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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6 20:38
패배주의 극복의 절대성
우리 사회의 현 자화상을 지칭하여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위기의 시기라고 말한다. 성명서가 쏟아져 나오고 국민대중은 촛불을 들어 현 정권의 반민주, 반민중적 정책과 운영에 대해 질타의 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지난 촛불문화제를 통해 국민대중은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경험했다. 국민의 힘으로 정국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패배의식이 사회전반에 확산된다면 이는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들 속에 퍼져가는 패배주의를 극복할 방안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패배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굴복을 전제로 한다.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은 정당한 도전을 두려워하고, 자신과 동류집단을 믿지 못한다. 자학적인 패배주의의 결과는 후손들의 굴복을 예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대중은 자학적 운명론과 상관한 열등감 및 패배주의를 반드시 극복해야 하기에 패배주의 극복의 방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패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개인과 집단의 자책감과 열등감을 극복하고 상대 및 집단을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의식을 극복해야 한다. 다수 국민들은 불공평한 사회 구조에 익숙해져 있어, 세뇌 당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약점은 기득권층에 의해 악용당하고 기득권층은 언론이라는 거대 문명의 이기를 좌지우지하며 가치가 있는 삶의 정체성을 오도한다. 이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자책감과 열등감에 빠지는 다수 국민들은 역사와 공동체 의식을 비하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굴욕적인 삶의 보상 심리로, 객관적인 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여 외면하기도 한다. 물론 상대와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폄하는 현실의 고통과 상실감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방에 대한 공포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자기와 동류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고 굴욕적 삶을 지속시킨다.
패배주의 극복을 위한 두 번째 방안으로, 국민대중은 박탈감을 미화하고 왜곡하는 위선적인 삶과 개인 및 집단의 모순된 정당화를 극복해야 한다. 질서유지와 통제를 명분으로 한 기득권층이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한 국민대중에 대한 인격적 손상과 보복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심리전에 말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대중이 박탈감을 미화하고 객관적인 인간 삶의 존엄성을 스스로 왜곡하는 것은 기득권층의 심리전에 굴복하는 것이다. 인간은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자학적 운명론과 상관한 패배주의는 자신과 후손을 배반하는 굴욕을 선택하는 것이다.
패배주의 극복을 위한 세 번째 방안은 국민대중이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정당한 울분 및 행동의 필요성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공생공존을 무시하는 일부 기득권층을 국민대중은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인식하여, 그들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이 두려워 논쟁을 피하고 부당한 협상에 만족하면서 굴복한다. 울분은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는 분명한 신호 중 하나이며 무조건적인 인내는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국민의 대변자인 대표나 단체가 기득권층의 눈치를 살핀다면 이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이고 더 이상 국민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 작은 이익에 천착하여 정체성을 상실하는 행위는 종국에는 가족, 주변인 그리고 후손의 삶까지 고통에 처하게 한다.
패배주의 극복의 마지막 방안은 공동체 의식과 정체성의 내면화이다. 기득권층과 국민대중의 현재 위상은 운명론적으로 영속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대중은 기득권층에 굴복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를 보전하고 고귀한 삶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의식의 내면화가 있어야 한다. 소수 기득권층이 인류 역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비웃으며 부당한 월권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바탕에는 국민대중의 부당한 희생, 자학적 운명론과 상관한 패배주의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대중은 기득권층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당위성을 각인하면서 부당한 일부 기득권층을 극복할 수 있는 스스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국민대중의 공동체 의식이 역사를 발전시킨다.
동서고금 진리 중의 하나는 "교묘한 폭력을 휘두르는 부정한 일부 권력층과 기득권층의 마수가 '침묵하는 나', '방관하는 나'와 무관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는 것이다. 그들의 부도덕한 마수가 우리의 가정, 가까운 주변인 그리고 후손들까지 반드시 파멸시킨다는 인류사의 소중한 상식 및 진리를, 우리의 가슴 속에 각인해야만 한다.
Martin Niemoller의 고백은 자학적 운명론과 상관한 패배주의 극복의 절대성을 대변한다.
나치는 우선 골수 공산당원을 숙청했습니다.
나는 골수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다음엔 유대인들을 숙청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숙청했습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들을 숙청했습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했습니다.
그 다음엔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한 나에게 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살아서 존재하지를 않았습니다.
- Martin Niemoll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