거랍니다. 제가 교장이라도 꼭지가 돌 일이었지요. 그러니 학생 처벌에 앞서 부모되는 이들로부터 마지막 변론을 들어보겠다는 자리에 제가 불려나간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친구 ‘미음’이는 엄마도 아빠도 아닌 할머니가 나왔습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미음이 부부는 녀석 유치원 때 이혼하고, 아이는 지금 아빠를 제외한 식구들과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음이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아들이 녀석을 도와 다른 놈을 패줬겠지요. 미음이가 저희 집에 들락거리다 아이 엄마 손에 붙잡혀 같이 공부도 하면서 한 일 년을 저희 집에서 살다시피 했었습니다. 그러다 초등 고학년 때 이미 녀석은 독립된 일진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삶은 자신이 원해서 산 게 아니라 그의 모든 환경이 그를 그렇게 몰아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엄마의 가정철학에 맞서야 했고, 교실에서는 강제된 수업과 왕따에 저항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미음이와 같은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둘 사이에 우정의 끈이 이어졌던 것은 미음이의 한 가지 천재적 재능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에 따르면 미음이는 누구와의 토론에서도, 심지어 선생님의 꾸중 앞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자신의 처지와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모든 경우의 수에 대처하는 실력은 타고난 아이였습니다. 담임들도 아이를 꾸중하다 멘붕 상태에 빠지는 게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사과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음이의 집안 출입을 금지시킨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녀석을 잘 알고 꼰대 수장의 처지도 잘 아는 입장에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아는데 이번에 벌을 주시면 달게 받게 하겠다, 대신 학교 기록에는 남지 않는 수위로 혼내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 반면 주범인 미음이는 제가 아들만큼 잘 아는 초딩 친구로 가정사부터 조금은 어려운 처지의 아이이다. 그 아이를 지금부터 처벌로만 다스리시면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 그 아이에게만은 관심과 선처를 부탁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결국 두 녀석은 한 번만 더 그러면 어떤 처벌도 감수한다는 각서를 쓰고 아무 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상은 교육환경학적으로 퇴출대상 1호기업, ㅈㅅ일보의 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의 오늘 사내칼럼 <입시 흠집낸 '學暴 기재 거부'>의 말 같지 않은 글질을 보고 떠올린 과거의 기억이다. 안석배가 대뜸 말한다. ‘우려했던 사태가 왔다’고. 9일 현재 전국 2,282개 고교의 0.9%에 해당하는 22개 고교가 '학교 폭력 가해 사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기재'를 거부해서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치러진다’는 입시 원칙이 올해 이들 고교 때문에 깨지게 됐다”며 개탄을 한다. 그 한숨짓는 소리가 폭풍처럼 들려오는 것같다.
그에겐 이게 다 소위 진보교육감 6명 때문이란다. 시험의 공정성이 이들 6명의 삐뚤어진 교육 철학과 소신 때문에 훼손되었으니 이들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교과부의 "사소한 괴롭힘도 폭력이고, 폭력은 범죄라는 인식" 대 경기도와 전북도 교육감들의 “가해 학생의 인권(人權)과 낙인효과”를 비교할 때 어느 쪽 말이 옳으냐 묻는다. 내가 안석배, 이 자식의 말이 아주 비겁하다고 느낀 점은 바로 여기다. 바로 말한다면 야당 성향의 교육감들이 걱정하는 것은 ‘낙인효과’의 영속성이다. 질풍노도의 삶을 사는 청소년기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내 인생의 황혼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과연 누가 승복할 수 있을까.
결국 미음이는 중학교도 마치지 못 했다. 이게 당신 자식의 문제라면 어떨까? 페스탈로치라는 교육가를 한번쯤 들어봤을 안석배 씨, 이른바 먹물 당신은 정색을 하고 한탄의 글로 결론을 내린다.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통일성이 더 절실하다고 일선 교사들은 이야기한다. 학교 폭력 대책 하나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교육 시스템이 뭔가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러나 난 문제의 본질을 잘 알만한 ㄴ이 자기네 독자들에게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 하게 몰고가는 짓거리가 더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다고 확신한다. 학~ 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