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9
봉하에 눈이 왔습니다. 아쉽게도 대통령님 생가 초가지붕에 살짝 얹힌 정도입니다. 새벽녘에 잠시 온 모양입니다. 봉하의 겨울은 도심처럼 너무 날카롭지 않고 늘 적당한 온기를 남겨두어서 참 좋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적당한 온기’도 곧 그리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묘역 수반에 얼음이 녹으면서 다시 촉촉한 물기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올 겨울도 곧 봄에게 자리를 내주겠지요.
오늘은 평일인데도 찾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묘역 입구에 삼삼오오 모인 어른들이 정성스럽게 방명록을 쓰고 있습니다. 옆에서 힐끗 보니 50대 중반 쯤 돼 보이는 아저씨가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꾹꾹 눌러 씁니다. 눈물을 보이기에는 너무나 화창한 아침, 함께 온 부녀회 아주머니들이 옆에서 왁자지껄한데 아저씨의 눈가가 그렁그렁합니다. 경남 사천에서 왔다는 하치주님입니다. 양산 통도사에 가는 길에 봉하를 찾았다고 합니다.
“흔히 추모의 자리에는 흰 국화를 쓰기 마련인데, 여긴 유독 노란 국화가 많네요. 보기 좋습니다. 부녀회 회원들 25명이서 버스 빌려 타고 왔습니다. 대통령님 뵈려고요. 서민들을 위해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꿈을 다 못 이루고 가신 게 참 아쉽습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첫 번째 봉하 방문의 감회를 이야기하던 그가 어느새 묘역 해설가의 걸음을 쫓아 너럭바위 앞에 서 있습니다. 한마디라도 놓칠 새라 까치발로 선 그의 모습이 참 고맙습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
묘역을 가로지르는 수로 왼편에 아주머니 한 분이 망부석처럼 꼼짝 않고 서 있습니다. 아마 이희호 여사의 박석 글귀를 보는 듯합니다. 아주머니 표정은 글귀에 새겨진 말마따나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 그대로였습니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눈물자국이 선명합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었나싶어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거꾸로 “특별한 사연 하나 만들지 못하고 오늘에야 대통령님을 뵌 것이 서럽고 죄송해서”랍니다.
경주 성금동에서 오신 이 아주머니는 당신 보려고 월차까지 냈다는군요. 다음에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웃음으로 다시 뵙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정토원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니 김대중․노무현 두 분 대통령의 위패가 모셔진 수광전(壽光殿)에 들 때쯤이면 눈물깨나 쏟을 것 같습니다.
저만치 앞질러간 아주머니를 따라 천천히 봉화산을 오릅니다. 마애불 근처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산을 내려오던 백발의 어르신 하나가 동굴을 가리키며 “여기가 노무현 대통령이 어릴 때 놀곤 했었다는 거긴가요?” 하고 묻습니다. 기껏해야 저는 그분 막내아들 나이인데, 점잖은 말투로 꼬박꼬박 존대를 하시는 것이 마치 생전의 당신 같습니다. 경남 산청에서 오신 김태희 할아버지는 40여 명의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다녀가시던 참이랍니다.
둘이 서먹한 두어 걸음으로 떨어져 산을 내려와 다시 묘역에 들어섭니다. 귀동냥으로 들은 봉하 이야기를 어르신께 설명하는데, 제 이야기보다 박석에 새겨진 추모글귀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 나이 이제 칠순이 넘었어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오게 될지 모릅니다. 이참에 마을과 봉화산을 두루두루 다녀볼 참이에요. 노무현 대통령의 활기차고 열정적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대통령 일을 잘 마치고 고향에서도 잘 좀 살아보려는데, 뭐가 그리 못마땅하다고 그 지경을 만들어놨답니까…”
“우리 같은 서민들 사랑하고 도와준 분 아닙니까”
재중동포 두 분을 만났습니다. 길림성에 사는 유충길씨와 김인국씨입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공장에 다녔다는 유충길씨는 석 달 전부터 김인국씨와 함께 한림면에 있는 기계 공장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부모님 고향이 목포라네요.
예전에 대통령님이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혀 쫓겨날 형편에 있던 재중동포들을 만나신 적이 있지요? 그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하더군요. 우리말이 서툴러 중간 중간 알아듣지 못한 말도 좀 있었지만 여러 번 반복했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우리 같은 서민들을 사랑하고 많이 도와준 분”이었습니다.
“취업비자를 받아 열심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요즘 같은 때라면 서민들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문제만 생기면 미국에 너무 의지하려들고, 북한하고 대치하느라 드는 돈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돈을 북한 동포나 우리 서민들에게 쓰면 좋을 텐데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자고 타향 아닌 타향에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게 뻔합니다. 우리는 초면에 앉은 자리에서 30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떠나는 순간부터 그리움으로 남는…
그러고 보니 대통령님. 참 이상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그리 용감하고, 헌신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많은 건가요? 똑 부러지게 논리적이고 강단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당신 이야기 앞에서는 유달리 감정적이고 감성적이 되는 이유는 뭘까요? 명계남씨 있잖습니까. 그분도 딱 그렇습니다.
마침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의 부산 공연을 마친 명계남씨와 공연 스태프가 봉하에 왔습니다. 홀로 묘소를 찾은 그가 당신 묘소 주위를 빙빙 돌며 한참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더군요. 그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무슨 대답을 해주셨습니까?
오후가 되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까지 온가족을 거느리고 온 광주의 박장수씨가 당신 이야기를 하며 난생 처음 본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그의 어머니가 안타깝게 아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네요. 입시를 끝내고 신나는 놀 거리 볼거리 대신 선생님과 함께 당신을 보러 온 부산의 이태호․김태현 두 친구도 있습니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온 곳으로 돌아갑니다. 동시에 그 빈칸은 당신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떠나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곳, 내 마음의 고향 봉하입니다.
![]() |
![]() |
![]() |
---|---|---|
공지 |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하여 (656) | 2009.06.12 |
공지 | [전문] 대통령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1717) | 2009.05.27 |
516 | 노무현의 또 다른 사랑 ‘겨울철새’ 이야기 (30) | 2011.02.16 |
515 | [2월 대화마당] ‘참여정부 위기관리’ 그 해법과 뒷이야기를 듣다 (19) | 2011.02.15 |
514 | 시민주권, 경남 김해에서 ‘대학생 봉하캠프’ 개최 | 2011.02.15 |
513 | “MB 정부는 사이비 보수, 민주·민생·남북관계 등 다 퇴보” (10) | 2011.02.14 |
512 | 명계남, 당신의 ‘복수극 완결편’을 기다리며 (50) | 2011.02.11 |
511 | ‘설거지 정권’ vs ‘비겁한 청와대’ (15) | 2011.02.11 |
510 | 노 대통령 “이제는 한 20만명은 넘어야…세상 바꿔” (65) | 2011.02.10 |
509 | 노무현재단에서 일할 분들을 모십니다 (6) | 2011.02.09 |
508 | [봉하를 찾는 사람들] 애틋함으로 찾는, 그리움으로 남는 봉하 (15) | 2011.02.09 |
507 | 다섯 번째 ‘문재인 이사장과 함께 걷는 대통령의 길’ (47) | 201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