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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2 08:50
‘중도파’만을 위한 신념은 없다 | ||||||||||||||||||||||||||||||
EBS ‘다큐프라임:킹메이커②’, 중도파는 중간에 있지 않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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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파’라는 어휘의 뜻은 흔히 ‘어느 한쪽 입장에도 치우치지 않은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 해석된다. 좌·우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책은 중도파의 마음을 끌 수 없다는 세간의 인식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중도층 무당파’를 호출하기에 여념이 없는 각 후보들은 좌클릭, 때로 우클릭을 하며 표심을 사로잡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세 가지 의문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 중도층이란 정말로 모든 사안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중도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권의 시도에 과연 효과가 있을까? 중도파를 효과적으로 영입하려면 어떤 전략을 사용해야 할까?
30일 밤 9시 50분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2부에서는 세 가지 실험을 통해 통념과 다른 답을 제시한다. ‘중립적 신념’이란 없으며, 중도파는 특정 쟁점에 대해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입장을 확연히 대변할 수 있게 색깔이 확실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같은 사안이라 할지라도 어떤 가치가 들어 있는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중의 반응은 달라지므로 어휘 선택에도 유의해야 한다. 중도화 전략, 당파성 강화될수록 효과 없다? 한창 각 정당의 당내 경선이 진행되던 지난 8월, 가천의대 뇌과학센터에서는 유력 대선 주자로 지목되던 후보들의 지지자 20명을 모아 실험을 진행했다. 두 명의 후보, 이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한 방송인의 발언 중 모순된 것들을 대비시키며 지지자들이 여기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살펴본 것이다.
실험 결과 지지자들은 자신이 반대하는 후보의 모순은 쉽게 파악했다.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때 감정을 처리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방송인의 모순된 발언에 대해서는 양측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즉, 당파성이 뚜렷한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은 자신이 믿는 바와 반대되는 정보는 외면하고 부합되는 정보만 받아들인다. 후보들이 자신이 경쟁하는 상대방의 지지자가 아닌 중도층을 공략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주어진 셈이다. ‘이중개념주의자’, 중도파의 새로운 이름 두 번째 실험에서는 실험 대상의 범위가 보수파, 진보파, 중도파 99명으로 넓어졌다. 제작진은 이들에게 환경보호와 개발, 인터넷 실명제, 국가보안법,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형제 존폐 등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첨예한 사회적 문제 20개를 제시하고 이에 찬성할수록 1점에 가깝게, 반대할수록 5점에 가깝게 선택할 것을 지시했다. 집단 간 답변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질문 2개를 제외한 나머지 18개 질문에서 보수파는 2.4점, 진보파는 4.0점, 중도파는 3.3점의 점수 분포를 나타냈다. 그러나 중립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이는 중도파 질문자 개개인을 파고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립’을 표시하는 3점을 택한 사람은 드물었고, 각각의 사안에 대해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레이코프는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중도파들을 ‘이중개념주의자’로 규정했다. 레이코프는 “두 개의 상반된 도덕 체계가 하나의 개인 안에 존재할 수 있다”며 “뇌 속에서 하나의 도덕 체계가 활성화될 때 하나는 억제되는 식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도덕 체계가 두 가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다수당이 되기 위해 중도파를 설득하고자 중립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것은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시도가 되어 설득 실패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대담한 정파성으로 중도파 설득하기 ‘이중개념주의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휘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같은 현상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KTX 일부 노선을 사기업에 매각한다”와 “고속철도에 경쟁 체제를 도입한다”는 말은 사실 같은 뜻이다. 전자의 질문에서 응답자들은 ‘사기업’과 ‘매각’이라는 어휘에 부정적 인상을 받고 “기차표 가격이 비싸질까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러나 후자의 질문에서는 ‘경쟁 체제 도입’이라는 어휘에 긍정적 인상을 받은 응답자들이 “세계화 시대에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찬성 의사를 표했다. 이것이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프레임’의 효과이다. ‘우리 편’에 유리한 언어를 만들기 위한 고민은 지지자를 효과적으로 포섭하기 위한 첫 단계이다. ‘우리 편’에 유리한 언어를 골라잡은 뒤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길 이야기 구조를 만들 차례이다. 예를 들어 선인이 악인을 물리치고 피해자를 구출하는 영웅주의 서사 구조는 친숙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사회보장제도가 게으름, 도둑질, 사기를 양산하는 부도덕한 제도라고 비판하기 위해 유권자들에게 ‘Welfare Queen’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카고 남부의 흑인 빈민가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악용하며 호의호식하는 가공의 여성 ‘Welfare Queen’은 세금을 낭비하는 전형적인 악인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낸 세금이 악용당하는 데 분노하는 미국의 시민들이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선 영웅이 바로 레이건과 공화당이라는 것이다. 레이건은 이 이야기를 통해 중도파가 가진 보수적 개념을 활성화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한국의 18대 대선에서도 유력 대선 주자들은 어김없이 중도층 유권자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중도파가 무색무취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혔다가는 2010년 공화당과의 타협을 통한 중도화 노선으로 거세게 비판받은 오바마 대통령처럼 지지율을 깎아먹는 결과를 자아낼 수 있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수는 없다. 단골손님을 만들고자 한다면 차라리 특색 있는 요리를 제공해 손님들을 유혹하는 것이 어떨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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