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05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을 지킨 사람, 평생회원이자 두 계좌의 연회원, 세 계좌의 월회원인 사람. 새로 가입한 회원들에게는 버선발로 뛰어나가고 탈퇴회원에게는 용기와 격려, 기도를 주는 사람.
혹시 이런 사람을 아십니까? 저에게 두 번째 대화의 문을 열어주신 분, 바로 ‘가을여자’님입니다. 가을여자님과 나눈 따뜻한 편지 인터뷰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 얼굴을 보지 않고 글로만 소통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이름(닉) 자신의 얼굴이 되거나 정체성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가을여자’라는 닉은 아주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삶에도 계절이 있다고 하지요. 가입할 때 닉네임을 뭐로 지을까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얀 눈? 아냐, 그래도 아직은 한겨울 인생은 아닌 것 같으니 ‘가을여자’가 좋겠다 싶었지요. 남녀노소 모두가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서 좋습니다. 그때는 제 삶이 가을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겨울 같아요.
- 건강은 좀 어떠세요. 편찮으시다 들었는데…
제가 조금 특이한 과민성 체질이라 합병증이 큰 원인이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의 잘못된 생활방식으로 몸이 많이 힘들고 남들보다 노화가 빨리 찾아와서 친구하자네요.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몸 건강도 좋지만 마음 건강이 우선이다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사람사는 세상 홈피와 함께 사는 것도 다 남은 인생을 즐거운 마음으로 살자고 하는 거예요.
- 가을여자님의 많은 댓글들이 노무현재단 회원들에게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청량제라, 이 말씀에 반대하시는 회원님들 많으실 것 같네요.(^^) 그보다 회원님들께 부탁을 드리고 싶어요. 첫째, 내 걱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은 하지 마세요. 둘째, 너무 모범생으로 살려고 힘겨워 하지 마세요. 셋째, 무조건 복종은 금물입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이지요. 넷째, 운동은 좋지만 내 몸에 무리한 운동은 병이 됩니다. 이건 저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부부와 네 자녀들의 가족까지 모두 후원 중인 ‘후원 대가족’- 올해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면서요?
우리 부부는 동갑내기 소꿉친구에요. 40년 세월동안 같이하다 보니까 이렇게 손잡고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었어요. 앞으로 남은 숙제가 있다면 흔히들 말하는 (1남 3녀) 자식농사에 게으름 피우지 않는 거죠. 젊어서는 아기 많이 낳았다고 ‘야만인’ 소리도 들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이라 가족계획이 한창이었지요. 하지만 월급쟁이 남편이 고생을 좀 했어도 아이들 많이 낳은 건 참 잘한 일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젠 4남매 모두 가정을 이뤄서 잘 살고 있고 손주손녀도 8명이 되었어요.
돈이 많다고 잘 사는 건 아니죠. 전 마음이 부자라 행복하답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이거 꼭 하나는 하고 싶어요. 우리 아이들, 온 가족이 하나같이 후원회원이랍니다. 다섯 가족이 노짱 사랑을 박석에 담았어요. 그런데 죄송하게도 우리 부부는 추도식에 맞춰 봉하에 꼭 한번은 가지만 아직 온가족이 함께하지는 못했어요. 언젠가 저희 대가족이 함께 대통령님 묘소에 헌화할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 저도 한때는 식구만으로 축구팀을 만들자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철학 없는 코치의 축구팀보다는 스포츠맨십이 투철한 혼합복식조를 겨냥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짙어요. 이제 이야기를 바꿔볼까요? 가을여자님께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처음 인식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안나지만 저도 모든 노빠들처럼 5공 청문회가 시작이 아닌가 싶어요. 전두환, 노태우, 정주영 앞에서 누구보다 당당했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명패를 집어던지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는 순간 가슴에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아하, 저런 분이 계셔서 참 다행이구나! 권력과 금배지에 연연하셨다면 절대로 그러실 수 없지요.
국회의원 선거 때는 지역이 달라서 마음뿐이었지만 대선 때는 나름대로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답니다. 당선이 확정되던 그 순간 너무도 행복했어요. 그때부터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우리 대통령님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앞으로도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변함없을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 대통령님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세요?
가장 가슴 아픈 질문이네요. 단 한 번만이라도 뵈었더라면, 봉하에 계실 때라도 꼭 뵙고 싶었는데…. 날마다 너무 많은 방문인파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남편하고 둘이서 “우리는 조금 후에 사람들이 조금 뜸해지면 그때 갑시다” 약속하고 미루었던 게 천추의 한입니다.
대신 봉하쌀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있어요. 친환경농사 첫해 가을이죠. 수확량은 부족한데 주문이 넘치다보니 추첨을 하게 되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제가 당첨이 됐답니다. 내 살면서 이렇게 큰 당첨행운은 ‘대통령님 봉하쌀’이 처음입니다. 감동에 감동이었지요. 제 생일이 겨울인데요, 남편이 “대통령님 선물이니까 당신 생일날 밥해 먹자” 하더라고요. 너무 아까워서 다 먹지 못하고 예쁜 유리병에 남겨두고 메모까지 해서 지금까지 변질 없이 잘 보관 중입니다. 우리 곁에 계실 때 인연은 그 쌀이 전부에요.
▲ 대통령 서거 뒤 슬픔과 추모의 마음으로 집에 작은 단을 차려놓기도 했다. 그해 가을 이뤄진 노무현재단의 출범은 ‘가을여자’님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강도조차 무릎 꿇게 하는 ‘바보’의 투명함
- 가을여자님은 2009년 12월부터 지금까지 2년 6개월 넘게 ‘후원이야기’ 방에서 후원회원님들의 마중과 전송을 담당하고 계십니다. 신규 가입자들도 꾸준히 이어지지만 이런저런 여건,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탈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작별을 위로해 주시는 게 힘들지 않으세요? 어떤 보람을 느끼시는지요?
대통령님 떠나셨을 때 약간 우울증 같은 게 있었습니다. 서거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며칠 동안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어요. 그런 나를 보면서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 작정하고 5월 26일 멀고 먼 길이라 느꼈던 봉하로 갔습니다. 남편이 앞장을 섰죠. 국화꽃 50송이를 가슴에 안고 영정 앞에 섰는데 가슴이 너무나 공허했습니다. 그 해에는 사는 게 그냥 서러움이었어요.
그해 가을에 재단이 설립되었죠. 재단은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대통령님 생각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해보자고 스스로 약속했지요. 후원은 당연한 거였고, 컴맹이라서 다른 활동은 못하고 댓글을 열심히 달았어요.
- 후원이란 게 우리 회원들에게는 생활과 밀접한 부분이어서 사연도 많죠?
후원 이야기 코너에서 회원들의 후원 중지 요청 글들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어요. 내가 여기에서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경제 사정이 어려워 중단하는 분도 계시고, 재단에 섭섭해서 혹은 다른 게시판을 보고 속상해서 후원이야기 방에 오는 회원들도 있어요. 모두 이해합니다. 후원 중지 글 올리시는 분이 있어도 지금까지 열심히 후원하셨고 또 우리 대통령님 사랑하는 분들이라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형편이 나아져 다시 후원을 시작하는 회원님들은 또 다른 감동이죠. 저도 모르게 후원방 지킴이가 된 지금은 그게 행복이고 보람입니다. 제 노후를 재단과 함께 진정 깨어 있는 시민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 회원으로서 노무현재단 평가 좀 해주세요.
제가 어찌 감히 재단에 점수를 매겨요.(^^;) 꼭 그래야 한다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를 드립니다. 이유는요, 사람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한다면 조건이나 이유 없이, 눈에는 콩깍지가 씌워지고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가득 차잖아요. 다른 뭐가 보이겠어요. 우리 대통령님을 위한 재단인데. 저는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사랑입니다. 훌륭하신 여러분이 계시기에 마음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 마지막으로 우리 사람사는 세상의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좀 부탁합니다.
제가 서면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옆에 남편이 좋은 글이 있다면서 조금 전해드리자고 하네요. 한번 읽어보세요.
불의가 판치는 세상도 진실 앞에서는 떨게 되어있습니다. 바보는 희생의 천재요, 관용의 천재요, 이해심의 천재입니다. 우리 사람사는 세상은 그 ‘바보’ 노무현의 철학과 사상이 존재하기에 더욱 빛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3ㅅ’님은 대통령님 추모행사, 1인시위, 노무현 시민학교, 문화탐방, 산행 등 재단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는 물론 다양한 소재와 깊이 있는 주제의 글쓰기로 늘 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후원회원입니다. 닉네임은 ‘사람사는 세상’에 들어있는 3개의 ‘ㅅ’(시옷)자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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