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6
꽁꽁 언 동네 시냇가나 저수지에서 썰매 타보셨습니까? 정신없이 얼음을 지치다 보면 밥 때를 놓치기 일쑤고, 집 근처에 와서야 축축하게 젖은 손발이 시려오는 걸 깨닫고 신발을 벗는 둥 마는 둥 후다닥 방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아랫목 군용담요 속으로 손발을 밀어 넣으면 두툼하게 만져지는, 늦게 오시는 아버지 드시라고 모셔둔 고봉밥 한 그릇. 엄마 몰래 한 숟가락이라도 먹고 싶어서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몇 번을 망설였는지….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던 그 따뜻한 온기를 기억하십니까?
지난 주말. 마흔 여섯 명의 ‘사람사는 세상’ 회원들과 함께 1박2일을 보내고 밤늦게 서울톨게이트를 막 지나 집으로 오는 버스 안이었습니다. 소복소복 내리는 함박눈 때문인지, 서둘러 봉하를 떠나오느라 점심을 걸러서 그랬는지, 아니면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서운한 이별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어린 시절 아랫목을 지켰던 그 묵직한 밥그릇이 생각났더랍니다. 어쩌면 몇 년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에, 그것도 봉하에서 얼음썰매를 타고 놀았던 행복한 흥분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썰매는 달리고 싶다’
봉화산과 화포천변에서 불어오는 바람만 아니었다면 이른 봄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화창했던 지난 1월 23일 일요일. 유난히 눈이 잦았고 혹한이 길었던 올 겨울도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이 지나니 슬슬 꼬리를 내리는 듯했던 날입니다.
봉하캠프 두 번째 날 아침, 봉하 들녘은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길고 긴 자전거의 행렬이 장관을 이뤘습니다. 도심에서나 볼 법한 이 행렬은 네 번째 봉하캠프에 참가한 재단 회원들이 여남은 명씩 짝을 이뤄 친환경쌀 방앗간을 출발해 봉하 들녘과 화포천에 이르는 여덟 개의 코스를 지나면서 만들어낸 풍경입니다. 각 코스마다 거기에 얽힌 대통령님 일화를 담은 ‘사진 이정표’를 세웠는데, 캠프 참가자들 여럿이 “마치 대통령님과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이라며 벅찬 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자전거 코스 한 곳에는 아이들을 위해 봉하마을의 ‘1등 목수’들이 만든 특별한 얼음썰매가 준비되었습니다. 논길 사이로 길게 뻗은 수로가 겨우내 탄탄하게 얼어붙어 자연스레 훌륭한 썰맷길이 된 덕분입니다.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시골들녘 썰매타기에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몇 배는 더 즐거워했더랍니다.
“대통령님, 어떤 날은 하루에 11번이나 손님을 맞으셨다니까요”
이번 봉하캠프는 이밖에도 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특별한 만남이 여럿 있었습니다. 캠프 첫째 날이었던 22일 토요일, 그 시작을 알리는 ‘대통령의 길 걷기’에는 문재인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처음으로 합류해 100여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통령님 퇴임과 동시에 여러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봉하에 내려왔습니다. 당시는 평일에 3천여 명, 토요일 5천~1만여 명, 일요일에는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봉하를 찾았습니다. 저 너머 공단까지 길이 막히고 사람들끼리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으니까요. 대통령께서는 외부 일정이 있을 때를 빼고는 직접 나와서 손님을 맞으셨는데, 어떤 날은 11번이나 나오신 적도 있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만남 시간을 따로 정했다니까요. 주위에서 만류하면 ‘멀리서 큰맘 먹고 온 분들인데 어떻게 손만 흔들고 들어갑니까’ 하시면서 거를 생각을 안 하시더라고요. 어찌나 열심히 하셨는지 나중에는 얼굴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방문객들이 좋은 사진 찍을 수 있게 늘 해를 보고 서계셨거든요.”
이호철 전 민정수석에게 듣는 대통령님 비하인드 스토리
이 수석은 저녁시간에 열린 ‘대화마당’에도 참석,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부림 사건’부터 국회의원 당선, 시위 현장에 함께 섰던 날들, 노 대통령이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에 빠지게 된 에피소드, 대통령과 참모진의 ‘맞담배 이야기’, 청와대 시절과 봉하마을에 귀향한 뒤 자연인으로서 보낸 날들, 그리고 서거까지 30여 년의 웃음과 눈물의 시간을 솔직담백하게 풀어주었습니다. 대화마당 도중에 상영된 영상물 ‘노무현 대통령의 웃음’과 ‘대통령께 직접 듣는 봉하마을 소개’ 영상도 네 번째 봉하캠프 참가자들만 누릴 수 있었던 특별한 선물들이었습니다.
첫날 프로그램은 밤 10시를 기해 공식적으로는 마무리되었지만, 매번 그랬듯 캠프 참여회원들과 노무현 재단 직원들이 함께 한 뒤풀이가 새벽 깊은 시각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다?!
봉하캠프는 1박2일, 정확히는 토요일 오후 2시부터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딱 24시간의 만남으로 채워집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웃들이 몸과 마음을 비비며 만 하루 만에 각별한 ‘봉하가족’을 이루는 모습은 참 정겹고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캠프를 다녀간 많은 사람들 말마따나 봉하에서의 1박2일은 무척이나 빨리 지나가지만 매번 수많은 사연들이 만들어집니다. 군산에서 오신 닉네임 ‘한마음두마음’님은 이번이 첫 봉하행이었는데, 때마침 봉하로 오는 텅빈 고속버스에서 유일한 동승객이었던 ‘enpa47’님이 ‘대통령의 길’ 신청자라는 사실을 알고, 몸이 아파 함께 하지 못한 아내 대신 캠프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 참가자들은 친구나 가족들과 동반하는데, ‘봉하빌라’ 205호에 함께 묵게 된 10명 가운데 9살 준민이네 가족을 뺀 여덟 명이 저마다 홀로 온 터라, 캠프 첫날에는 새침한 분위기로 일관하더니 하루사이 친자매들처럼 분위기를 돌변시켜 주위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캠프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된 마지막 선물은 ‘봉하캠프 24시’ 동영상입니다. 1박2일의 모든 일정과 회원들의 표정을 담은 사진에 음악을 얹혀 만든 것인데, 봉하 도착부터 불과 한두 시간 전에 있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펼쳐져 회원들은 물론 함께 한 재단 직원들에게도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출발 전날 아이들이 ‘왜 가야 하나요’ 하고 묻더군요. ‘너희들이 살고 있는 세상, 살아갈 세상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대통령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관심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노무현재단의 발전방향이나 미래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해보고 싶네요.”
“오랜만에 아빠노릇, 남편노릇 잘 한 것 같아서 보람이 큽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사람사는 세상의 가치를 알게 해준 것 같아 기쁘고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쁨, 용기를 얻어 권양숙 여사의 마음이 빨리 아물길 바랍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좀더 많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회원 선물은 가족단위로 봉투 하나에 다 몰아서 봉투도 아끼고 환경도 보호했으면 좋겠습니다.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 가서 기쁘고 고생하신 재단 식구들에게 고맙습니다.”
“마음은 항상 봉하에 있지만 길이 멀다보니 이제야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가 해외 영어연수나 사교육을 받는 것보다 세상에 대해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겨울방학동안 아이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봉하마을만 기억하게 하려고요. 엄마로서 물려줄 것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참 다행입니다.”
한자리에 빙 둘러앉아 저마다 집으로 가져갈 감동과 생각들을 나누는 동안 회원 여러분들이 말과 표정으로 들러준 행복과 아쉬움은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을 못하겠다”며 짧지만 참 인상적인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해주신 ‘대장부가 되고싶은 사람’님의 눈물과 의미 깊은 이야기들도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
▶ [봉하사진관] 사진으로 보는 1월의 봉하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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