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과 흐린 물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대화마당] 도종환 재단 이사 ‘詩에게 길을 묻다’...“문학이 세상을 구해”
4월 26일 서울 마포구 *** <노무현재단>이 자리잡은 건물 6층. 사무실 이전 후 첫 대화마당이라 위치를 찾지 못한 회원들의 문의전화가 자주 울렸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영상을 먼저 상영하는데 초청 연사인 재단 이사 도종환 시인이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그를 알아본 회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문학이 세상을 구할 것”
연단에 선 시인의 표정은 온화하고 말씨는 부드럽다. 금세 마음이 청명해진다. 알려져 있다시피 시인 도종환은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내를 암으로 잃었다. 그 슬픔과 아픔을 녹여낸 <접시꽃 당신>은 8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다.
독자들에게 각인된 이런 선입견으로 그가 겪어야 했던 고난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 해직, 투옥됐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복직돼 10년 만에 교단에 섰지만 투옥 후유증인지 ‘자율신경실조증’이란 병으로 다시 학교를 떠났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구구산방’에 틀어박혔다. 꼬박 5년간 거북 모양의 황토집에서 ‘느리게, 느리게’ 지냈다. 느림의 미학을 체득했고, 글을 썼다. 세상을 관조하며 소유하지 않는 방법도 배웠다. 나무, 풀, 들짐승이 그의 친구였다. 병도 조용히, 느리게 물러갔다.
지지난해 어느 대학 강연장에서 스치듯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한 학생이 그에게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울먹이듯 물었다. “전 불문학 전공인데 문학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시인은 지긋하게 학생을 바라보다 손을 꼭 잡아주며 답했다. “문학이 세상을 구할 거에요.” 그 학생의 환해진 표정과 설레는 눈망울이 아직도 선명하다.
10만여 명을 울린 그의 '서정'
지난해 5월 23일 노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 전날부터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시인 도종환이 무대에 올라 추도사를 낭독했다.
“당신이 뒤뜰에 심으신 홍매가 붉게 피었다 졌습니다. 장독대 옆의 매화가 하얗게 피어서 은은한 향을 마당 가득 펼쳐 놓고 있는 걸 당신도 보셨는지요? …(중략)… 양지쪽에 돋은 쑥을 뜯어다 당신의 아내는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셨습니다. 짙은 쑥 향이 방안 가득 넘치는 걸 당신도 느끼셨는지요? 몰래 한 숟갈 떠 드셨는지요?”
한 편의 시와 같은 그의 추도사 첫 단락이 끝나자 ‘눈물이 샘솟다’라는 말이 수사가 아님을 알았다. 억눌린 슬픔이 눈물로 쏟아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추도사.
“당신도 그곳에서 이 집을 내려다보고 계십니까? 아내 혼자 지키고 있는 집이 보이십니까? 아내 혼자 창가를 서성이고 있는 게 보이십니까? 혼자 남겨진 당신의 아내를 생각하면 당신이 야속할 때가 있습니다.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던 당신의 손녀딸을 생각하면 당신이, 당신의 고집, 당신의 원칙, 당신의 자존심이 미울 때가 있습니다.”
민망했다. 눈물을 감추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눈물바다가 되었다. ‘문학이 세상을 구한다’는 시인의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슬픔을 공유한 이들은 슬픔을 넘어서고 있었다.

내 인생의 시 1위에 꼽힌 ‘담쟁이’
도종환의 시 ‘담쟁이’가 2009년 직장인 100만 명이 뽑은 ‘내 인생의 시 한 편‘ 조사에서 1위에 꼽혔다. 90년대 말까지는 단연 윤동주의 ’서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시인은 이 변화된 현상을 담담히 해석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는 삶의 성찰에 관한 것입니다. 시로서 마음을 성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담쟁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삶이 힘들어진 거죠.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겁니다. 다시 성찰의 시가 주목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의지’를 담은 담쟁이를 쓰게 된 사연을 밝혔다. 정연주 재단 이사도 최근 강연에 가면 꼭 이 시를 낭독한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나오니 정말 세상이 깜깜했습니다. 먹고 살 방법도 없고 해직 교사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답답하던 차에 창밖을 내다보다 담쟁이를 본 거에요. 물도 없고 볕도 없는 곳에서 이파리끼리 서로 기대고 힘을 주며 자라 올라가는 담쟁이를 보고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이어 노 대통령과 관련된 아픈 일화를 들려줬다.
“검찰소환을 앞두고 대통령께서 봉하 사저에 걸려 있던 ‘담쟁이’가 새겨진 벽판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벽판을 내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던 것일까요. 작년에 사저에 가보니 그 자리에 소나무가 걸려 있더군요. 권 여사께서 다시 담쟁이를 걸겠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소나무가 걸려 있습니다.”

“맑은 물과 흐린 물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
시인은 어린 학동의 천진난만한 질문에 시상이 번뜩 떠올랐다고 한다. 아이 질문에서 출발해 만든 시가 ‘멀리 가는 물’이다.
“맑은 물이 더럽혀지니깐 흐린 물이 이긴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물은 언젠가 깨끗해지죠. 처음에는 흐린 물이 이기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분명히 맑아집니다.”
시인은 대화마당 말미에 문화의 관점에서 지금의 시대를 진단했다.
“우리 역사상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때는 정조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때 정조의 개혁정책에 저항했던 노론은 이후 자신들이 원하는 왕을 선택합니다. 왕 수업을 전혀 받지 못한 강화도령을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노론은 나라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고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과 안위에만 관심이 있었죠. 조선이 망하고 그들은 친일파로 변질됐습니다. 해방 후에도 그들은 기득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암흑의 시대를 걷다가 지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두 분이 집권했을 때 잠깐 빛을 본 것입니다.”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