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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봉하를 지키는 사람들] 청와대 샌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봉하일기

2011.02.25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봉하에 정착해 ‘봉하 식구’가 된 사람들 가운데는 부산이나 창원, 김해처럼 봉하 인근에 적을 둔 이들도 있지만 평생 논에 발 한 번 제대로 담가보지 않은 도시 토박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2008년 노무현 대통령 귀향 당시, 새 출발에 대한 각오가 아무리 결연했다고 해도 농촌 새내기였던 이들에게 봉하 생활이 그리 녹록할 리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방인이었고, 봉하의 아름다운 자연은 마음껏 즐기고 영유할 휴식이기 전에 온몸으로 뒹굴며 겪어내야 할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봉하 내려가서 같이 살자”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부의 이한인 팀장은 봉하에 처음 내려올 무렵을 회상하며,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 열심이었던 대통령”을 이야기합니다. 얌전한 샌님 같았던 그도 3년 새 영락없는 봉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청와대 시절에도 그러셨지만 봉하에서 대통령님은 걸음이 참 큰 분이었습니다. 뭔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때는 늘 다음, 그리고 그 다음 단계까지 미리 꼼꼼하게 준비를 하셨죠. 우리가 막 논에 발을 담그고 ‘이제 농사라는 걸 시작하나보다’ 생각할 때, 그분의 생각은 어느새 봉하 들녘을 지나 화포천과 김해 인근 마을의 환경과 경제, 복지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실천 단계를 밟고 계셨습니다. 공부도 꽤 열심히 하셨는데, 우리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추천하거나 직접 사다주실 때도 많았습니다.”

노 대통령이 퇴임 뒤에 봉하로 내려가 마을을 정비하고 친환경농사를 지은 것은 단순히 고향마을에서 유유자적하며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필생의 과제였던 지역대립 구도를 풀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봉하를 환경적·경제적으로 살기 좋은 농촌의 모범사례로 만들어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를 여는 비전으로 삼으려는 뜻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퇴임 뒤 대통령님이 추진했던 일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 구체적이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었습니다.

임기 후반 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에게 그 뜻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하기’가 아니라 ‘함께 살기’를 강조했습니다. ‘봉하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봉하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스스로 알게 되고, 또 행동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친환경쌀 방앗간이 일내다?

가을걷이와 김장이 끝난 지도 한참이 지났고, 호밀이며 유채꽃 파종까지 일찌감치 새봄 준비를 마친 영농법인 봉하마을의 친환경쌀 방앗간(RPC)이 새해 벽두부터 분주합니다.

‘겨울에 부지런한 농부가 이듬해 가을에 풍년을 맞는다’는 말이 그저 옛말은 아닐 것입니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은 2008년에 봉하오리쌀-우렁이쌀을 50톤(8만㎡, 2만4천여 평) 수확한 데 이어, 2009년에는 424톤(79만2천㎡, 24만여 평), 지난해에는 550톤(99만㎡, 30만평)의 수확량을 올렸습니다.

양을 늘리는 데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난 가을 최첨단 성분분석기와 품위분석기를 도입해서 쌀의 품질에 따라 등급별로 정밀도정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경남에서 쌀로는 처음으로 농산물 우수관리(GAP)와 농산물 이력추적관리 인증도 받았습니다. 친환경농업 3년이라는 짧은 기간치고는 놀랄 만한 성과입니다.

청와대 샌님들 ‘농군’ 되다

대통령님 서거 뒤 영농법인 봉하마을 김정호 대표는 예전에 ‘들판팀’(주로 들에서 일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불렀던 봉하 식구들과 자원봉사자의 힘을 모아 봉하 친환경농업의 기틀을 완성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농사의 ‘농’자도 잘 몰랐던 김 대표가 3년 만에 100여 명이 넘는 전업 농군 작목반원들에게 친환경농업의 각종 노하우를 전수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얻은 유무형의 자산을 감안해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가 들어갔을지 짐작이 갑니다. 김 대표는 차로 1시간여 거리인 부산에 가족이 살고 있지만 추석과 설 등 1년에 두어 번 손님처럼 집에 다녀오는 게 전부입니다. 지난해 늦여름에는 과로로 쓰러져서 며칠간 응급실 신세도 졌습니다.

평소에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마주하는 그이지만, 영농법인의 대표로서 마을 주민들과 작목반원을 가장 많이 만나야 하고, 농사뿐 아니라 마을의 경관과 시설물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덕분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쌈닭’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대통령님이 계실 때만 해도 당신의 핑계를 대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직접 부딪치고 책임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방앗간의 모든 일이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봉하에는 누구 못지않은 ‘노무현 사랑’으로 1년 내내 헌신적인 봉사를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봉하의 오른팔’ 자원봉사자들

대통령님 퇴임 즈음 ‘노무현’이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충북 제천에서 무작정 봉하로 내려온 닉네임 ‘반디’이만기님은 이 곳의 만능 재주꾼으로 통합니다. 노사모 회관을 비롯해 방앗간 정자, 생태연못 정자 등 봉하 곳곳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들이 제법 많습니다. 친환경농사는 물론 마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순수 열정파입니다. 현재는‘(미)생물배양센터’를 맡고 있습니다.

‘진영지기’박성민님은 그 인상처럼 자원봉사도 푸짐하고 넉넉하게 쏟아온 사람입니다. 지난해부터는 공장장으로 방앗간 살림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1년 내내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원주와 봉하를 오가는 ‘건너가자’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그렇게 기운이 솟는지 아담한 체구에도 힘든 봉하 일을 누구 못지않게 척척 해냅니다. 행여나 남들이 알까봐 쉬쉬하지만 방앗간 마당에 있는 두 개의 컨테이너는 쉬거나 먹을 공간이 없어 고생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그가 기증한 것입니다.

이밖에도 하나하나 이름과 닉네임을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희생과 봉사가 봉하를 아름답게 일궈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의 자원봉사 모임인 ‘사랑나누미’, ‘봉길이네’, 노삼모(노무현 대통령과 삼겹살파티를 하는 사람들)의 ‘봉삼이네’(봉하 노삼모), 다음카페 노사모 ‘노랑개비’ 등은 봉하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았던 공을 인정받아 지난 연말 <노무현재단> 송년행사에서 감사패를 받았습니다.



묘역관리에서 생태학습, ‘대통령의 길’ 걷기까지

마을을 처음 찾는 사람들 말마따나 봉하는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곳입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고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일은 양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랄 만큼 가짓수가 많습니다.

영농법인 봉하마을이 주로 친환경농업과 봉하마을을 가꾸기 등 ‘자연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한다면, <봉하재단>과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부는 노무현 정신 실현을 위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을 도맡습니다. 이들 역시도 청와대 시절부터 대통령님과 함께 동고동락을 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2009년에 설립된 <봉하재단>은 대통령님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각종 사업, 그리고 묘역과 생가, 쉼터 등 봉하마을 주변의 경관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김경수 사무국장을 비롯해 권양숙 여사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박은하 비서관, 대통령님이 가시는 곳 어디든 함께 해 숨소리까지 읽어냈다는 경호실의 주영훈 본부장, 그리고 21년간 대통령님을 모셨던 최영 부장 등은 음으로 양으로 봉하를 지키는 큰 일꾼들입니다.

봉하사업부는 <노무현재단>에서 일종의 ‘봉하 정예부대’입니다. 봉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봉하재단>과 영농법인 봉하마을, <노무현재단>의 일꾼들이 모여 지난해 10월에 부서를 꾸렸습니다. 운영팀은 추모시설을 운영하고 홍보하는 일을 주로 하고, 사업팀은 개별 사업(공익사업, 자원봉사센터, 봉하캠프, 영농행사 및 체험 등의 회원사업, 추모의 집 운영)을 맡습니다.

‘봉하 캠프’나 ‘대통령의 길’ 걷기, 그리고 시기별로 봉하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봉하사업부 식구들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재단>이든, <봉하재단>이든, 영농법인 봉하마을이든 봉하 식구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하는 한가족입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과 봉하를 지키는 일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채워가는…

대통령께서 귀향한 2008년 2월 이후 이름 없는 작은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봉하가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사람사는 세상’ 회원들에게 제2의 고향이 된 지도 곧 있으면 만 3년이 됩니다. 그 사이 봉하를 떠나 다른 곳에서 대통령의 유지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봉하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 이들도 있으며, 여전히 남아 네 번째 봄을 맞이할 이들도 있습니다.

‘봉하를 지키는 사람들’이 봉하에 살게 된 근원적 이유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대통령님의 부재는 ‘봉하’라는 의미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절이 일곱 번 바뀌는 동안 봉하는 더 아름답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마을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봉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 누군가는 떠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돌아올 것입니다. 진짜 봉하 사람이 되어 뼈를 묻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신과 그 이름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봉하의 빈자리는 그를 사랑하는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채워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들 모두가 봉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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