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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5:34
[시작 전]
‘봉하지기’로 불려온 명계남이 ‘명배우’로 돌아왔다. 연극 ‘아큐 – 어느 독재자의 고백’ 이후 3년 만에 대학로 연극으로 돌아온 것이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그는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마치 팬 미팅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구수한 입담을 보여주었다. TV, 영화, 연극에 대한 대중의 입장, 배우의 입장, 본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해 막힘없이 들려주었다.
특히 연극의 3요소를 얘기하며 무대, 배우, 관객 특히 관객과의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이 제일 좋다고 했다. 무대에 들어가기 전에 그는 당부의 말로 너무 딱딱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애기를 들으러 왔다고 생각하면 보다 몰입이 쉬울 거라고 했다. 무대에 들어선 그는 아까 관객들을 만났던 사람이 맞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마치 관객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공연 중]
그는 시립교향악단 소속되어 있는 공무원이자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이다. 그는 콘트라베이스라는 악기를 소개하며, 오케스트라에서 이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열성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가장 낮은 음부터 이 악기가 최대한 낼 수 있는 고음까지 들려주며, 4줄짜리 콘트라베이스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본래는 3줄부터 5줄까지 다양했으나, 독일에서 4줄짜리 악기로 쓰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점차 다른 줄의 콘트라베이스는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한 여자가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의 이름은 사라. 교향악단에 있는 메조소프라노. 그는 그녀의 곁에 다가서고 싶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늘 돈 있고 잘 나가는 사람들만 붙어있다. 그는 이런 사실들을 안타까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녀와 함께 할 것이라는 희망을 꿈꾸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콘트라베이스의 존재조차 모르는 그녀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시키려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따로 방법은 없는 듯하다. 바이올린이나 다른 악기들에 비해 존재가 부각되지 않는 뒤에서만 묵묵히 있는 모습은 웬지 모르게 서글프게 느껴졌다.
특히 연주가 끝날 때 까지 두 손의 굳은살이 찢어져 피가 흐를 때 까지 연주하지만 자신만을 위한 갈채 한 번 기다리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에게 이런 상황은 ‘희망고문’이다. 이런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비록 자신은 오케스트라라는 계급사회에서 파면을 당하더라도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것이었다. 연주회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당당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슬픔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