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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7 11:23
민주주의가 가진 의미를 모르겠다. 자유, 평등, 권리, 의무 민주주의를 표현하고 정의한 말들을 보지만 솔직히 말해서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의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이 또한 안개처럼 뿌옇게 뿌려져 있어서 실체를 보기 어렵다. 하나의 현상이나 사상 또는 실체로서 설명 될 수 없는 복잡한 의미가 민주주의라는 어렴풋한 생각이 고작이다.
그럼 정치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또한 모르겠다. 위정자의 영역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일까? 이 또한 아닌 것 같고 나에겐 뚜렷한 기준이 없어서 애매한 것 천지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는지에 대한 판단은 나의 기준에 의해서 결정 되야 맞다. 그런데 나의 기준이 없을 경우 타인의 기준을 보며 이해된 범위의 판단을 가지게 되는데 타인의 기준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와 나 사이에는 다른 성향이 있어서다.
민주주의다. 다른 성향을 용인하지 못하는 세상이 민주주의일까?
이 지점에서 많은 혼돈을 겼었다. 생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 민주주의라는 어설픈 정의도 생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민주주의는 빛 좋은 개살구쯤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미완성의 이상론 그 것에 목마른 추종 같다는 생각도 한다. 구체적 실체는 없고 각자 한 조각 내 민 어떤 현상을 주장해 내는 것을 민주주의라 믿는 그런 모습들만 많이 보아 왔다. 그 각각의 모습들을 모아 이어 보아도 민주주의의 실체는 역시나 애매할 따름이다.
나는 숨이 막혀와 토악질을 하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해답을 바라지 않았고 작은 이해라도 가져 볼 요량으로 부딪혀 온 세월 속에서 이해는 커녕 오해만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 내가 겪은 민주주의다. 각자의 생각만큼 부대끼며 양보하지 않고 제 편이 아니면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이 민주주의였다.
나의 생각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다. 다만 민주주의의 실체를 만날 수 없어서 가지게 된 오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경험의 동물이다. 이 세상에서의 경험은 내게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구체적 경험의 시작인 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었는데 이 곳에서의 내 경험들은 비루하고 혐오스럽다.
대립의 다른 말을 찾자면 균형이 아닐까?
존중이 바탕되지 못한 대립은 이전투구고 존중이 바탕된 대립은 균형이란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여지를 갖기 어려운 경험이 무섭고 슬프다. 지금의 이 모습들이 균형이지 못한 것은 자명하고 그로 인해 실망을 겪은 것도 분명하다. 그 것이 무섭고 슬픈 것이다.
막연함 하나에 의존된 버팀 그 것이 지금의 나다. 이방인을 자처해 이 긴 시간을 버텨 온 결과 하나쯤을 가져야지 하는 오기로 다시 또 버티는 심정 그 것이 나다. 이들에게서 실망을 가지고 이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없다는 결론에 다가가고 있다.
노무현의 세상에 노무현은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로 받아 들여야 할까? 맹신이나 추종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 없지만 이름 석자 노무현을 말하면서 실체는 다른 이를 노무현이라 칭한다면 그 것은 껍데기 노무현에 지나지 않음을 이들은 모를까?
제 멋대로 제 각각이 민주주의라면 나는 민주주의를 버리고 싶다. 그러한 소리들은 강력한 지도력이 없을 때 틈이나 기회를 가져 보려는 자들의 충동질일 뿐이다. 너무 제 각각이어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의 야권인데 이들의 몽상은 민주주의에 빠져 있어서 제 각각이어도 효과적으로 이뤄 낼 수 있다는 망상을 실현하려한다.
김대중의 강력한 지도력 노무현식 감동의 지도력 그 뒤를 이을 이 세상의 지도자는 누구일까?
어설픈 민주주의가 물고 뜯는다. 지도력을 갖춘 이가 없다. 세상과 사람을 아울러 포용을 보여 줄 너른 가슴을 지닌 이들은 적극적이지 못하다. 흐름에 자신을 의지하는 모습 오래 기다려야 볼 수 있는 어쩌면 그들이 지금 스스로를 다듬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준비되지 않은 그래서 적극적일 수 없는 아니 마음을 동하지 않아 아직 미적거리며 상황을 보며 기회를 가지려는 그런 상태로만 여겨진다.
나는 나의 혼란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이 구심점 없이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고 그로 인해 중생들은 저마다 제 구심점을 들이 밀며 이 세상의 가치를 멋대로 규정한다. 이 또한 민주주의다. 이런 현상들로 인해 더디고 부대끼고 상처나고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의지를 놓지 않고 가다보면 결국 이상에 다가설 것이라는 나보다 더 막연한 행보가 민주주의다. 내가 느낀 것이 이 것이어서 이런 것들로 빠르게 세상을 바꿀 수 없어서 화가나고 실망이 커져만 가는데 이들은 말로는 급하고 행동은 정 반대를 향해 거침 없이 뛰어 가고 있다.
나의 민주주의는 지도와 순종이다. 들어 줌과 살피는 것이고 주장은 하되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반대는 하되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소양만큼 기록되어져 왔다. 지금 이 시대의 야권의 소양은 분열이 화두고 그 것에서 조금 발전한 것이 혁신 통합 연대이다. 아직 마찰을 제거하지 못한 미완의 모습으로 총선에 임하고 있고 야권의 고질적 마찰은 총선이 끝나고 대선이 끝나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천성의 문제다. 굶주리다 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아귀처럼 입에 퍼 붓는 꼴이다. 내 몸에 우리 몸에 적당한 만큼을 절제해 가며 먹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 것이 지금의 야권이다.
다시 배고파 질 시기가 올 줄 모르고 허겁지겁 먹기만 해 온 돼지처럼 민주주의에만 배고파하며 제 주장의 고기만 섭취하고 있다. 채식을 하는 자에게 고기를 먹으라는 강요가 지금 이 세상의 민주주의다.
이 긴 글을 읽어 줄 이가 없고 나의 이런 생각에 부족함과 잘못을 지적해 줄 수 없는 세상이 지금의 사람 사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 나를 보태려는 그 간의 오만된 생각들을 접는다. 나는 이방인에서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이들에게서 객으로 밀려나 도적이 되었다. 도적이 된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훔쳐 낼 것을 고민하고 훔쳐 갈 것이다.
내가 훔치고 싶은 가장 큰 보물은 오직 "노무현"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