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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6 16:09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벽들도 무너지고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 영화〈쇼생크 탈출〉 중에서)
‘피가로의 결혼’이 울려 퍼지는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서 내려 본 쇼생크 감옥의 전경. 짧은 휴식을 즐기던 죄수들은 정물화의 일부분인 듯 그림처럼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쇼생크 탈출〉의 명장면이다.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지금도 20세기 5대 걸작에 손꼽히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추억이 없는 따뜻한 곳, 멕시코의 해안가 ‘지후아타네오’를 꿈꾸던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축구장의 5배가 넘는 하수구 파이프를 기어 탈옥에 성공한 후 퍼붓는 빗방울을 향해 절규하는 장면에선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리는 희열과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에 관해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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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생크 탈출’ 포스터 |
이방인 앤디가 옥상에서 목숨을 걸고 ‘맥주 3병씩’을 얻어낼 때도, 주 의회에 6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편지를 보내 도서관 사서 구매 대금 ‘200달러’를 타낼 때도 레드는 앤디의 위험한 줄타기에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쇼생크에 길들여진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희망은 ‘위험한’ 것이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을 워터게이트 사건과 같은 초대형 권력비리로 확대해석했던 사람들은 지금쯤 넋을 놓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분노할 새도 없이 전 정권과 현 정권 중 누가 더 많이 했냐는 논쟁으로 번져갔다.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찰이 일상화된 나라에서 ‘불법’과 ‘합법’의 차이는 무의미했다. 국민들은 일상의 평화가 깨질 것을 전전긍긍했다. 대한민국의 앤디는 위험한 존재였다.
40년 만에 가석방된 레드는 슈퍼에서 물건을 포장하는 일을 하면서 소변을 보러 갈 때마다 주인의 허락을 받는다. 40년간 한 번도 허락 없이 오줌 눈 적 없는 레드에겐 ‘낯선 두려움 속에서 사는 건 교도소 쇠창살보다 끔찍한 일’이었다. 쇼생크 밖에서 살아갈 자신을 잃어버린 그가 자살하기 위해 의자 위에 올라섰을 때 그는 먼저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쇼생크 동료의 이름을 발견한다.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어리석은 이름을. 그리고 탈출한 앤디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멕시코로 떠나는 리무진에서의 모건 프리먼의 명연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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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욱 KBS 드라마 PD |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