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재단>은 10월부터 문화탐방, 산행, 봉하캠프 등 다양한 회원참여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10월 27일에는 재단 설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들을 직접 재단 사무실로 초청해 회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마당’을 열었습니다.
너른 강당이나 행사장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굳이 재단으로 장소를 정한 것은 언제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후원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정성스런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빈자(貧者)의 미학, 승효상의 노무현
대화마당의 첫 번째 초청명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재단 사무실 여건상 더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해 아쉬웠던 이날, 40여 명의 회원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빈자(貧者)의 미학’으로도 유명한 승효상 교수는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빈 공과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타임>지에서 뽑은 “한국의 가장 경탄할 만한 훌륭한 건축가”인 김수근 선생 문하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2002년 미국건축가협회 명예 펠로우, 같은 해 건축가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주관 ‘올해의 작가’,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등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한국 건축계 거장 가운데 한사람입니다.
승효상 교수가 설계한 건축물로는 <수졸당>(1993년), <수백당>(1998년), <웰콤시티>(2000년),<대전대학교 혜화문화관>(2003년) 등이 있습니다. 책으로는 <건축, 사유의 기호>(2004년), <승효상 작품집>(2001년),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1999년), <빈자의 미학>(1997년), <노무현의 무덤 :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2010) 등을 썼습니다.
“강의를 곧잘 하는 편인데 오늘처럼 부담스러운 적이 없습니다. 제가 죄를 지어서 그러는가 봅니다. 감히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한 죄. 오늘 대화마당은 단순하게 묘역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공감하고 대통령님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기억과 풍경’(부제 : 불멸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날 강연은 승효상 교수가 독일과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보았던 나라별 묘역문화와 건축물의 의미를 살피고, 이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과 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무덤, 만남과 성찰의 공간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설계를 제안 받았을 때 승효상 교수는 ‘개인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나의 관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관계에 대한 고민’은 고인을 보내드리는 추모의 절차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만남인 ‘기억’을 되새기려는 노력입니다. 승효상 교수는 인공 구조물이 어떤 기억을 담고 있는지, 그 기억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성찰이 건축의 시작이라고 역설했습니다.
200여 장이 넘는 건축물 슬라이드에는 묘역의 기능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으로서도 뛰어난 건축물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독일의 조각가 요한 게르쯔가 설계한 기념탑은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에 이어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나찌의 홀로코스트를 상징하는 이 탑은 얼핏 보면 모양새 없이 그저 투박하기만 한 직육면체의 기둥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기념탑이 매년 2m씩 땅 밑으로 가라앉아 결국 6년 뒤인 1992년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학살과 만행에 대한 아픈 기억이 탑과 함께 땅 밑으로 사라지고 비로소 희생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관습을 거부하는 ‘자발적 추방인’
승효상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을 일컬어 ‘자발적 추방인’이라고 정의합니다. 기존의 관습이나 권력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모험 앞에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성을 갖추며, 변화에 적극적인 ‘진정한 지성인’의 모범사례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예수의 생이 그랬던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늘 자신을 경계 밖으로 내몰아 스스로를 꾸짖고 반성하며, 이렇게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늘 새로워지고, 타인을 소중한 주체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음 이후조차도 국립묘지라는 장엄한 형식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작은 비석 하나’로 낮은 곳에서 국민과 함께 하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될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집값이 떨어진다고 마치 죽은 자를 쫓아내듯 산골이나 인적이 드문 외진 곳에 묘지를 만듭니다. 하지만 외국의 여러 나라들은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여 마을 안이나 주변에 공동묘지를 운영하는 곳이 많습니다. 죽음을 ‘잊어버려야 할 고통’으로 보지 않고 ‘기억해야 할 의미’로 보기 때문이죠. 묘역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 대화하는 장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또한 거기에 가장 큰 초점을 맞췄습니다.”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승효상 교수는 지정학, 풍수, 건축철학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금의 묘역 자리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가장 알맞은 곳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땅과 사람의 ‘운명적 만남’입니다. 고요한 땅은 저마다 자기의 색과 무늬를 갖기 마련인데, 건축이란 여기에 맞게 집을 짓는 것에서 출발하며, 건축이라는 질문의 모든 답은 땅에 있다는 것이 승효상 교수의 건축철학의 핵심입니다.
이렇듯 운명적 만남 위에 지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은 고인에 대한 슬픔이나 회한이 아니라 추모하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그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하는 공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을 덮고 있는 너럭바위나,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박석, 곡장, 수로, 헌화대, 수반 등 묘역에 담겨 있는 모든 건축물들은 저마다 노무현 대통령과 우리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하는 매개체인 셈입니다.
대화마당의 마무리는 참석한 회원들의 다양한 질문으로 채워졌습니다. 묘역 관리와 안내를 맡고 있는 손성학 봉하재단 운영홍보팀장은 “묘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오늘 대화마당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많이 공부해서 묘역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대화마당 소감을 밝혔습니다.
“매달 새로운 만남이 기다립니다”
이날 대화마당에서는 회원분들에게 재단의 사업현황을 알려드리는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정윤재 사무처장은 “기념관-센터 건립사업, 사료편찬사업, 묘역 생태공원사업, 연구 교육사업 등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사업을 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며 “3만 명의 후원회원, 18만 명의 인터넷회원들의 응원이 하나둘 힘을 모을 때 우리가 생각하고 염원하는 기념사업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화마당이 끝난 뒤 승효상 교수를 비롯해 40명의 참석자, 재단 직원들이 함께 하는 뒤풀이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엄숙하면서 진지했던 강연 때와는 달리 화기애애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였고, 덕분에 대화마당에서 못다 한 풍성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재단은 앞으로도 회원 여러분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분들을 초청해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을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계속해서 마련해나갈 것입니다.
▶ [봉하사진관] “대통령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